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133

해탈, 부처, 깨달음, 도(道)에 대한 나의 생각

해탈, 부처, 깨달음, 도(道)에 대한 나의 생각 '깨달음', '해탈', '부처'라고 하는 방편(方便)에 대한 당신의 견해(見解)는 깨달음, 해탈, 부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당신의 생각에 깨달은 자(覺者), 부처(佛)는 '이럴거야'라는 모든 깨달은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말 그대로 이미지, 상, 허상에 불과하다. 모든 깨달은 사람에 대한 이미지 그것은 내가 그림을 그려놓은 깨달음에 대한 환상(幻想)일 뿐, 깨달음 그것 자체는 아닌 것이다. 깨달음, 해탈, 부처에 대한 나의 허황되고 과장된 해석, 환상(幻想)들이 나의 깨달음을 방해하고 있다. 지금 시대의 불교나, 불자들, 혹은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깨달음과 부처에 대해 과장되고 환상적인 어떤 것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道)라고..

슬플 땐 그냥 슬퍼하라

슬플 땐 그냥 슬퍼하라 온갖 느낌도 인연따라 온 환영(幻影)일 뿐이니 느낌 그대로를 인정하고 관찰하라 나는 노을이 질 때가 되면 해가 지는 풍경 속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요즘 같으면 찬바람이 휑하니 불어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느낌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외롭다고 할 수도 있겠고, 고요하다거나 평화롭다거나 할 수도 있겠지만 애써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좋다. 뭐랄까 내 안의 본래적인 느낌 감각을 온전하게 끌어내 주는 이 느낌 감각에 가만히 마음을 집중하다 보면 대자연의 숨결과 하나되는 듯 내 마음은 어느덧 선정(禪定, 고요함)에 빠져든다. 느낌은 참 소중하다. 느낌을 그저 휙 지나쳐 버리지 말라. 가만히 느낌에 마음을 집중해 보면 그 모든 느..

생각을 믿지 말라.

생각을 믿지 말라. 동일한 정치인에 대해 사람은 저마다 다른 평가를 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판단을 내린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사람들의 평점은 저마다 다 다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내린 평가나 판단이 옳다고 주장한다. 내가 내린 평가나 판단은 무수히 많은 평가나 판단들 중에 하나일 뿐이지, 내 판단이나 평가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내 판단, 내 평가, 즉 내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고, 내 생각에 집착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의견과 다툴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괴로움이 생긴다. 사람들 마다의 가치관, 세계관은 전부 다 자기 생각으로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치관 세계관 그것은 내가 의식으로 만든 생각의 무더기일 뿐이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다. 의식으로 만든 허망..

삶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 - 법륜스님 삶은 지금 이 순간 밥 먹고 똥 누는 여기 이 자리에 있습니다. 삶이 밥 먹고 똥 싸는 지금 여기 말고 저 너머 어떤 새로운 곳에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고 허망한 생각, 즉 망상(妄想)입니다. 삶은 밥 먹고 똥 싸며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즐겁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다투면서 살아가는 것일 뿐이지 달리 특별한 삶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내 삶은 뭔가 특별해야 한다는 망상 때문입니다. 똥 마려울 때 똥 누고 배고플 때 밥 먹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만나면 이 사람 생각은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여 흘러가는 물처럼 사는 것이 지혜(智慧)입니다. 삶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저 아무 일이 없을 뿐

그저 아무 일이 없을 뿐 깨달음이란 지금 여기 있는 나에게 없는 새로운 깨달음을 특별하게 따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골치아픈 문제가 사라지고, 그냥 괴로움이 사라지고, 그저 아무 일이 없어질 뿐임이 깨달음(해탈, 열반)입니다. 말 그대로, 깨달음은 그냥 그저 아무 일이 없는 자리,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일 뿐이지, 깨달음이라는 무언가가 특별하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그냥 아무 일 없이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맞으며, 차를 한 잔 마시고 있습니다. 새들은 재잘재잘 지저귀고 있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와 뺨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아무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일이 생각나거나, 어떤 일이 하고 싶은 생각이 들거나,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서 그 생각에 사람들이 끌려가기 시작합..

나는 누구인가? 나의 실체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실체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실체는 무엇인가? 세상은 무엇인가? 세상의 실체는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삶의 실체는 무엇인가? 바다라는 연극 무대 위에서 원인과 조건이라는 인연(因緣)에 따라 무수한 파도가 치듯, 실체가 없는 삶이란 바다라는 연극 무대 위에서 인연 따라 치는 무수한 파도에 불과하다. 세상이라는 연극 무대 위에서 온갖 존재가 벌이는 울고 웃는 삶의 스토리가 다만 ‘파도’일 뿐이다. 일어나고 꺼지는 상황을 반복하는 파도는 본질이 아니다. ‘바다’만이 본성이다. 생각이 내가 아니다. 생각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느낌 감정, 의도 의지 욕망 욕구, 분별심 인식이 내가 아니다. 몸도 내가 아니다. 몸 모양 사물, 느..

사는 목적

사는 목적 사는 목적은 매 순간순간 새롭게 펼쳐지는 삶을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다. 매 순간순간 새롭게 펼쳐지는 삶을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사는 이유다. 매 순간순간 내게 주어지는 삶은 나에게 경험되어지기 위해 내게 찾아온 것이다. 누구나가 해야할 일의 전부는 매 순간순간 주어지는 삶을 충분히 경험하고 느끼고 살아내는 것이다. 매 순간순간 주어지는 삶을 좋다고 집착하지도 않고 싫다고 멀리 밀어내려고 하지도 않은 채, 거부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시비 분별 비교 판단도 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충분히 경험하도록 하라. 매 순간순간 주어지는 삶을 상대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두려움, 거부, 욕망, 화, 생각 없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발밑에 떨어져있는 행복

발밑의 행복 / 틱닛한 스님 행복이 찾아오는 길은 여러 갈래로 행복의 표정 또한 천양각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행복에 이러저러한 조건과 한계를 붙여가며 행복을 고르고 있다. 그래서 설사 행복이 곁에 다가오더라도 결코 그 행복을 눈치 채지 못한다. 네모라는 행복을 꿈꾸는 당신에게 지금 당신 곁에 다가와 있는 동그란 행복의 미소가 보일 리 없는 것이다. 그대의 삶에 힘을 갖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 발밑에 떨어져있는 그 행복부터 주워 담아라.

나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삽니다.

[하루하루 명상언어] 2010.12.13 나는 사회나 자연이나 신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일 뿐이고, 또 그렇게 되고자 합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를 삽니다. 과거는 기억에 불과할 뿐이고 미래는 기대에 불과할 뿐입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 있음을 사랑합니다. 나는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변화와 새로움을 더 좋아합니다. 나는 나의 존재를 자각합니다. 나는 모험의 가치를 알고있으며,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것도 압니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