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134

가는 곳마다 내가 주인임을 잊지 말고 세상 장엄하며 삽시다

가는 곳마다 내가 주인임을 잊지 말고 세상 장엄하며 삽시다 선을 쌓은 집안엔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에는 재앙 있어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이 세상 중심이니 현생에서 참 부처 찾길 가족 이웃 모두를 공양하는 마음으로 살면 세상이 바로 내 것 조계총림 방장 현봉 스님은 “인류의 이기심이 오늘날 미래를 걱정할 만큼의 자연환경 변화를 초래했다”며 늘 선한 발원을 하며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오늘 이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대덕스님들과 불자님들을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지난 봄 네팔에 일이 있어 갔을 때 히말라야의 눈이 많이 녹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알프스 쪽 빙하들도 녹아서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북극의 얼음도 녹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바닷물의 온도도 많이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

인간의 희노애락도 자연처럼 그냥 그러할 뿐~~~

인간의 희노애락도 자연처럼 그냥 그러할 뿐~~~ [에베레스트 촐라패스를 넘으며...] 나에게 괴로운 일이 생기는 것은 흔히들 말하기를 내가 지어논 악업의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욕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또는 내가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가 생겼다고 가정해 보죠. 그 때 나는 나를 괴롭힌 사람을 탓하고, 하기 싫어서 짜증을 내기도 하며, 피해가려고 애쓰거나, 화를 폭발시키기도 합니다. 반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거나, 좋은 일이 일어날 때는 행복해 하며, 한 발 더 나아가 그같은 좋은 인연에 집착하고, 그같은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좋은 일이나 괴로운 일은 인연 따라 일어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또 다시 그런 일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뿐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뿐이다. 기억은 말 그대로 과거에 경험을 했던 하나의 기억일 뿐이지 실재가 아니다. 기억은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만 머릿 속에 존재할 뿐이다. 기억만 머리 속에 존재하는 허깨비 같은 이런 것을 허망한 것이라고 하여 허상(虛像)이라고 말한다. 허상(虛像) 그것은 100% 진실일 수 없지 않은가? 내가 기억을 잘못했을 수도 있고, 잘못 보았을 수도 있으며, 뇌과학에서도 말하듯이 인지왜곡(認知歪曲)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당연히 허상(虛像)을 믿을 필요는 없다. 허깨비 같은 과거(過去)라는 기억(記憶)과 상상(想像)이라는 허상(虛像)을 믿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는 무엇일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는 어떻게 자각(自覺)될까? 지금 이 순간 여기 ..

오직 지금 여기 이것일 뿐, 어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지금 여기 이것일 뿐, 어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라는 매 순간 순간 일어나는 이것일 뿐 어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 이것 외에 나머지는 전부가 다 분별 망상입니다. 법상에 앉은 스님들이 죽비를 한 번 탁 치고는 '이것이 법이다'라고 설법을 합니다. 그같은 말씀을 하셨을 때 곧바로 분별을 하는 생각을 일으켜서 죽비를 한 번 탁 치는 것이 어째서 법일까, 진리일까? 한다면 그와같은 분별을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이미 두 번째 자리에 떨어진 것입니다. 죽비를 치는 그 행위가 전부입니다. 죽비를 그 행위 자체에는 어떤 숨겨놓은 진리, 법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저 액면 그대로, 날것 그대로 죽비를 치는 행위 그것이 전부입니다. 죽비 치는 ..

눈 앞의 진실 vs 머릿 속에 그린 허상

눈 앞의 진실 vs 머릿 속에 그린 허상 매 순간 사람들은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매 순간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을 하고, 아는 그 첫 번째 작용엔 문제가 없습니다. 매 순간 그냥 그렇게 경험할 뿐이고, 일어날 뿐입니다. 문제는 매 순간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을 하고, 아는 그 첫 번째 작용 이후에, 이미 지나가버린 첫 번째 작용을 내 방식 대로 이미지화 하고, 해석하고, 분별한 뒤에 그렇게 스스로 분별해서 만들어 놓은 그림자, 상, 기억, 허상, 허깨비, 의식의 쓰레기를 붙잡고서는 '그것'이라고 동일시하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진짜 생생한 실재는 잠시 생겨났다가 ..

진짜인듯 온갖 연기를 다 소화해 내고 있는 나는 누구냐?

진짜인듯 온갖 연기를 다 소화해 내고 있는 나는 누구냐? 매일 산책하는 길이 요즘들어 낯설게 느껴진다. 문득 이 존재 하나가 지구라는 낯선 행성에 안착해서, 이런 모습으로, 이런 입장으로, 이 곳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낯설게 느껴진다. 여기 이 자리 이 곳이 내 공간이 맞는가? 여기 이 자리 이 곳이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맞는가? 이 존재 이게 내가 맞는가? 이 생각이 나인가? 아, 모르고 또 모를 뿐! 그렇다면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이 몸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진짜인듯 온갖 연기를 다 소화해 내고 있는 나는 누구냐? 오직 내가 누군지 모르고 또 모를 뿐이니, 그저 모를 뿐인 중에 다시 또 낯선 연기를 익숙한 척 이어갈 수밖에. 밖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

쓸데없이 왜 노후를 걱정하는가?

쓸데없이 왜 노후를 걱정하는가? 가난과 자족의 정신에 부응하며 살라. 부처님은 수행자의 의식주를 책임진다 얼마 전에 한 신문에서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노후자금은 얼마면 될까를 물었더니 몇 억에서 몇 십억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했던 설문 조사 결과가 있었다. 아마도 현대인들이 말하는 노후자금이란 놀고 먹고 마음껏 소비하면서 보낼 수 있는 충분한 자금이나 재산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생각해보라. 마음껏 놀고 먹으면서 소비하고 보내는 노후의 생활은 얼마나 비참하고 노망스러운가.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노후생활을 삶의 행복으로 알겠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러한 어리석은 노후생활을 과감하게 버릴 것이다. 요즘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은 어떠한가. 모든 사람들이 막강한 경제력이 뒷바침되는 행복한(?) 노후를 꿈꾼다...

운명을 바꾸는 게 깨달음이다.

운명을 바꾸는 게 깨달음이다. - - 법륜스님 운명(運命)이 전생(前生)에 이미 정해졌다면 우리는 운명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생(前生)도, 내생(來生)도 바로 ‘지금 여기’ 현생(現生)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에 눈뜨게 되면 삶이 달라집니다. 상대가 나에게 욕을 할 때 나도 덩달아 욕하면 전생도 원수지간, 현생도 원수지간,, 내생도 원수지간이 되는데 상대가 나에게 욕을 할 때 한번 빙긋이 웃어버리면 전생도, 현생도, 내생도 좋은 인연이 됩니다. 그래서 말을 하기를 한번 깨달으면 ‘삼생의 업이 녹는다’고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그 한 번을 빙긋이 웃지 못하기 때문에 부부지간에도, 부자지간에도 ‘내가 저 인간하고 전생에 무슨 원수가 졌나?’ 합니다. 모든 일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다는 ..

병(病)이 나서 아플 때 하는 마음공부

병(病)이 나서 아플 때 하는 마음공부 병(病0이 나서 아픔을 느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그 병이 낫기만을 간절히 원합니다. 병원, 의사, 약 등 병이 나을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찾아나서지요. 병에 좋다는 모든 약들도 다 먹어보고, 치료도 받아보고, 이 방법 저 방법 다 해 보았는데도 병이 낫지 않을 때면 절망을 하게 됩니다. 이같은 마음 상태가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절에 찾아와 스님께 하소연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당연히 절에 계시는 스님들은 당염히 의사나 치유사가 아니다보니, 병에 대한 치료법을 알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병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병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말씀해 드리곤 합니다. 쉽게 말하면, 병이 걸렸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