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재산 헌납, 의도적 사전기획인가
(아고라 / 박형준 / 2009-01-28)
MB가 ‘재산 헌납’을 약속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공익재단을 만들 것이라는 등 ‘설’만 난무할 뿐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다. 재산 헌납은 최악을 거듭하고 있는 MB의 신뢰도를 마지막으로 측정할 수 있는 카드, 하지만 시민들은 이마저도 신뢰하고 있지 않다. “재산 헌납은 도대체 언제 하려고 하느냐”는 냉소만 난무할 뿐.
기자는 약 1년 전, MB 측에서 ‘재산 헌납’을 오래전부터 기획했을지도 모른다는 심증을 느끼게 하는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증거는 멀리 있지 않았다. MB의 신한국당 의원 시절, 6급 비서를 역임했다가 MB의 선거법 위반 및 피의자 도피 의혹을 폭로한 김유찬씨로부터 나온 증거였다. PLP를 기억하시는가? President Lee Plan, 즉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선거기획단’이다. 김유찬은, 1996년 9월에 PLP 관련 문건을 당시 <주간조선> 소속이었던 홍석준 기자에게 건네준다. 홍석준 기자는 곧바로 ‘특종’을 때렸다. 그 기사는 지금도 조선닷컴 인터넷 페이지가 존재한다. (참고 [주간조선 단독입수] 이명박 대통령만들기 플랜)
이 기사에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MB는 다음과 같은 대권도전 일정을 꾸렸다.
1. MB를 97년 대선 후보로 지명받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2. 제1의 목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차선으로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를 지원하여 98년 6월의 지방자치 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권을 획득하는 데 둔다.
3. 제2의 목적은 곧 2002년 서울시장 임기 직후 있게 될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도약하기 위함이다.
시차만 5년의 차이가 있을 뿐, MB는 이 일정 그대로 대권에 도전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렇기 때문에 이 PLP 문건은 나름의 현실감을 갖는다. PLP가 제시한 MB의 약점은 재산문제, 그렇다면 PLP는 어떤 돌파구를 제시했을까?
“이 의원의 재산문제를 능동적으로 돌파하기 위해 재산의 사회 환원을 검토하고, 인간적 포용력을 보여주는 문제를 검토하자.”
실제로 MB는 정계에 진출했을 때부터 재산 문제로 인해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공직자 재산공개 당시 도곡동 땅을 은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며, 소유 토지를 공시지가보다 턱없이 낮게 신고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현대그룹 측에서도 “이 의원의 재산이 그것밖에 안 되겠느냐”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 재미있는 것은 그때마다 MB는 재산을 헌납하며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
김유찬씨는 PLP를 주도한 이로 ‘대운하 전도사’ 추부길씨를 꼽았다. 추부길씨가 주도하다가 MB의 처남 김재정씨와 갈등을 빚어 이탈하면서 PLP도 와해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MB가 대통령에 당선된 과정이나 재산 헌납을 전국민적으로 약속하는 등, PLP가 정말 와해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기자는 추부길씨와 어렵게 전화연락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그는 “나는 지금 언론 인터뷰를 할 상황이 아니”라며 해명을 거부했다. 추부길씨가 주도했던 PLP, 과연 재산 헌납은 '의도적 사전기획'이었던 것일까.
봉인된 금서 <이명박 리포트>를 열어젖히다
김유찬씨는 자신의 책 <이명박 리포트>에서 ‘이명박=지독한 구두쇠’라는 주장을 펼쳤다.
“어느 때인가 기획단 회의에서 이명박 씨의 재산형성과정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거론한 적이 있었다. ‘의원님! 재산의 절반 정도는 사회로 환원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시죠!’ 대통령이 되려고 꿈꾸는 그에게 어느 한 선거기획참모가 정식으로 과감하게 건의했다. 그러나 이 건의에 대해 이명박 씨는 옆에 있던 재떨이를 집어던진 것으로 일단락되고 말았다.” - <이명박 리포트> 350쪽
“하루는 적십자로부터 물난리 수해 때문에 ‘적십자회비’를 내라는 전갈을 받았다. 주무부장이 이명박 의원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주무부장은 중진의원으로서의 무게도 있고 하니 통지받은 적십자비보다는 좀 더 후하게 납부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를 건의했다. 주무부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명박 의원으로부터 재떨이가 날라들었다. ‘야! 그게 니 돈이냐?’라고 소리지르며…….” - <이명박 리포트> 62쪽
이외에도 7년간 모신 운전기사가 전세금 200만원이 부족해서 이명박 의원에게 ‘돈을 빌려줄 것’을 요구했다가 해고됐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지구당 운영자금이 부족해 조직부장이 자신의 전셋집을 헐어 자금을 보탰다가 선거 후 정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이명박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 새끼 짤라 버려!”
이 증언들은 과연 사실일까. MB는 정말로 재산 헌납을 실천할 수 있을까.
‘소재 불투명’ 김유찬, 김유찬은 어디에 있나
기자는 김유찬씨의 증언을 듣기 위해 그가 수감된 교도소를 어렵게 찾아 면회를 신청했다. 하지만, 면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석방됐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대법원에 의해 징역 1년 2개월이 확정된 김유찬씨, 하지만 그가 가석방된 시점은 불과 한 달 뒤인 10월이다. 소재지 수배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독한 수단을 쓴다면 찾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취재과정에서 불법이 개입돼선 안 된다. 사실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현재 ‘소재 불투명’ 상황인 김유찬씨를 찾기 위한 것, 여론과 언론이 움직인다면 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김유찬씨는 <이명박 리포트>에서 은연중에 그런 불안감을 노출시킨 적이 있다.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었다면서, 이명박 의원이 자신을 겨냥해 내뱉었다는 욕설을 서술했다.
“그 새끼 목에 돌 매달아서 인천 앞바다에 던져버려!”
듣기만 해도 끔찍한 이 욕설, 과연 사실일까. 이 욕설과 소재 불투명……. 김유찬씨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기자는, 부디 기사에 쓴 '소재 불투명'이란 표현이 어긋나기만 바랄 뿐이다.
재산 헌납, MB의 대국민 해명을 요구한다
기자가 PLP의 내용을 월간 말 2월호에 보도하고 아고라에서 이렇듯 관련 글을 쓰면서 '재산 헌납'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로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뒤따랐다. 기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무서웠다. 미네르바 구속을 지켜보면서 느낀 공포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촛불시위 당시 기자는 경찰이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모습을 취재과정에서 생생하게 지켜봐왔다. 대운하 음모를 폭로한 김이태 박사가 당한 징계도 잘 알고 있다.
기자에게는 부모님 두 분과 어린 동생이 있다. 장래를 약속한 여자친구도 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세상은 공안정부이며, 정권에 반대하거나 바른말을 하면 어떤 처지로 전락할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기자 혼자만 다치는 것이 아니다. 월간 『말』의 구성원 모두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무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언론인의 사명을 지키기로 했다. 촛불시위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언론인의 사명을 지킨다면, 그들이 기자를 지켜줄 것이라고 판단했다.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위해 싸우기로 한 이상, 그들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촛불을 든 그 힘에 호소하고자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 헌납이 진실인지의 여부를 가장 확실하게 밝힐 수 있는 힘은 국민에게 나온다고 생각한다. 만약, 기자의 문제제기 그대로 '의도적 사전기획'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전 국민을 향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본심이 아닌 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했으니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 특히나 최고권력자의 거짓말은 그야말로 나쁜 버릇이다. 기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 헌납’ 선언이 거짓이 아니기만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 바람과 취재내용은 사뭇 달랐다. 국민의 힘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답하라. PLP의 내용은 사실인가, 그리고 재산 헌납은 '의도적 사전기획'인가. 다양한 불법비리 의혹과 경제위기, 그리고 방송장악 의혹과 용산참사 등 신뢰도가 최악을 거듭 갱신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재산 헌납 선언이야말로 본인과 정권의 신뢰도를 마지막으로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한다. 국민은 눈을 감고 있지 않다. 단 한 번이라도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 추신
기자에게 정권의 위해가 가해진다면, 기자는 ‘원본기사 작성자’인 당시 <주간조선> 홍석준 기자(동명이인일지도 모르지만 ‘조선일보 홍석준’은 최근 스포츠부장으로 발령, 동명이인일 경우엔 이후 정중한 사과를 남기겠다)만큼은 반드시 같이 껴안고 갈 생각이다. ‘원본’ 작성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 출처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229653
ⓒ 박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