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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노무현 정치' 추모행렬 '지역벽을 넘다'

장백산-1 2009. 5. 27. 12:13

미완의 ‘노무현 정치’ 추모행렬 ‘지역 벽’ 넘다

기사입력 2009-05-26 18:54 |최종수정 2009-05-27 03:11 기사원문보기

26일 제주시 신산공원 방사탑 앞에 마련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이 분향소 인근에 설치된 추모 플래카드를 살펴보고 있다. 제주|강홍균기자

‘노무현 정치’의 핵심은 ‘지역주의 타파’였다. 그가 평생의 업이자 화두로 삼아온 것이 영·호남 지역 벽과의 투쟁이고, 함께 잘사는 세상을 위한 ‘지방 균형발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아직 온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까지 시신이 안치된 봉하마을 분향소는 물론 서울에서 제주까지 이어지는 시민들의 조문 행렬은 그 같은 미완의 ‘노무현 정치’의 과제를 웅변하고 있다.

5·18 대변인 자처한 광주 - “학살 주역들 다그치는 모습 선해”

“정말 이렇게 그냥 보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차분하던 광주의 노무현 대통령 추모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동안 광주 추모 분위기는 비교적 조용하고 경건하게 이어져왔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광주와 맺은 끈끈한 인연을 거론하며 ‘집회식 추모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광주학살 주역들’의 만행을 다그치며 ‘5·18 대변인’ 역할을 준 상징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이는 2002년 3월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 광주가 ‘노풍(盧風)’의 진원지가 되는 지렛대가 됐다.

마침내 광주·전남 지역 진보와 보수, 종교·노동·여성·교수 등 시민사회 300개 단체로 구성된 ‘광주전남추모위원회’가 26일 활동을 시작했다.

추진위는 이날부터 시민 리본달기운동, 분향 권유 등을 통해 추모열기를 고조시킨 후 28일 오후 7시부터 옛 도청앞 분수대 광장에서 ‘추모문화제’를 열고 고인의 넋을 기리기로 했다. 행사는 각종 문화공연에 이어 시민발언대, 촛불켜기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또 9시부터는 10분간 소등시간도 갖는다.

송기숙 추모위원장(전 전남대 교수)은 “고인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살갑게 지역민의 소외감을 달래주는 대통령이었다”면서 “그분이 남긴 가르침을 집단적으로 나눠갖기 위해 추모제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광주|배명재기자>

지역당 도전 ‘정치적 고향’ 부산 - “바보 대통령 늘 그리워할 겁니다”

“정말 ‘바보’였습니다. ‘바보 대통령’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에게 ‘바보’란 별명을 안긴 곳이지만 그 ‘바보 대통령’을 늘 그리워할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는 부산역 광장과 벡스코, 범어사, 부산대 문창회관 등 9곳에 분향소가 차려져 이날에만 4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분향소를 찾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부산역 광장에는 전날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를 비롯해 1만3800여명이 조문한 데 이어 26일에도 지역 언론사 사장과 박종익 전 부산경총 회장 등 지역 인사와 시민들의 애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노상현씨(49·선원·해운대구 반송2동)는 “부산이 낳은 대통령이라고 하면서도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가장 먼저 설치된, 노 전 대통령의 모교인 개성고(옛 부산상고) 예병철 총동창회 사무국장은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시민들도 노 전 대통령이 양심적이고 용기 있고 국민을 위해 헌신한 대통령이었다며 애통해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모교인 개성고는 영결식이 치러지는 29일까지를 특별애도기간으로 정하고 1040여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모두 근조 리본을 달았다.

<부산|최슬기기자>

행정도시 추진한 공주·연기 - “고인의 유지 받들어 지역 균형개발 관철”

행정도시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충남 연기지역의 고 노 전 대통령 추모열기는 뜨거웠다.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너무 가슴이 아프지만 이대로 슬퍼할 수만은 없다”며 “고인의 유지인 행정도시건설을 우리의 힘으로 반드시 관철해 내겠다”고 행정도시 사수의지를 다졌다.

충남 연기군 조치원역 앞에 설치된 시민분향소에는 노 대통령 서거 4일째를 맞은 26일에도 주민의 추모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이날 분향을 하기 위해 30분간 기다렸다는 임개응씨(53)는 “행정도시를 만들자고 한 게 다 나라 잘 되자고 한 것 아니냐”며 “그렇게 곧은 심지를 가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하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슬퍼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행정도시건설에 대한 주민 불신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행정도시건설을 진두지휘했던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갖는 의미는 각별했다.

주민들은 지난해 노 전 대통령을 연기에 초청하기 위해 몇차례 비서진과 접촉을 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한편 행정도시정상추진을 위한 범충청권협의회, 행정도시사수연기군대책위 등 관계자와 주민 100여명은 27일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직접 찾아 조문하고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반드시 행정도시건설을 지켜 내겠다”는 뜻을 전달할 계획이다.

<연기|정혁수기자 overall@kyunghyang.com>

동계올림픽 유치 힘쏟은 강원 - “해외서도 유치 지원 열정·배려 잊지못해”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밤잠을 설치며 노심초사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렇게 황망하게 가시다니. 그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 입니다.”

26일 강원도청 대회의실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한만수 강원도국제스포츠위원회 사무총장(52)은 “2007년 7월 과테말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노 전 대통령이 보여주셨던 열정과 배려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밤 11시까지 시간을 쪼개 IOC 위원 40여명과 개별 면담을 할 당시에도 김치·마늘 냄새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들의 특성을 고려, 샌드위치를 드셨던 세심한 분이었다”며 “그렇게 고생하시고도 유치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관계자들을 격려하던 큰 어른이었다”고 애통해했다.

강원도청을 비롯, 14개 시·군 28개소에 설치된 분향소엔 밤 늦도록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틀간 1만3000여명의 추모객이 분향소를 찾았다. 분향소를 찾은 주민들은 “2002년 대통령 후보 시절 피해를 본 입은 양양 남대천을 둘러보던 중 마을 이장의 손에 격려금 봉투를 쥐여주며 ‘내가 돈이 없는 사람이어서’라며 겸연쩍어 하던 모습이 선하다”며 “서민들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지도자를 잃은 듯해 상실감이 크다”는 반응을 보였다.

<춘천|최승현기자 cshdmz@kyunghyang.com>

4·3학살 공식사과한 제주 - “유족들의 한 풀어준 평생 은인이었는데”

“열흘 울어도 부족하고 한달을 울어도 부족하다.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주어야 할 분을 어찌 이리 빨리 데려가셨을까.”

26일 제주시 신산공원 방사탑앞에 마련된 추모분향소를 찾은 한옥자씨(68· 제주시 조천읍)는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한씨는 “4·3 당시 할아버지가 억울한 누명을 써 희생당했다”며 “한을 풀어준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생의 은인”이라고 비통해했다.

제주 4·3 사건의 해결에 각별한 관심을 쏟아온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4·3 유족과 도민을 망연자실케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극우보수단체의 헌법소원 등 4·3 왜곡이 심해지는가 하면 4·3 위원회 폐지 등 정부 차원의 4·3 홀대도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4·3을 지켜온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제주도민에게 엄청난 상실감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다.

제주4·3유족회는 별도 분향소까지 마련했다. 홍성수 유족회장은 “노 전 대통령은 반세기가 넘게 제주도민을 빨강색으로 덧칠해 평생의 한으로 남아 있던 4·3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해결해준 국가원수로 기억한다”며 “충격적인 소식 앞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눈물로 옷깃을 여민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15일 제주 4·3에 대한 정부의 공식보고서인 진상조사보고서를 확정했고, 그해 10월31일에는 제주를 방문, 국가를 대표해 제주도민과 유족에게 공식사과했다.

<제주|강홍균기자 khk5056@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