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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와 슈퍼맨

장백산-1 2009. 9. 5. 23:46

바보와 슈퍼맨
번호 84678 글쓴이 김동렬 펌 조회 3274 등록일 2009-9-5 03:52 누리1103 톡톡0
 


“바보와 슈퍼맨”
‘희생의 정치 끝내야 한다’

(서프라이즈 / 김동렬 / 2009-09-04)


이외수의 ‘꿈꾸는 식물’을 생각한다. 식물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 있다. 약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민감한 센서를 가졌다. 그들은 작은 고통에도 크게 아파한다. 타인의 고통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육식동물의 영혼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들의 센서는 둔감하다. 자신의 고통에 둔감할 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도 무신경하다. 남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느껴지지 않으니 옆에서 누가 죽어가도 모른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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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위험에 처했다. 엄마가 뛰어들어 구한다. 어머니는 강하다고 말한다. 사자처럼 강한 것일까? 호랑이처럼 용맹해서 아기를 구한 것일까? 아니다. 아기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바보 노무현’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 표현이 내게는 마뜩치 않다. 오마이뉴스들은 말한다. 노무현은 바보니까. 우리보다 나은거 하나없는 평범한 보통사람이니까. 그러면서 얕본다. 깔아뭉갠다.

 

어느 순간 태도를 싹 바꾼다. 노무현은 강하니까. 노무현은 슈퍼맨이니까. ‘뭐 이명박 일당의 그 정도 탄압이야 우습지. 승부사답게 훌훌 털고 일어나 반격카드를 내밀거야.’ 유창선류 쓰레기들 말이다.

 

노무현은 강하니까 좀 씹어도 괜찮아. 그 생각으로 씹은 거다.

아기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뛰어든 엄마가 있다. 사자처럼 강한 어머니라고 말한다. 과연 오해일까? 자기책임 면하려고, 짐짓 방관한 자신의 무신경 면피하려고 다 알면서 오해한 척 한 것은 아닐까?

 

오해할 자격없다. 알거 다 아는 논객이라면.

분명히 말한다. 식물이 동물보다 강하다. 왜 약하니까? 민감하니까. 식물은 약하다. 작은 상처에도 많이 아파한다. 그 고통을 느껴봐서 안다. 고통을 알기 때문에 아기의 고통이 두 배로 증폭되어 전달된다.

 

엄마는 사자처럼 강해서 용맹하게 뛰어든 것이 아니라, 너무 아파서, 마음이 아파서, 아기의 고통을 지켜보는 자신이 아기보다 먼저 죽을것 같기 때문에, 그 죽음을 넘어서 뛰어든 것이다.

그들 비열한 자들은 두 가지 태도를 가진다. 하나는 ‘바보 노무현’이고 하나는 ‘슈퍼맨 노무현’이다. 깔아뭉갤때는 바보니까. 노무현이 탄압당할 때는 슈퍼맨이니까. 두 기준을 편한대로 가져다 붙인다.

 

김대중의 눈물을 보았는가? 진정성이 느껴졌는가?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다. 약하다. 너무나 약하다. 그런 사람이 강해진다. 사형언도 앞에서 의연하게 버틴 것은 사자처럼 강해서가 아니다.

비굴하게 타협해서 목숨 건져봤자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 가책의 고통이 너무 커서, 너무 아파서, 숨도 못쉴 정도로 아파서 어차피 못살고 죽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 고통 느껴본 사람은 안다.

노무현은 약하다. 국회의원도 못해먹겠다고 때려치웠을 정도로.

 

약하니까 못견디고 나간 거다. 약하니까 여의도 오염된 공기를 참지 못하는 거다. 이주일은 코메디라 했다. 뭐가 코메디인가? 카메라만 뜨면 눈에 쌍심지 켜고 핏대올리다가 카메라 렌즈가 옆으로 돌아가면 싹.

‘아이구 형님, 이번에는 제가 쏩니다.’

180도 태도를 바꾸어서 여야없이 친구가 된다. 어깨동무하고 신났다.

 

 노무현은 그런 역겨운 풍경에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것이다. 비위가 약해서. 노무현은 그 정도로 약한 사람이다. 순수한 사람이다.

누가 세상을 구하는가? 슈퍼맨인가? 아니다. 노무현처럼 약한 사람이 세상을 구한다. 탄광 속의 카나리아가 죽음으로써 광부들에게 공기오염을 알리듯이 가장 약한 사람이 자신의 몸을 던져 세상을 구한다.

 

아기 구하는 엄마처럼. 강하지 않다. 강한 사람에게는 아기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눈치보며 미적거린다. 그 한 순간에 이성의 판단보다 본능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신의 음성이 들려야 한다.

 

엄마는 약하기 때문에 작은 고통에도 많이 아파한다. 아기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된다. 그 고통이 죽도록 강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그 고통 견디지 못하고 뛰어든다. 죽음의 두려움조차 넘어서서 몸을 던진다.

용맹해서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픈 모습 지켜보는 자신이 아기보다 먼저 죽을거 같아서 죽음을 넘어선다.

 

순수한 사람, 약한 사람, 민감한 사람. 그런 사람을 야수들이 판치는 여의도 정글 속에 밀어넣은 자체가 잘못되었다. 노무현이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김동영이 큰절해서 다시 여의도로 끌고왔다.

살려고 나온 사람 그 정글에 죽어라고 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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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 수마트라 지역에서는 임금이 3년쯤 통치하면 신하들이 임금을 때려죽인다. 죽인 다음에 신으로 모신다. 그런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누가 찔렀나. 모셔진 신상에 제일 먼저 절하는 자가 찔렀다.

죽여놓고 신으로 떠받드는 정치 끝내야 한다. 사람 죽이는 정치 그만둬야 한다.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정치 없어져야 한다. 97년에 종필과 인제를 작업했고, 2000년에 노무현을 부산 인당수에 던졌다.

 

2002년에는 몽준을 작업했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될거라고 믿는가? 그 수법이 두 번 통했으니 세 번도 통한다고 믿는가? 이제는 자력으로 이겨야 한다. 누구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자력으로 이기려면 총력으로 싸워야 한다. 무엇이 총력인지 생각해보라. 저쪽 동부전선 포기하고 이쪽 서부전선으로 몰아주자? 그게 총력인가? 떼고 붙이고 몰아주고 그따위 잔머리로 이길 수 있다고 믿는가?

 

한 번도 자력으로 이긴 적 없다. 그 길을 가야 한다. 이제는 농부는 논에서 싸우고 공장노동자는 공장에서 싸워야 한다. 각자 자기 위치 지키면서 정당한 자기 권리, 자기 지분 행사해야 한다.

그냥 숙이고 들어와라. 이런거 없다. 날로 먹으려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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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바보도 아니고 슈퍼맨도 아니다. 누구보다 순수하고, 섬세하고, 민감할 뿐이다. 괴력의 영웅은 없다. 순수한 자가 세상을 구한다. 순수한 노무현이 오염된 여의도 공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영웅으로 섬기면서, 신으로 떠받들면서, 대신 사지에 몰아넣고, 그 '바보'에게 자기 짐을 다 지우고, 공치사 몇 마디로 대충 때우려는 비열한 태도 버려야 한다. 왜 그 짐을 나눠질 생각은 못하는가?

 

http://gujoron.com

김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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