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마침내 김대중 영전에서 고해성사하다
(서프라이즈 / 장경순 / 2010-06-07)
1997년 11월,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통령 선거가 목전이라지만 이 지경을 초래한 이상 집권세력은 국민 앞에 낯짝을 들어서는 안 되는 엄청난 민족사의 수난이 닥쳐온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집권자들이 뻔뻔한 얼굴을 쳐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IMF와의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은 직후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조순 명예총재는 대단한 고자질이라도 하는 기세로 IMF 총재와 통화사실까지 공개하며 김대중 후보를 비난했다. 어렵사리 성사시킨 IMF의 구제금융인데 국제 관행을 무시한 김대중 후보 때문에 효과가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 그들의 논지였다.
아무리 재협상 주장이 잘못됐다 쳐도 나라를 망친 죄보다 클까. 아무튼 그들의 목소리는 대단히 높았고 ‘재협상론의 무모함’이 선거 막판의 이슈가 되는 양상이었다. (2010년 오늘에도 그들은 그때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변명으로 무장하고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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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2월 3일 세종로청사에서 캉드쉬 IMF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임창렬 부총리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IMF 긴급자금지원 의향서에 서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최근 IMF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가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1997년 당시 IMF 처방의 일부 문제점을 시인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칸 총재는 “당시 어떤 실수가 없었다고 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연합뉴스는 “당시 고통에 IMF도 일부 책임이 있었음을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1997년 이른바 ‘IMF 처방’ 가운데서 한국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가장 큰 비극을 초래한 독약처방이 바로 ‘고금리 정책’이다.
명목상으로 고금리 정책은 한국 시장에 대한 돈 주인들의 흥미를 높여줄 수 있다. 이자가 높은 나라에 투자하려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원론에서 나온 얘기일 뿐이다.
그 당시 한국에는 설령 금리가 높더라도 이를 즐길만한 채권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았다. 한국에 제대로 된 채권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한국은행의 고 전철환 총재가 정부의 국채 인수 요구를 거부한 이후다.
오히려 한국의 형편은 고금리가 그대로 ‘대규모 서민 학살’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한국인들은 금융에서조차 온정주의를 뿌리치지 못하고 서로 보증을 교환하는 ‘맞보증’이 당연시되던 때다.
기대했던 외환 유입은 부진한 반면, 갑자기 치솟은 금리로 인해 기업이 무너지고 도망가는 가장이 속출했다. 내 빚을 갚아도 남의 빚보증 선 채무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자가 너무 높아 남의 빚 대신 갚을 엄두도 안나니 마침내 가족을 내버려 두고 도망치고 말았던 것이다.
회사 사장님이 부인과 위장 이혼을 하고 택시기사로 취직해 현찰로만 월급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러다 위장 이혼은 진짜 이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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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 맛을 잃은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날 기회는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위기를 조기 극복했다는 자화자찬은 ‘죽은 사람은 철저히 죽은 사람으로 깨끗이 포기한’ 상태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위기 발생 13년이 되는 해에, 김대중 대통령 서거 1년이 되는 해에 IMF 총수가 직접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했다.
또다시 다급했던 그때 재협상에 대한 미련이 되살아난다.
우리 맘대로 재협상이 되고 안 되고 하는 건 아니다. 미련이 강한 건 제대로 한번 도전도 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발목 잡기 식으로 재협상의 싹을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저렇게 상대 스스로 세월이 흘러 잘못을 인정하는 거라면, 그 당시 왜 우리가 치밀한 논리로 설득해 내지 못했을까.
외부의 상대를 설득하기보다는 내부의 정적을 음해하고 박해하는 것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 사람들은 어차피 금리가 살인 수준으로 올라가도 자신들의 가계에는 하등 지장이 없는 고귀한 분들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IMF보다도 먼저 나서서 재협상의 말도 못 꺼내게 윽박지른 다른 한국인들은 이후 목숨을 버린 무수한 사람들의 영혼 앞에서 어떤 심정을 지니고 있을까. 그들 영혼에 사죄하는 자체가 ‘김대중에게 굴복하는 것’ 정도로 여기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