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전 한은 총재가 지켜본 노 대통령의 '서민 걱정' 회고록에서 부동산, 양극화 등 '노무현의 역설' 진단...'정책효과는 현 정권이 누려"
(노무현재단 / 2010-12-10)
참여정부 말기 항간에는 ‘효자동의 개가 짖어도 노무현 탓’이라는 말이 있었다.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수구기득권의 집요한 물어뜯기에서 비롯됐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친서민’을 표방했던 참여정부가 집권한 후에도 서민들의 삶은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았다는 실망감도 일조했다.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을 거쳐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최근 “서민을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집권 후반기에 낮은 평가를 받아 허망했다”는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친서민’을 표방한 참여정부의 위기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집권 후반기에 서민들로부터 왜 인색한 평가를 받았을까?
이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지만, 한국은행 수장으로서 참여정부의 정책운영을 깊숙하게 지켜본 박승 전 총재(74)가 내놓은 진단이 눈길을 끈다. 그는 얼마 전 출간한 회고록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를 통해 이른바 ‘노무현의 역설론’을 내놓았다. 노 대통령은 진심으로 서민을 위한 정책을 추구했지만,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었던 외부환경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회고록을 통해 정책결정 과정에서 지켜본 노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도 소개했다.
박 전 총재는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8~89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을 했으며, 1999년 한국경제학회장, 2001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을 역임하고, 2002년부터 4년간 한국은행 총재로 재직했다. 그는 6공화국부터 김영삼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까지 두루 요직을 거친 인사로, 특히 일산·분당 신도시 건설 추진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참여정부 초기 그를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노 대통령은 임기를 존중하는 쪽을 택했다.
참여정부 출신의 한 인사는 “참여정부는 한국은행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인사 불개입이 원칙이었다”며 “박 전 총재는 제3자의 입장에서 참여정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관저회의와 대통령의 진면모
박 전 총재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편에 있었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2003년 카드채 문제로 청와대 관저에서 정부, 청와대, 한국은행 관계자들이 모인 대책회의가 있었다. 앞서 몇 년간 신용카드 회사들이 연리 20% 안팎의 고리대금을 하다가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돈을 못 갚게 되자 카드회사들이 부도 위기에 몰린 것이다. 당시 카드회사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한 채권이 100조원에 이르렀다.
이때 모든 참석자들은 어떻게 하면 금융기관 부실화를 막고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진행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리대금을 못 갚은 신용불량자들과 가계부채 문제라고 말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우선 세우도록 주문했다. 노 대통령의 주문으로 카드대출 금리인하, 신용불량자 대책, 신용회복위원회 발족, 가계부채 대책 등 ‘친서민 대책’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박 전 총재는 또 노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관저회의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서 주요 경제현안 회의를 주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박 전 총재는 “이런저런 공직을 겪으면서 많은 청와대 회의를 경험했지만 대통령 관저에서 회의는 처음이었으며, 또 그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회의를 해보기도 처음이었다”고 회고했다. 회의는 상의를 벗고(때에 따라서는 넥타이도 풀고) 식사를 하며 농담도 주고받으며 진행됐다. 그때 노 대통령은 담배를 태우고 있었는데 담배를 권하기도 했다고 박승 전 총재는 기억했다.
외부효과로 인한 ‘노무현의 역설’
박 전 총재는 임기 4년 중 3년은 노 대통령과 일을 했다며, 수없이 정책관련 회의를 했는데 노 대통령은 한마디로 친서민 정서가 몸에 배어 있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모든 정책이 친서민 위주였고 서민들을 무척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혜택을 본 사람들은 부유층과 대기업이었고, 빈부격차는 더 커졌다는 것이다.
박승 전 총재는 이것을 ‘노무현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즉, 노 대통령은 배를 동쪽으로 열심히 저었는데 역풍을 맞아서 결국 배가 서쪽으로 간 경우에 비유했다. 그는 이를 매우 안타까워했다.
박 전 총재는 이러한 ‘역설’의 원인으로 집값과 양극화 현상을 꼽았다. 집값은 집권기간 내내 높은 상승세를 유지하여 참여정부를 시종 괴롭힌 문제였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상승을 반도덕, 반형평의 사회적 죄악이라고 말할 만큼 강한 거부반응을 나타냈다고 했다. 특히 서민생활을 더 어렵게 한 ‘역설’의 원인으로, 경쟁우위의 대기업과 경쟁열위인 중소기업, 자영업, 농업의 양극화 현상을 꼽았다.
대통령의 노심초사, 그리고 역사의 평가
박 전 총재는 집값 상승과 관련한 수많은 회의를 주재하면서 노 대통령은 늘 최강도 대책을 주문했고, 그 대표적인 성과가 부부 합산 6억원 이상 주택에 대해 고율로 누진과세하는 ‘종합부동산세’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양도소득세 중과, 주택담보비율 인하 등 여러 가지 대책을 동시에 시행했다. 그러나 정책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어서 노 대통령 임기 중 그 효과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집값 안정 효과는 후임 정권이 누리게 됐다고 분석했다.
박 전 총재는 특히 양극화 문제가 노 대통령이 가장 노심초사한 현안이었다며, 청와대에서 여러 차례 대책회의를 열고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묘안이 없었다고 고백했다(노 대통령은 2006년 2월 총리관저 모임에서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에게 비정규직 비율에 대해 파악해오라고 했더니 무려 1년이 걸리더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양극화의 원인으로 강한 자만 살아남는 세계화 개방질서, 저임금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중소기업, 자영업, 농업 부문의 몰락을 꼽으며, 이 문제는 세계경제 질서와 관련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서 정책적 노력만으로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러한 ‘역설’은 여전히 진행형 과제이며, 만일 현 정부가 이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지 않는다면 민생고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박 전 총재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노심초사했던 이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한 채 떠나신 노 대통령의 명복을 빌었다.
한편, 박승 전 총재는 지난해 5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울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방명록에 "시민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수 노무현, 역사는 길이 기억할 것이다"라고 남겼다.
노무현재단
출처 : http://www.knowhow.or.kr/foundation_story/story_view.php?start=0&pri_no=99957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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