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기 그리고 하나되기
요즈음 들어
더욱 그런 생각이 가슴을 칩니다.
사람이며 동식물
이 산하대지 자연 삼라 만상...
풀 한 포기며, 나무 한 그루
흙 한 줌에서 볼을 스치는 바람에 이르기까지
이 추운 날 오후 따스한 햇살 한 줄기,
저녁 나절 절 앞마당으로 고개를 숙이는 산그림자며,
저 산 너머로 수 줍은 듯 붉게 그려지는 노을
절 앞마당에서 꼬리를 흔들며 뛰어노는
우리절 강아지 심안이 또 마음이...
이 모든 내 주위의 식구들이
나와 한 가 족, 한 몸이구나 하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손길이 범접 하지 않은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둔 것들이
가장 생기 발랄하게 살아 있구나 느낍니다.
세상의 법칙 대로
있는 그대로 내버려 진 것들에게서
그 어떤 살아 있는 스승 같은 그 무엇을 느끼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은
애쓰지 않고, 억지 부리지 않고, 자기 생각 내세우지 않고
대 자연의 순리에 모든 것을 맡기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고 보면
나를 포함한 우리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아주 여법하게 잘 살고 있는
우리의 많은 자연 식구 들을
너무 못살게 굴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사람의 손길이 타게 되면
함께 사람의 욕심도 타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러움의 맛을 잃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란
자연을 대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바라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있는 그대로 충분히 본다는 것은
자연을 충분히 사랑한다는 것이고
그 순간 아무런 분별 없이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연을 바라볼 때
어떻게 써먹을까 하는 궁리만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용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하는...
그런 것 이외에
그냥 자연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요.
아무런 분별도 가지지 않고
아무런 판단이나 이용가치를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말입니다.
가만히 발길을 멈추고
언제나처럼 사무실 앞을 지키고 서 있는
한 그루 작은 나무를 바라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 나무에 등을 기대고 가슴을 기대에 본 적이 있는지요.
한 여름에 땀을 식히려고 그늘을 찾는다거나,
내 편리에 의해 이용하려는 마음으로 찾는 것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평화로운 마음으로
만나 보셨는지를 말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자연과 진정으로 만날 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이기심이나 이용가치를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만나는 것 말입니다.
그랬을 때
우린 비로소 사람과 만나는 법도,
다른 모든 세상과 만나는 법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랬을 때
아마도 우린 비로소
모든 것들과 만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 아닐까요?
눈귀코혀몸 뜻으로 만나는
모든 감각적인 대상을 대할 때도
그저 있는 그대로
아무런 판단이나 분별 없이 순수하게 바라봐 주세요.
그냥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그냥 그렇게 보는 것이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았을 때
보는 대상과 보는 이가 따로 따로가 아니게 됩니다.
둘은 따로 나뉘지 않는 순수한 하나가 되고
또한 순수한 사랑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라보기'
이것은 이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가 소박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실천할 수 있는
아마도 가장 소중한 수행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세상과 하나될 수 있고,
풀 한 포기 작은 자연과도 하나될 수 있으며,
딱정벌레와도 하나될 수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과 하나될 수 있고,
진리와 하나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할 지 모를 실천행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이 바쁜 세상 속에서
바쁨 속에 내몰려 이리 저리 쫓기지만 말고,
잠시 짬이라도 내어
텅 빈 맑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세요.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일지 모릅니다.
바쁜 걸음 잠시 멈추세요.
들고 내는 숨을 바라보고,
걷는 걸음 걸음을 바라보고,
하루 종일 조잘 거리는 입도 한 번 바라보고,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몸도 바라보고,
원숭이처럼 늘 날뛰기만 하는 생각들도 바라보고,
예전부터 사무실 청소하시던 아주머님도,
매일같이 출퇴근 시켜 주시는 버스 기사 아저씨도,
출퇴근 길에 스치던 이름
모를 눈에 익은 많은 사람들도,
회사 앞에서,
혹은 아파트 앞에서 항상 마주치는 경비 아저씨 하며,
이따금씩 들리는 미용실, 슈퍼 마켓 주인 아주머님 또한
어쩌면 사소하다고 생각하고
별 관심 없이 스쳐 지나쳐 온 수 많은 이웃들에 대해서...
오늘은 좀 더 마음 을 모아
따뜻한 사랑을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아 주시길...
보도블럭 사이로 힘겹게
솟아난 작은 야생 풀도 바라보고
입사 때부터 있어 왔지만
한 번도 관심 어린 사랑으로 보지 못했던
나무 한 그루도 보아주고,
집 뜰 곳곳에 피어오른 소박한 풀들에 서부터
저벅 저벅 뒷산으로 올라 시선 가는 곳곳 마음으로 바라보고,
때때로 새벽 청청한 공기를 맞으며
산 위로 떠오르는 첫 햇살을 온몸으로 느껴 보고,
퇴근길 서산위로 붉게 물든 노을도 충분히 보아주고,
사무실 한 켠에 외로이 서 있는 화분에 물도 줘 보고,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들은
또 우리 가 마음을 모아 관심 가져 주어야 할 것들은
내 눈과 마음에 밟히는 생명 있고 없는 모든 것들입니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 사소함이 나 자신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바라봄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 입니다.
참으로 바라보았을 때,
바라보는 나도 없고, 바라보는 대상도 없으며
좋은 대상도 싫은 대상도 없고,
옳은 것 도 그른 것도 없고,
오직 순수한 동체대비의 사랑과 지혜로움이
우리들 뻑뻑한 속 뜰을 맑게 적셔 줄 것 같습니다.
법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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