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스크랩] 목탁 염불과 기도, 연기법의 올바른 이해

장백산-1 2011. 9. 26. 13:09

목탁소리와 염불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마음의 평온함을 느끼기도 하며,

염불을 독송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느끼기도 한다.

이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행위와 같이 생각(마음)의 흐름이 다른 곳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의 생각(마음)은 감각기관의 흐름에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반복 순환되는 윤회과정이다. 생각의 윤회. 그것의 의 흐름은 "나는 이런 사람"이며 "나는 죽을 것이다"라는 한정된 "나"의 안위에 따른 집착과 욕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연기법에 대한 설명과 같이 "나"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대상이 있듯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흐르는 모든 생각들. 생각의 윤회의 결과는 어떤 것을 나로 아는 그릇된 앎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의심일 수밖에 없으며 의심의 결과는 또 다른 의심, 그리고 부정에서 비롯된 고통과 괴로움, 근심과 걱정 등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원인은 실체가 없으며 실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그릇된 앎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근원이다. 

 

사람들은 나와 대상과의 관계. 즉 연기법에 대한 설명에서...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다는 말의 근원이...

그릇된 "나"가 있기에 "대상"이 있다는 설명에 대해서 납득할 수 없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그릇된 "나"가 없음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가 없음에 대해서 "깊이 잠들어 있는 시간동안"이라고 설명하지만 그 말 또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알지만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와 오해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느날. 여행길이거나 또는 낯선 곳이거나, 또는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실려 갔거나... 

어떤 경우에 깊은 잠에 빠졌다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느끼는 느낌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잠에서 막 깨어나서는 "여기가 어디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경험이 있다면 이해가 쉽다. 

여기서 "여기가 어디지" 라는 말의 뜻은... 

"내가 있는"  "여기가 어디지"라는 말이다. 

 

매일, 매일 그런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잠이 든 시간 동안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할 수도 없으며, 있다, 없다, 라는 생각도 있을 수 없으며 생각이 없을 수 없다는 생각도 있을 수 없다. 

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 공, 무... 등으로 설명되었으니....... 

 

잠 든 동안에는 "나"라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깨어나면서 처음 일어난 생각이 "내가 있다" 이며... 그 다음에 일어나는 생각이 "여기가 어다지?" 라는 생각이다. 

 

이것이 연기법이다.

나가 있기에 대상이 있다는 말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불경에 기록된 말들 중에서 연기법이라는 말을 한 사람이 석가모니라면 위와 같은 의미에서 말을 한 것이다. 

허헛, 석가모니가 중국말을 한 것도 아니며 한국말을 한 것도 아니니 참고하면 될 일이고... 

예수도 한국말을 한 것이 아니니. 

 

맹신자, 광신자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늘나라에 들림을 받을 것이라고 믿기도 하며, 영혼(영가)이 목탁소리와 염불소리를 듣는다고 믿기도 한다.

 

지금 바쁘다며 달려 나가서 다다르는 곳은 어디인가?

재미있는 것들을, 맛있다는 것들을 찾아서, 더 많은 것들을 얻기 위해서 달려나가는 곳은 어디인가?

더 빨리, 더 멀리, 더 많이 달려나가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목적지는 어디인가?

그렇다.

죽음. 죽어도 싫은 죽음을 향해서 달려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해야만 하면서도 바쁘게, 바쁘게 달려나가려 한다. 

내일, 내일, 내일... 좀 더 낳은 미래... 행복과 평화, 그리고 자유...

그대가 가고 있는 곳, 바쁘게 달려 나가서 다다르는 곳은 죽음이다.

달리 어떤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그런가?

 

실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이다.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한 구절의 생각.... 그것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존재의 의미, 의심의 근원으로 가는 길을 갈 수 있다.

 

석가모니는 목탁을 두드리지도 않았으며 염불을 하지도 않았다.

예수는 일념을 공부하였기에 "하루종일 기도하라"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라고 하였다.

석가모니는 반야심경을 통해서 신비하고 신비하다는 주문을 끝임없이 염송?하라고 하였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 라는 주문에 대해서 "일념"으로 이해한다면 올바른 앎이다.

오직 한 구절의 집중에 의해서 삼매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그리고 출판예정인 "비밀의 언어,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등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일념을 통해서 그 길을 가라고 하였다.

 

왜, 가장 두려운 죽음을 향해서 바삐 달려 나가는가?

지금, 지금, 지금, 이 순간만이 실재이다.

 

인류의 자유와 평화 오직 진리의 길에서 하나될 수 있다.

진리. 오직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출처 : 비밀의 언어 불이일원론
글쓴이 : 진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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