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 병이다

장백산-1 2016. 4. 17. 17:46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 病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自己에게서 비롯됩니다. 나를 떠난 世界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느낌 감정,

생각 상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분별심, 분별의식을 일으킬 때 이 세상 그 모든 것들이

생겨나는 겁니다.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입니다

 

내가 느낌 감정, 생각 상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분별심 분별의식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있다거나 없다고 規定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온갖 것들이 나의 느낌 감정, 생각

상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분별심 분별의식을 통해 드러난다는 洞察(통찰)은 나의 느낌

감정, 생각 상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분별하는 마음 분별의식 바깥에서 무언가를 찾는

그런 느낌 감정, 생각 망상 상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도 의지, 분별심 분별의식 들을 쉬게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단지 나의 느낌 감정, 생각 상상 상념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분별의식

분별심의 發露인 꿈 허깨비 신기루 아지랑이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虛想이라면 나라는 것이 있다고 착각하는 생각조차도 따로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지금 이렇게 나의

느낌 감정, 생각 망상 상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분별심 분별의식을 통해 이 세상 모든 것

들이 드러난다는 生覺 이것조차도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幻想  虛想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해

가 아니라 투철한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事實을 모든 先知者들이 깨달은  것입니다.

 

열반경(涅槃經)에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온갖 일이 남에게 매였을 때엔 그것을 이름하여 괴롭다 말하고

온갖 일을 내 맘대로 하게 될 적엔 자재하고 안락하다 말하지만

온갖 것에 교만한 마음을 낼 때엔 그 형세가 지극히 포악하나니

착하고 어진 이는 어디서라도 온갖 것을 사랑하고 배려하느니라.

 

물론 이러한 말을 記憶하고 쥐어서 이 말에 따로 價値를 부여한다면 진정한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아닙

니다. 이런 말과 같은 줄 깨달았으면 이런 구절도 집착해서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할 수 있고 생각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맛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나 혹은 이것의 所産이라면

드러나는 대상 경계 즉,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저절로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당장 바로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별의별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그것들은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여기서 홀연히 한 生覺, 卽 對相化가 일어나지만 그런 일이

없는 겁니다. 이 世上을 對相化하는 生覺 分別心 分別意識이 모두 실체가 없는 또다른 허망한 妄想

煩惱 雜念 生覺 분별심 분별의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이란 그저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일 뿐입니다. 實體가  있는 實在가 아닙니다. 그런데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虛妄한 이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의 출몰 작용은

나의 意志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들 스스로의 因緣이 이렇게 일어나도록 條件 지어

져 있기 때문에 내 생각 마음 의식의 통제를 벗어난 것들입니다.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의 因緣이 이러하니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이

치성하게 혹은 그렇지 않게 끊임없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니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의 많고 적음을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허망한 이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을 인위적으로 억압하려 의도하는 것이나 조작하려는 것이

自身도 모르게 그런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에 속고 있는 또다른 강력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

분별의식입니다.

 

그런데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은 끊임없이 계속 일어나지만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은

그저 고정된 실체가 없는 虛妄한 파동하는 에너지정보체이기 때문에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허망한 일에 사로잡힐 理由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가 아닌 일에 얽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체가 없는 허망한 온갖 生覺 번뇌 망상 분별심 분별의식이 일어나더라도

그것들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느낌 감정이나, 상상 이미지나,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나, 분별심 분별의식이나, 사물이나

여러 가지 對相 境界들이 이 세상으로 드러나더라도 나타난 그것들은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사

라져야만 할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들입니다.

 

허망한 그것들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이 세상으로 드러나는 온갖 것들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마음의 헐떡임이 점점 줄어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視野가 확트이고 맑아지는 느낌 혹은 바보가 되는 느낌

받습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이 전부인 것같은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세상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게 다가 아니라는 事實을 체험을 하게 되는 機會가 열리는 겁니다.

 

누구나가 모두 다 실체가 없는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이 오염 될 수가 없는 맑고 깨끗한

根源의 性稟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 맑고 깨끗한 근원의 성품이 실체가 없는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

별심 분별의식에 심하게 오염되어 있지 않다면 어렵지 않게 이 근원의 성품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많은 善知識들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머물러라. 혹은 바로 이것이다 등의 시공간의 여지를 두지

않는 方便의 말 즉, 話頭를 통해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에 떨어지지 않도록 이끕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나 바로 이것은 바로 지금 당장 눈앞을 암시하기에 마음 본래의 성품 즉,本性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을 쉬게 하는 역할

니다. 그런 설법을 꾸준히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는 이유는 이 말의 이끌림을 통해

자기도 모르게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에 얽매이고 사로잡히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에 집착해서 사로잡히는 것이 번뇌이기에

그런 번뇌 망상 생각 분별심 분별의식에서 벗어나는 變化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소에 어떤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이 일어나더라도 그것들에게 마음을 두지 않는 일종의 휴식기가 필요합니다.

어차피 실체가 없는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에서 解放되는 공부가 마음공부입니다.

 

結局에는 실체가 없는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을 일켜서 쓰더라도 이 세상에는 아무 일

이 없다는 事實을 깨닫고 터득하는 일이지만, 마음공부 시작부터 그런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게 되면 번뇌 망상 생각

분별심 분별의식이 줄어드는 變化를 겪으면서 自己도 모르게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에

부여했던 믿는 마음을 서서히 거두어들이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에 집착하고 사로잡히는 習性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이 아닌 분별하는 마음의 본래성품, 本性을

체험하게 됩니다. 本性 이것을 체험하면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의 虛妄한 성품이 더 적나

라 하게 드러납니다. 생각 마음 의식의 이런 變化를 통해 完全한 解脫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스스로도 이 길밖에 없다는 분명한 확신을 하게 됩니다. 어떠한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에

도 집착하고 얽매이는 생각 의식 마음이 없다면 허망한 모든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 이미지, 想

念이 일어나는 發顯地인 본래의 마음자리가 저절로 드러납니다. 내가 찾아낸 본래의 마음자리, 본성이 아

니라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이 쉬어지니까 이것들에게 가려져 있던 본성,본래의 마음자리

가 鮮明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금강경에 말하는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가 이 말입니다.

 

이때 내가 본성, 마음의 본래의 성품, 본래의 마음자리를 찾았다는 또다른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을 일으키게 되면 도로아미타불격으로 다시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本來부터 이것일 뿐인데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이 이것을 가리고 있어서 이것

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인 겁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우주삼라만상만물, 우리들 모든 것들이 오직 마음 하나일 뿐입니다. 一切가 오직

唯心造입니다. 萬法 宇宙萬物이 오직 意識 하나일 뿐이고(萬法唯識), 三界가 오직 마음 하나일 뿐이고

(三界唯心),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이렇게 당연하고 분명한 이 일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우리들, 우주삼라만상만물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눈앞에서 분명해질 뿐

꿈 허깨비 신기루 아지랑이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은 現象에 불과할 뿐인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이 세상 모든 것들, 우리들, 우주삼라만상만물 바깥에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경험하는 이 세상 모든 것들, 우리들, 우주삼라만상만물이 전부

마음 하나일 뿐인 겁니다. 앞과 뒤 안과 밖이 없이 宇宙 全切가 그냥 그저 如如할 뿐입니다. 마음의

그림자 없이 공부의 안목이 활짝 밝아져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온갖 경계 대상이 드러나더라도

그것들이 아니지만 그것들로서 恒常한 眞實, 常住不滅, 不生不滅, 色卽是空 空卽是色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모든 것들, 우리들, 우주삼라만상만물의 바탕인 본래 마음자리, 마음 본래의 성품, 본성

은 늘 영원히 깨어 있어서 거기에서 이 세상 온갖 것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찾을 필요

없이 지금 당장 누구에게나 본래부터 이미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것 이 하나가 온 우주이고,

이것 이 하나가 진정한 나, 참나, 진짜 나, 본래의 나, 근원의 나이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경천동지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한들 그 일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그저 유유자적 허망한 온갖 生覺 망상 번뇌 분별심 분별의식과 느낌과 사물과 행동과 말 가운데 그냥 그저

如如할 뿐입니다. 如如함은 내 마음의 고요한 물결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寂寂한 물결 상태

와 상관없이 어떤 형태의 내 마음의 물결이 치든 즉,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本來 如如

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제 당장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허망한 生覺 망상 번뇌를 일키지 말고 분별의식 分別

하는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이 세상 그 어느 것에도 分別하는 마음을 두지 않으면 저절로 生生한 깨어있음

이 드러납니다. 바로 이것이 말입니다.

 

- 릴라 임순희-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글쓴이 : 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