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지와 릴라
유당||2016.08.02. 20:06http://cafe.daum.net/yourhappyhouse/F9lO/1907
똥냄새를 맡고
상서(尚書) 막장(莫將) 거사는 서촉(西蜀)에서 대수(大隨)의 남당 원정(南堂元靜) 禪師를 찾아 뵙고 마음
의 要體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원정 선사는 그에게 모든 곳에서 마음을 참구하도록 하였다. 하루는 마침
변소에 갔는데 갑자기 똥냄새가 물씬 났다. 급히 손으로 코를 감싸 쥐다가 마침내 깨우친 바가 있었다.
곧장 원정 선사에게 깨우친 바를 게송으로 지어 바쳤다.
“이제껏 風流를 사랑하는 태도로 마음 밖에서 마음을 求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비웃었던가?
천차만별이기에 마음(心) 그것을 찾을 곳 없었는데 마음을 얻고 보니 原來 코끝에 있었구나.”
원정 선사가 역시 게송으로 답하였다.
“한 法에 通하자 法과 法에 두루 通하고 縱橫(종횡)으로 妙한 作用을 하는데 다시 무엇을 구하랴!
푸른 뱀이 굴에서 나오니 魔軍(마군)이 항복하고 푸른 눈의 달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네."
이 世上에 없던 것이 새롭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알아차리기 쉬워도 本來부터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變함없이 無始無終으로 있는 것은 좀처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自然
스럽고 當然한 것은 오히려 알아차리가 어려운 법입니다. 늘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익숙하고 마치 없는 것 같고,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모르는 것 같이 느껴지는 存在가 바로
'마음(心)' 입니다.
여러분, 한 번 곰곰히 잘 生覺해 보십시오. 佛法 공부, 마음 공부, 道 공부, 깨달음 공부가 지금은 없는
무엇을 새롭게 얻거나 없었던 어떤 能力을 성취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佛法, 마음, 깨달음이 텅~ 비었
다 하고,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경전에서도 한 法도, 아무것도 얻을 바가 없는 것을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無上正等正覺, 아뇩다라샴막샴보라)라고 말 하였습니다. 불성(佛性)은
本來부터 이미 완전하게 宇宙萬物에게 平等하게 갖춰져 있는 것이기에 佛性을 일컬어서 마음(心),
自己의 性稟(自性), 自然의 性稟(自性)이라 부릅니다.
바로 당장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가고 서고 앉고 눕고, 사람들과 말도 하고 밥도
먹고 잠도 잘 줄 아는 '이것'이 무엇입니까? 차가우면 찬 줄 알고 더우면 더운 줄 아는 이것, 배고프면 배
고픈 줄 알고 졸리면 졸린 줄 아는 이것을 떠나서 따로 '마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라는 것이 物件이나 事物로서 있는 것이라면, 바로 지금 여기에 고정된 실체로서 이렇게 있는 것
이어야 합니다. 예화 속의 막장 거사가 원정 선사에게 마음(心)의 要體를 묻자, 선사는 모든 곳에서 참구
하라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마음(心)을 마주 하고 있으니 宇宙空間에 充滿한 그 마음
(心) 그것을 스스로 알아서 깨치라는 가르침입니다. 實際로는 그렇게 마음(心)을 찾고 있는 自己 自身이
바로 마음(心)입니다.
本來부터 이미 宇宙萬物에게 完全하게 갖춰져 있는 마음(心)이 바로 自己 自身, 진짜 나, 참나, 부처, 본성
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特定한 肉身이나, 느낌 감정, 생각 상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분별심 분별의식 인식 또는 그러한 것들의 總體라고 錯覺합니다. 자기가 아닌 對相 境界를 나
로 同一視 하는 바람에 자기를 忘覺하는 겁니다. 오래된 수행자들 조차도 本來부터 이미 완전하게 있는
참된 自己, 마음(心)을 모르니 마음(心) 바깥으로 있지도 않은 특정 경계, 특정한 의식의 상태를 추구하
느라 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공부 길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아무리 그럴듯한 境界라 할지라도 없다가 생긴 것, 새롭게 얻은 것
은 모두 텅~비어 實體가 없는 虛妄한 境界 幻想일 뿐이지, 實在, 참다운 法(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있는
것), 마음, 자기가 아니라는 事實을 明確하게 銘心해야 합니다. 마음(心)을 알기 위한 모든 수행 方便도
결국엔 치달려 求하는 미친 마음을 쉬어서 本來부터 이미 완전하게 있는 마음(心), 불(부처), 불성, 본성,
진짜 나, 참나, 본래면목, 진공장, 영점장, 우주마음,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존, 끊임없이 무시
무종으로 파동하는 우주근원 에너지를 깨닫도록 돕는 수단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方便에만 매몰된 채 인위적 조작적 의식적인 유위의 노력을 집중하여 반복하다 보면 이상한 경계
들이 나타나 수행자를 현혹시킵니다. 깊고 고요한 三昧라든가 활짝 깨어있는 意識의 상태, 비범한 能力들
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경전에 이르기를 法마저도 버리라 하였거늘 하물며 法이 아닌 非法은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일반인들의 生覺과는 달리 眞理, 佛法, 道, 마음(心), 禪, 法, 佛(부처), 깨달음, 진짜 나, 참나, 본래면목,
주인공, 영점장, 진공장, 무시무종으로 끊임없이 파동하는 우주에너지정보장, 눈앞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는 너무나 當然하고, 지극히 平凡하고, 지극히 單純하고, 지극히 平等합니다. 그러므로 진
리, 진짜 나, 깨달음, 부처는 결코 우리 人間 欲望의 對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입견, 편견,
악지악각(惡知惡覺)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本來부터 이미 완전무결하게 갖추어져 있는 깨달음의 自
然의 性稟이 自然스럽게 저절로 드러납니다.
하루는 막장 거사가 변소에 갔다가 갑작스런 지독한 똥냄새를 맡게 됩니다. 역겨운 똥냄새에 손으로 코
를 감싸 쥐다가 막장 거사는 홀연히 깨닫게 됩니다. 흔히 시각적 자극, 청각적 자극, 촉각적 자극에 촉발
되어 깨달은 사람은 많지만 막장 거사처럼 후각적 자극에 의해서 깨달음이 촉발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막장 거사가 지독한 똥냄새를 맡고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지금 여기에서 무슨 냄새가 납니까?
예를 들어 막장 거사처럼 똥냄새를 맡았다고 합시다. 조금 전까지는 똥냄새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화장
실에 가니 똥냄새가 납니다. 볼 일을 보고 나와 세면대 앞에서 香水를 뿌리니 이번에는 향긋한 꽃냄새가
납니다. 냄새들은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온갖 냄새를 다 맡는 그 놈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놈은 스스로 어떤 냄새도 없이 텅~비어 있지 않은가요? 텅~비어 있는 그 놈은 없다가 새로 생겨났
거나 새로 배워서 얻은 놈이 아니지 않습니까? 너무나 當然하고 自然스럽지 않은 가요? 사람마다 누구
나에게 平等하게 갖추어져 있는 놈이 아닌가요? 이놈 이것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
요할까요? 이놈 이것은 세수하다 코 건드리기보다도 더 쉬운 놈이 아닌가요?
막장 거사의 게송을 잘 보십시오. 마음 바깥의 대상 경계 가운데서 마음을 찾으려 할 때는 대상 경계가
천차만별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마음을 찾을 곳이 없었는데, 막상 마음을 찾고 보니 原來부터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錯覺, 어리석음 무지 무명 때문에 허망하고 헛된 分別心, 分別意識, 알음알이(識),
知見, 見解, 理海에 속아서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것을 찾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원정 선사의 게송을 잘 보십시오. 냄새 맡는 것에서 한 번 通하면 온갖 곳에서 두루 通합니다. 마음이라
고 하는 것은 둘이 없기 때문입니다. 一切가 바로 그 마음 하나뿐입니다. 만법유식, 삼계유심, 일체유심
조,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입니다. 무시무종으
로 우주허공에서 종횡으로 그 묘한 작용이 자유자재합니다. 모든 분별과 그로 인한 생각 망상 번뇌가 의
미를 상실하는 까닭에 이유 없는 平和와 安息이 깃듭니다.
깨달음, 해탈(자유), 열반(행복)은 우리들, 우주만물, 이 세상 모든 것의 본래 상태, 본래면목, 참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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