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MB 험담하지 않겠다” 송금조건 합의문에 포함…
<주간경향> 김경준 주고받은 편지 공개
10년 전 그 옷이었다. 2007년 11월 16일, 한국으로 강제 송환될 때 공항에서 입고 있던 겨울용 양복코트. 3월 28일 오전, 천안외국인교도소에서 김경준을 잠시나마 만날 수 있었다. 얼굴은 다소 창백했다. 김경준씨의 모친 한영애씨에 따르면 김씨는 만기출소를 앞두고 며칠동안 잠을 자지 못했고, 설사로 고생을 했다고 한다.
만기출소와 동시에 승합차로 청주외국인보호소로 이송되었다. 이곳에서 심사를 거쳐 다시 강제추방된다. 추방 이후에는 5년 동안 한국에 들어올 수 없다. 김씨는 승합차 맨 뒷자리에 홀로 앉아 있었다. 교도소 입구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은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고 투덜거렸다.
다시 10년 전. 강제 송환 19일 뒤인 2007년 12월 5일 검찰이 중간 수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했다. 발표자는 당시 김홍일 3차장검사였다. TV 생중계로 검찰 발표를 지켜보던 동료기자가 한숨을 쉬며 “다 끝났다”고 탄식했다. 대선 2주를 남기고 검찰이 내린 결론은 “김경준의 사기”라는 것이었다. 대선일 3일 전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만들었다”는 이명박 당시 후보의 이른바 광운대 특강 동영상이 공개되었지만 대세는 바뀌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가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인수위 시절 조사한 정호영 특검도 “이명박 당선인과 BBK 주가조작 사건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BBK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듯했다.
“이명박 집권 후에 BBK 사건과 관련해 의아스러운 일이 있었다. 2011년 김경준의 누나인 에리카 김이 한국에 왔다. 당시 김경준은 감옥에 있었다. 그해 2월 1일, 김경준이 소유한 회사의 스위스 계좌에서 다스로 돈이 입금된다. 과거 김경준이 횡령했던 140억 원이었다. 그리고 2개월 뒤인 4월 11일 다스는 8년간 끌어온 모든 소송을 취하했다.”
지난해 10월, 한때 MB의 최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이 <비즈한국>에 연재하는 ‘정두언 참회록’에 적은 글이다.
정두언 전 의원이 이 일을 ‘의아스럽다’고 말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데 미국에서 그 일이 문제가 됐다. 왜냐하면 그 회사가 소위 지불정지 상태에서 돈을 빼내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굉장히 해괴한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다스는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뒤 과거 김경준에게 사기당해서 떼인 돈을 다 받아낸 셈이 됐다. 그 엄청난 물의를 빚고도 다스는 결국 단 한푼도 손해를 보지 않은 셈이다.”
다스는 2000년 BBK에 190억원을 투자했다.
이때 김경준과 이 전 대통령은 동업하고 있었다.
1999년 말부터 2001년 말까지 BBK를 통해 투자받은 자금은 모두 712억원이었다.
구체적 내역을 보면 삼성생명이 100억원, 오리엔스 22억원, 장신대학 4억원, 대양이엔씨 120억원, 심텍 50억원, 조봉연 100억원, 그 밖의 개인투자자 126억원이었다.
이 자금을 바탕으로 김경준씨는 광주은행 광은창투를 인수했고 옵셔널벤처스를 설립해 불법유상증자로 수백억원을 조성한다.
앞서 BBK 투자자들은 모두 돈을 돌려받는데, 다스는 50억원만 돌려받았다.
다시 말해, BBK 주가조작사건의 피해자는 다스와 옵셔널벤처스다.
그런데 미국에서 진행된 이를 둘러싼 소송에서 BBK 측은 소송을 제기한 옵셔널벤처스에 지급하는 대신, 소송에서 진 다스가 못받았다고 주장하는 나머지 금액 140억원을 송금한 것이다.
“다스에 140억원을 송금한 이유는 MB의 대통령직이 끝난 후에 밝히겠다.”
김경준이 2012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낸 <BBK의 배신>에서 적고 있는 말이다.
김경준의 이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그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만기 출소한 셈이다.
책에서 그는 이렇게 부연했다. “솔직히 상대가 권력자이고 비열의 달인이기에 많이 두려워하면서 산다. 몇 년 동안 변호사 비용 때문에 시달려서 나는 지칠 대로 지치고 너무 억울하다.”
“김경준님과 천안교도소에서 3월 28일 15시50분에 일반접견 예정입니다.”
기자가 법무부로부터 받은 문자다.
당초 알려진 김경준씨의 출소일은 3월 30일이었다.
기자는 만기출소를 앞두고 김경준씨의 심경과 아직 밝히지 않은 140억원 송금의 이유를 물어볼 계획이었다.
3월 27일에는 원래 김경준씨가 BBK 가짜편지와 관련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민사 선고공판이 열릴 예정이었다.
이 재판 선고는 4월 10일로 연기되었다.
“김경준을 강제 추방하려고 한다. 추방당하면 5년 동안 한국에 못 들어온다며 미국에 있는 김경준씨 모친이 도움을 요청했다.”
이날 기자와 면회 계획을 세우던 유원일 전 의원의 전언이다.
김경준씨 부모와 선친의 인연으로 유 전 의원은 바깥과 김경준을 잇는 통로였다.
기자는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이 알려졌다.
김경준씨의 만기출소일이 당초 알려진 3월 30일이 아닌 28일이라는 것이다.
박 의원이 트위터를 통해 김씨의 만기출소를 알렸다.
유 전 의원과 함께 기자는 3월 28일 아침 일찍 김경준씨가 있는 천안외국인교도소를 방문했다.
박 의원도 나중에 합류했다. 박 의원 일행의 특별면회는 청주외국인보호소에서 이뤄졌다.
면회에서 김경준의 일성은 “정권교체가 이뤄져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BBK의 진상규명이 이뤄지면 좋겠다”였다.
면회를 마치고 나온 박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이 전 대통령도 BBK 주가조작과 관련해서는 유죄이며, BBK사건과 관련해 50대 50의 지분을 가지고 관여했고, 투자금이 흘러간 내용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 자료도 가지고 있다고 김씨가 말했다”고 전했다.
이 결정적 자료란 무엇일까.
박 의원은 “아직 공개할 때가 아니다”라고만 말했다.
“처음에 BBK는 e캐피탈의 소유가 아니었다. 1999년에 당사자는 미국 워싱턴 DC에 거주하면서 국내에 ‘왔다 갔다’ 하는 신세였다. (선거법 위반 후) 그러기에 저는 1999년에 사업을 진행하면서 참여했고, 당사자는 2000년에 귀국 후부터 적극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 스타일상 빨리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고, 사업을 먼저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2012년 3월 21일, 기자가 김경준씨로부터 받은 편지의 일부다.
이 편지에서 ‘당사자’로 표기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당사자’라는 표현을 쓴 것은 교정당국의 검열을 의식한 김씨의 선택으로 보인다.
편지에서 김경준씨는 “EBK 증권 인가신청서에도 MB와 합의 아래 MB 관련은 적지 않았다”고 했다.
금융당국이 증권회사 인가를 취소하려고 하자 전략적으로 BBK를 죽이고 증권사를 살리려고 했고, 그렇게 되면 표면적으로 BBK의 투자금을 모두 김경준이 책임지게 되기 때문에 이면계약서를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주간경향>에 보낸 편지에서 “당시 (MB는) 저에게 “이렇게 해도 되느냐? 내가 너의 부모님도 알고 하니, 나중에 원망 듣기 싫다”고 했지만 저는 당시 증권회사를 구하는 것이 저에게도 최선이었기에 그렇게 하기로 하고 이면계약서를 체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BBK 실소유자가 누구냐는 <주간경향>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김경준이 BBK 실소유자라는 증거 역시 없다. 사실은 당사자가 BBK 실소유자라는 증거들이 김경준이 BBK 실소유자라는 증거보다 많다.… 그 당시 저는 서류를 조작하여 가치있는 회사의 지분을 일부러 당사자 소유로 만들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소유권을 인정한 비디오(광운대 특강 비디오를 말하는 것으로 보임)도 있지 않나. 내(김경준)가 공개적으로 (그 당시) 소유권을 인정한 비디오는 전혀 없다.(괄호 안은 <주간경향>의 해석임)”
“강제추방을 원치 않는다”는 김씨 의사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의 감옥에 남아있겠다는 의사는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면회를 마친 박 의원은 “김경준씨는 1초라도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 부인과 딸을 보고 싶은 심정이라며 울먹였다”며 “다만 강제 추방되어 향후 5년 동안 한국에 못들어오는 처지와 관련, 자유인의 몸으로 한국에 들어와 진실을 밝힐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었고, 정권이 바뀌면 법무부 장관 재량으로 그 처분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3월 30일(현지시간) 미국 LA공항에 도착한 김경준씨는 기자들에게 “이명박 정부를 포함한 적폐청산이 이뤄져야 한다. 박근혜 정부와 과거 한나라당도 책임이 있다”고 발언을 했다.
어떤 의미일까.
<주간경향>과 김경준씨가 주고받은 편지에는 이런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단서도 들어 있다.
김씨는 <주간경향>에 보낸 편지에서 “미국 구치소에 있을 때 자신을 접견한 인사는 2007년 경선 당시 친박인사였던 유영하 변호사”라며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날(유영하가 접견하던 날) 유 변호사에 의하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MB 관련 의혹 증인들을 찾아다녔다.”
유 변호사뿐 아니라 김경준의 가족들을 만난 친박계 법률인들은 무료변론과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특사를 약속하며 한나라당 경선 전에 귀국해 증언해줄 것을 촉구했다고 김경준은 주장했다.
청주외국인보호소 앞 기자회견에서 박 의원은 “아직 밝힐 때가 아니다”라는 김경준의 공식 워딩을 전했다.
하지만 140억원 송금과 관련해 MB 측과 막후 합의가 있었던 것은 확인된다.
“합의가 이뤄진 정확한 시점이나 주체, 전체 합의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내용 중에는 ‘김경준 측이 MB 측에 더 이상 험담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
전후사정을 알고 있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140억원 송금 조건에 이 조건이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박 의원은 “아직은 말할 수 없다. 다만 합의서가 있다는 사실만 확인해줄 수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김씨는 “빠른 시일 내 기자회견을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BBK 주가조작사건이 벌어진 것은 2000년쯤부터다.
17년이 지난 지금에야 진실의 문은 열리게 되는 걸까.
사건과 관련해 김씨가 쥐고 있는 아직 밝히기 어려운 증거는 무엇일까.
김씨 쪽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아온 유원일 전 의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BBK사건과 관련해 김경준이 의인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분명 사기사건의 한 당사자인 것은 틀림없는 사건이다. 하지만 주가조작사건을 벌인 것은 김경준 혼자뿐이라는 과거 조사결과가 과연 사실일까. 김씨의 주장처럼 과연 자신은 종범이고 MB가 주범인지는 추가적으로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떠나, 잘 나가던 엘리트 30대 청년이 감옥에서 13년을 보내고 이제 50대에 접어들어 감옥 문을 나섰다. 만약 같이 치러야 할 죗값을 그가 홀로 뒤집어쓴 것이 맞다면, 그의 청춘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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