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말(言語)의 운명

장백산-1 2017. 11. 9. 10:36

말(言語)의 운명


마음이 뭔지를 깨닫겠다는 공부를 할 때 사람들은 마음이 무엇인지 깨닫는 길에 대한 많은 안내를 접하게 됩니다. 비밀스럽고, 은유적이고 비유적인 표현들로 가득한 종교서적를 읽게 되거나, 성인들의 경험담이나 가르침의 말씀, 또는 선사들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 이런 말들을 듣거나 읽게 되면 참으로 난감해질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 무언가를 생각으로 잡을 수 없고, 이런 것인가 하면 이런 것이 아니라고 하고, 무언가 신비스러운 상태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한데, 어떤 특정한 상태는 아니라는 일침이 뒤따릅니다.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고, 이해되는 듯하더라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들은 말들은 소화되지 않은 채로 잠재의식에 남게 되고, 이것은 알게 모르게 진리(眞理)를 표현하는 도구나 방편으로 스스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眞理)는 결코 절대로 언어(말)나 글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에 말이나 글자로 표현된 진리(眞理)는 소화되지 않은 실체가 없는 허망한 개념(槪捻), 관념(觀念)에 불과할 뿐입니다. 


불교에선 마음이 뭔지를 깨닫게 하는 이런 가르침의 말을 독(毒)을 치료하는 약(藥)에 비유합니다. 온 몸에 毒이 퍼져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그 毒을 제거하기 위해 해독제라는 藥을 쓰는데 이 약(藥)이 바로 마음의 실체를 아는 깨달음으로 이끄는 말이고, 이 말(言語)을 방편(方便)이라고 부릅니다. 방편(方便)은 건강한 사람에게 주는 약(藥)이 아닙니다. 아픈 마음을 가진 사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안목이 없는 건겅하고 건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제시되는 약(藥)입니다. 또 스스로 병이 들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 먹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줄 수 있는 약(藥)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삶, 인생이 불만족스럽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을 치유하여 불만족 고통스런 문제에서 벗어나려는 마음, 즉 발심(發心)을 한 사람들, 즉 약(藥)을 얻으려는 사람에게 주는 약(藥)이 방편의 말입니다.


가르침의 말은 약, 방편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약이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건강을 회복하면 약이 제 기능을 다한 것이고, 약의 기운도 사라집니다. 인간(人間)의  본원적(本源的)인 건강(健康)이란, 바로 참된 자신이자 이 세상의 근본, 뿌리, 바탕을 깨달아 마음의 갈등과 불만족 고통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마음에 아무런 갈등이 없고, 삶에 장애가 사라진 사람에게는 바랄 것이 없고, 문제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에겐 약(방편)이 필요 없으며, 오히려 건강한 몸에 약이 들어간다면 건강을 해칠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항상 마음에 담아둘 만한 일이 없고 바랄 일이 없으며,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인연 그대로가 진실하여 현실의 일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현실(現實)이 실재(實在)여서 진실(眞實)한데 어떻게 진실한 현실, 실재를 조작하려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일어나는 현실의 일에 대해 마음으로 저항하지 않게 됩니다. 저항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사람들은 이 현실 그대로가 축복이자, 신의 현현(現顯)이자, 진리의 바다이자, 손댈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한히 감사하고 안도하게 됩니다.


이때는 깨달음으로 이끄는 말들, 약, 방편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깨달음으로 이끄는 말들조차 실체가 없는 허망한 개념 관념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현실, 실재, 진실은 개념 관념이 아니며, 생각하기도 전에 본래 이미 완전하게 부족함 없이 갖추어져 있으며, 현실, 실재, 진실 이것은 찾고 구하는 것이 아닌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물론 이 사실이 분명해질 때까지는 약이라는 방편의 말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병이 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증세에 맞게 처방되는 약, 방편의 말을 계속해서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끝내는 아무런 말도 남아있지 않아야 진정 건강을 회복한 것입니다. 그게 성인의 말이든, 선사의 말이든, 붓다의 말이든, 하나님의 말이든, 예수의 말이든, 알라의 말이든, 그리고 자기가 믿고 의지해온 살아있는 스승의 말이든 약이라는 방편의 말은 실재가 아니라 개념 관념에 불과할 뿐입니다.


모든 말들은 성인, 선사, 붓다, 하나님, 예수, 알라, 스승 등 그들이 말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속삭였고, 내 생각이 그려냈고, 내가 때에 따라 취사선택한 언어들의 조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 사실이 분명해지면 정신병자처럼 혼자 중얼거리지 않게 됩니다. 이 사실을 모르니까 지금까지 혼자 중얼거려왔던 것입니다.


가르침의 말들, 방편이라는 약은 공부를 해가면서 서서히 소화되고 사라질 것입니다. 말의 진의를 알게 되면서 그 말의 권위가 사라지고, 말의 잔재가 사라집니다. 소화되지 않은 말은 여전히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다가 스스로 건강이 회복되어가면서 사라지려고 표면의식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 말의 참뜻을 스스로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가르침의 말은 생각으로 이해되는 차원이 아니라, 완전하게 소화되어 자기의 상태를 얘기하는 것이 되면 그 가름침의 말, 즉 약, 방편은 제 기능을 다 완수한 것입니다. 


결국에는 아무런 말도 남아있지 않아야 합니다. 깨달음에 관한 말이 아무런 위력이 없이 사라져야 건강을 회복한 것입니다. 늘 진실이 현전해서, 마음에서 마음을 깨달음에 대한 관념들이 떠나버립니다. 말은 어두운 무명(無明) 무지(無知)의 집에서만 머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아직도 말하고 싶은 진실이 있는가?


-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