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친일독재반민족,수구기득권

5 · 18 민주화운동을 보는 '다른' 시각

장백산-1 2019. 2. 22. 22:24

[세상읽기] 5 · 18 민주화운동을 보는 '다른' 시각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입력 2019.02.22. 20:45


2000년 8월12일, 러시아의 핵잠수함 ‘쿠르스크’ 호가 군사훈련 도중 노르웨이 인근 바렌츠해에서 2차례나 수중 폭발했다. 이 참사로 무려 118명이 생명을 잃었다. 1991년 소련 해체 뒤 부족해진 예산과 열악한 군용장비 문제가 컸다. 더 참담한 것은 해군 지휘부 및 당시 블라디 미르 푸틴 정부의 대응 방식이었다. 이들은 잠수함 침몰 자체를 인정하고 신속히 대처하기보다 숨기기에 바빴다. 인명 구조도 지연시켰다. 서방 측의 지원 손길마저 ‘보안’ 문제라며 일단 거부했다. 기술적 문제보다 인재(人災)였다.

가장 안타까운 건, 최종 생존자 23명이 지하 100미터 배 안에서 8시간 이상 사투를 벌이며 구조를 기다렸는데도 ‘높은 분’들의 안일함 탓에 절망적 죽음을 당한 점이다. 2014년 4·16 세월호 참사와 꽤 닮았다. 이 실화를 담은 영화 <쿠르스크>에서 희생자 가족은 해군 제독을 향해 “우리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바보도 아니다!”라고 외쳤다. 장례식 때 제독이 아빠 잃은 꼬마에게 손을 내밀자 아이는 째려보며 결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다른 애들도 이 ‘위대한’ 거부에 동참했다. 무능·무책임한 권력에의 저항이었다.

대한민국 광주에서 일어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역시 무책임 · 폭압적 권력에 대한 대중 저항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군사독재정권과 유신공안독재정권의 독재자 박정희가 암살되자 전두환 · 노태우로 상징되는 신군부가 비상사태와 계엄군을 통해 권력을 장악해나가던 과정에서 일어났다.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항거했다. 계엄군들은 특히 광주에서 청년, 학생 등을 무차별 잡아갔고, 진압봉과 총 · 칼을 마구 휘둘렀다. 이 유혈 폭력에 격노한 광주 시민 · 학생들은 무장 항쟁을 통해 생명과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다. 이것이 1980년 5월18~27일에 걸쳐 발생했던 광주민주화운동의 골자다.

이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엔 당시 계엄군의 엄혹한 검열과 통제의 망을 뚫고 진실을 취재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나온다. “사건이 있는 곳은 어디든 가는 것이 기자”라던 말은 진실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걸었던 시민군의 결기와 다르지 않았다. 이제 광주 5·18 민주화운동은 한국을 넘어 온 세계가 공유하는(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민주화운동의 표상이다.

그러나 이같은 실체적 진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대착오적 독재 향수에 사로잡힌 이들이 있다. 최근 논란이 된 ‘5·18 망언’의 주인공들이다.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광주 폭동, 전두환은 영웅”, “5·18 유공자는 세금을 축내는 괴물집단”, “5·18 문제만큼은 우파가 물러서선 안 된다”. 이게 말인가 방귀인가? 이같은 ‘가짜뉴스들’은 카톡이나 유튜브를 타고 ‘태극기부대’를 거쳐 보수 시민들로 퍼진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장본인인 전두환조차 “북한군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망언의 주인공들은 마치 일본 우익이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이라 우기듯 “5·18, 북한군 개입”이라며 억지를 쓴다.

이에 광주만이 아니라 전국의 시민들이 “망언자 처벌법”을 외치며 들끓었다. 극보수 한국당 지도부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해석이 존재”할 뿐이라며 유체이탈을 했다. 말이 좋아 ‘다양한’ 의견 · 해석이지, 5·18을 정부(국가)에 대한 “폭동·반란”으로 봤다. 또 북한까지 끌어들여 군부독재에 대항하는 민주 저항의 의미를 왜곡했다.

과연 극우보수의 이같은 일련의 흐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첫째, 극우 보수가 여전히 5·18 민주화운동을 그 자체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일은 시대 변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불감증과 무지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반공과 경제 성장의 결합이다. 이들은 쿠르스크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때의 권력자들처럼 진실과 변화를 두려워한다. 기득권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이념 갈등으로 기득권의 이익을 누린 자들은, 한반도가 평화 체제로 재편되면 설 자리 없을 것”이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말처럼, 이들은 자기 미래가 두렵다. 평생 믿어온 이념 대결의 평화적 해소는 그들의 존재 자체의 소멸로 느껴진다. 결국,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망언 소동은 ‘자기 존재 증명’의 몸부림! 그들은 북한을 증오하지만 북한이 없으면 자기 근거도 약하다. 분단체제라는 ‘적대적 공존’ 시스템이 그들 존재의 토대였다. 가짜 자아가 가짜뉴스를 만든다!

셋째, 더 깊이 보면, 5·18 민주화운동은 (군사) 독재와 폭력에 대한 자유인(自由人)의 저항이었을 뿐, 그 자체가 ‘만물의 상품화’를 통해 이윤을 뽑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엉망이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부도 이 도전 앞에 섰다. 남북 철도 연결과 금강산 관광 상품화를 넘어, 한반도에서 제대로 된 민주화는 언제 올까? 과연 겨울눈 녹으면 땅에서 새싹 돋아나듯 그렇게 풀뿌리 민주주의도 춤추기 시작할까?

강수돌 고려대 교수 · 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