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윤석열 정권 '가치 외교'의 실체와 한계

장백산-1 2024. 3. 18. 22:06

윤 대통령이 만든 4가지 '사건'... 한국 이러다 고립된다

오태규입력 2024. 3. 18. 20:03

[2024 대한민국] 윤석열 정권 '가치 외교'의 실체와 한계

[오태규 기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1월 16일 샌프란시스코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권이 설 연휴를 앞둔 지난 2월 7일, 갑자기 의대 정원을 내년부터 5년 동안 매년 2천 명씩 늘리겠다고 '폭탄 발표'를 했습니다. 그 이후 한 달 이상 의대 정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모든 이슈를 잡아먹는 블랙홀이 됐습니다.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씨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독일 국빈 방문을 나흘 앞두고 갑자기 연기한 외교 참사, 카이스트 졸업식장에서 연구개발 예산의 원상 복원을 외치다가 입이 막혀 쫓겨난 한 졸업생의 '입틀막' 사건이 의대 정원 논란 속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이런 게 의대 정원 발표의 노림수였다면, 윤석열 정권의 '스핀 닥터'(돌리거나 비틀어 여론을 왜곡하는 기술 혹은 기술자)가 멋지게 한 건을 한 셈입니다. 의대 정원 증원 방침은 곧바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일거에 끌어올리는 도깨비방망이 노릇을 했습니다. 의대 정원 증원 발표 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월 셋째 주(13~15일) 33%에서 2월 넷째 주(20~22일) 34% → 2월 다섯째 주(27~29일) 39% → 3월 첫째 주(5~7일) 39%로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의대 증원' 블랙홀 속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외교'

 

의대 정원 문제가 나오기 전까지,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 항목 중 '1위 지정석'은 외교였습니다. 2월 첫째 주(1월 30~2월 1일)에 외교를 긍정 평가의 이유로 꼽은 비율이 18%로 1위였고, 2위는 경제/민생으로 딱 절반인 9%였습니다. 이런 흐름은 2월 넷째 주부터 요동을 치더니 2월 넷째 주, 3월 첫째 주에는 급기야 의대 증원(21%와 28%)이 외교(12%와 9%)를 2위와 3위로 끌어내렸습니다. 반면,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부정 평가하는 쪽에서는 외교가 2월 넷째 주 6%, 3월 첫째 주 5%를 기록하면서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의대 정원 증원 전격 발표 이후 한국갤럽 여론조사의 추이를 보면서, 얻은 결론은 핵폭탄급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교가 윤석열 정권 평가의 중요 잣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윤석열 정권이 집권 이후 2년 동안 펼쳐온 외교가 그만큼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얘기겠죠.

 

저 오대규 기자는 윤석열 정권의 2년 외교를 돌아볼 때, 네 가지 사건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일본 외교의 전환, 한미일 군사동맹의 후과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3년 8월 18일 금요일 메릴랜드주 서몬트 인근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고 있다.
ⓒ AP=연합뉴스

 

첫째는 과거사를 버리고 협력을 택한 대일본 외교의 전환입니다. 윤석열 정권은 한일 갈등의 최대 현안이었던 강제 동원 노동자 피해 보상 문제를, 일본이 하자는 대로 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과 피해자의 요구를 무시한 채 한국 쪽의 돈으로 보상해 주는 '제3자 변제' 방식을 택한 것이죠. 과거사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굴욕적인 해법입니다. '역사와 자존심 퍼주기'입니다.
 

일본 정부는 윤 대통령의 대일 퍼주기 정책을 더없이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부담되는 실질적인 대가는 전혀 치르지 않은 채 말로만 환영하고 환대했습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해만 7차례 정상회담을 했지만, 기시다 총리는 강제노동의 '강' 자도 꺼내지 않고 공허한 웃음만 흘렸습니다.

 

둘째, 지난해 8월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입니다. 세 나라는 이 회담을 계기로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준군사동맹을 구축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3국 회담을 전후해 두 나라를 자극하는 발언과 행동을 거리낌 없이 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뒷배를 믿고 했는지, 미국과 일본의 뜻을 반영한 행동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행동과 3국 정상회담의 결과, 중국과 러시아와 관계가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생즉사, 사즉생의 정신으로 연대"를 제안하는 등, 러시아의 코털을 자극했습니다. 서방과 손을 잡고 우크라이나에 155밀리미터 포탄을 포함한 군수물자를 직간접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1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한국 사람을 간첩 혐의로 붙잡아 구속한 것은 러시아의 본격적인 보복이 시작됐다는 것을 뜻하는지 모릅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이 '핵심 이익 중의 핵심'으로 여기는 대만 문제를 건드려 중국을 격분시켰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집권 초부터 탈중국을 외치며,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공급망 분리 정책에 앞장서 가담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중국과 무역에서 처음으로 적자를 보는 등, 한국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한중일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지난해 열심히 추진했던 3국 정상회의 개최는 중국의 비협조로 언제 열릴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진 뒤 2년 안에 정상 간 상호방문을 이루지 못한 최초의 정권입니다.

 

미국-일본 추종과 한미일 군사동맹 외교의 그림자는 중국과 러시아 관계에만 머물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외교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군사적으로 억지하는 데는 일시적으로 효과를 거뒀을지 모르지만, 불안과 갈등도 증폭시켰습니다. 군사 위협을 느낀 북한이 러시아와 손을 잡고 대항할 명분과 길을 터줬습니다. 이로써 한반도에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새로운 대결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대화와 외교 없는 무력 중시 정책이 오히려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도록 조장한 셈입니다.

 

부산 엑스포 유치전과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으로 본 '외교 난맥'
 
  2023년 9월 15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인천항 수로 및 팔미도 근해 노적봉함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셋째, 윤석열 정권이 총력을 기울여 유치 운동에 나섰던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입니다. 투표 전날까지 앞서가던 사우디아라비아를 누르고 '대역전'할 수 있다고 하더니, 119대 29의 대참패로 끝났습니다. 윤 대통령이 1년 6개월 동안 때로는 코피까지 흘리며 96개 나라 110명의 정상을 만나는 강행군한 결과치고는 너무 부끄러운 결과입니다. 한국 외교의 정보 수집력과 판단력이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난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만 사과하는 척하더니, 주요 관련자들은 장관이네 총선 후보네 하며 꽃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로써 참패를 외교력 정비의 기회로 삼는 기회는 자연스레 증발했습니다.
 

넷째, 해병대 채상병 사망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한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쉽게 말해,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사실상 주요 사건의 피의자를 대사 임명이라는 꼼수를 사용해 해외 도피시킨 것입니다. 공직과 외교를 '내 편'을 보호하려고 사유물처럼 쓴 대표 사례입니다. 외교부 직원도 상대국 국민도, 아니 그들 편이 아니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외교마저 사유화'의 상징입니다.

 

이렇듯 네 가지의 사건만 들여다봐도 윤석열 정권의 외교가 그동안 얼마나 문제투성이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다변화하고, 각 나라는 이런 속에 실리 외교로 난국을 돌파하려고 하는데 윤석열 정권만 유독 가치 외교를 내세우며 고립을 자초해 왔습니다. 세상의 변화가 크고 심할수록 사태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응해야 하는데, 외교를 외유로 착각하고 공관장을 비롯한 외교관을 전쟁 뒤 부하들에게 나눠주는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바뀔 것 같지 않은 외교 기조... 그 핵심에 있는 외교 실세 김태효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2023년 10월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중동 국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국빈 방문 일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이런 외교의 기조가 집권 3년 차에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올해 1월 외교부 장관 교체를 하면서 외교 정책 방향을 바꿀 기회가 있었지만 놓쳤습니다. 장관 교체를 정책 전환을 위해서가 아니라 총선에 출마하려는 박진 장관의 공백을 메우는 땜빵으로 했습니다. 더욱이 대통령실이 주도하고 외교부가 추수하는 지금의 외교 구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후임 조태열 신임 장관이 정책 전환을 꾀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외교 안보 진영에서 국가안보실장도 두 번이나 바뀌고 관련 장관도 모두 바뀌었지만, 처음부터 지금껏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외교 안보 실세로 불리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입니다.

 

그가 버티고 있는 한 윤석열 정권의 외교 정책은 3년 차에도 이전처럼 그대로 이어질 것입니다. 연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세계 정세의 변화가 요동칠 것이 확실한데 말입니다. 윤 대통령의 '유일한 친구'인 기시다 총리도 지지율이 바닥을 치면서 위태위태합니다. 미국과 일본 중심, 가치 중심 외교의 환경이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윤석열 정권의 '천동설 외교'가 불러올 후폭풍이 두렵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기사 내 인용 여론조사] ○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 한국갤럽 자체로 무선 가상번호 전화면접원 조사 방식으로 진행 - 제577호 2024년 3월 1주: 2024년 3월 5~7일 조사 / 표본오차: ±3.1%p(95% 신뢰수준) - 제576호 2024년 2월 5주: 2024년 2월 27~29일 조사 / 표본오차: ±3.1%p(95% 신뢰수준) - 제575호 2024년 2월 4주: 2024년 2월 20~22일 조사/ 표본오차: ±3.1%p(95% 신뢰수준) - 제574호 2024년 2월 3주: 2024년 2월 13~15일 조사/ 표본오차: ±3.1%p(95% 신뢰수준) - 제573호 2024년 2월 1주: 2024년 1월 30~2월 1일 조사 / 표본오차: ±3.1%p(95% 신뢰수준) * 더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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