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지의 사람 사는 세상

눈먼자들의 도시 - 2

장백산-1 2008. 12. 3. 21:18

논  쟁  -->  mb친인척비리  -->  기록관건립  -->  봉하마을  -->  KBS사수  -->  북경올림픽  -->  일반  -->  전체 
  
눈먼 자들의 도시 - 2
번호 183401  글쓴이 초모룽마  조회 1930  누리 552 (552/0)  등록일 2008-12-3 13:52 대문 31 추천

 

눈먼 자들의 도시 - 2
(서프라이즈 / 초모룽마 / 2008-12-3)

 

교차로에서 차들이 신호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 파란 불이 들어오고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근데, 꼼짝 못하는 차가 있다. 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손을 휘저으며 외친다.

 

"갑자기 눈이 안보여, 눈이 안 보인다구"

 

사람들은 차례로 눈이 먼다. 이 실명(失明)은 전염병이다. 물론, 안과의사들은 이 갑작스런 실명의 원인을 찾아 낼 수 없다. 겉모양으로 봐선 그 눈들은 멀쩡하니.

 

긴장한 당국은 '엄중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격리수용소 설치를 결정한다. 이 수용소에서는 눈먼 자들이 이상한 행동 - 경외해야 할 권력에 감히 접근하는 것! - 을 하는 즉시 무장 경비대에 의해 사살될 터였다. 당국과 수용 당하는 자들의 소통 수단은 (얼굴은 보이지 않고 금속성 소리만으로 일방적 지시를 내리는) 스피커와 총알이다. 눈먼 '천민'들이 어데라고 촉수를 들이대!

 

주제 사마라구는 수용소 내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의사의 아내를 통해 눈먼 자들의 행태를 꼼꼼히 관찰한다.

 

눈먼 사람들에게 가장 크고 유일한 문제는 어떻게 먹고 어떻게 싸느냐 하는 것이다. 수용소 탈출,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식사배식 시간을 알리는 스피커가 울리기만을 기다리는, 아무데나 싸지른 오물들에 어느덧 무감각해지는 군상들.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수용소에서, 도시라는 거대한 감옥에서 인간성의 본질이 드러난다. 물신(物神)의 복마전...땅, 재테크, 뉴타운과 '대박의 꿈', "부자 되세요!"...멀쩡한 눈을 가졌으되 볼 수 없는 눈먼 자들의 바벨탑...

 

수용소,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도 권력은 엄연히 작동된다. 꼭대기에 앉은 자들은 물론 스피커와 총구를 통해서만 권력을 작동시킨다.

 

익숙한 권력들이다. 나치 치하의 금융융커들, 부시 하의 거대 자본들. 강부자 1%들. 강남과 헌재의 환상적인 궁합을 보라. 헌재들의 종부세와 행정수도 위헌 결정, 열광하는 강남들. 마름들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 웬만해서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자들.

 

수용소가 불타서 붕괴했을 때도, 스피커를 통해 지시사항을 나열하던 이 권력들은 보이지 않았다. 어데 숨어서 무신 짓을 하고 있을까.

 

최근에, 포항 출신 고위급들의 '영포회' 모임이 있었다던가. 밀교적인 냄새를 풍기는 이 회동에 멘토 최씨와, 포항 정도는 '상전벽해' 시킬 힘을 가졌다는 국회 국토해양위원장 이모씨 등 9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말들,


"지금 포항은 물이 좋다" "콩고물이 떨어지고 있다" "포항이 예산으로 뚫릴 것"

 

이모씨는 "(아무리 나라가 어려워도) 헌신을 바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포항에 돈이 쏟아지는데 충성을 안 바쳐서야 쓰겠나!

 

최씨의 건배구호, "이대로!"..."나가자"라는 화답.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언제여뜨라... 맞다. 10년 전 강남들이 외쳤다던 그 유명한 말이다. "지금 이대로만!"....경제 에렵고 나라 개판되고 그게 나와 무신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물이 좋은데! 갱제, 국가?? 그것이 무신 개뼈다구란 말인가, 내 몫 챙기기도 바쁜데! 그자들이 숨어서 비밀리에 하는 짓이 이렇게 밝혀졌다. 진짜 눈먼 자들.

 

(영포회는 참여정부 때 같으면 최소한 조중동의 한 달 기사깜이다. 근데 시끌하다 하루 만에 조용해졌다. 왜 그럴까)

 

귀하신 권력귀족들은 집사들, 즉 눈먼 자들 중 충성도 높은 행동파들을 엄선 - 폭력배들이 수용소에서 거의 자생적으로 생겨난다. - 하여 각목을 통해 수용소의 질서, 도시의 위계를 잡는다.

 

마름들은, 힘없고 눈뜨지 못하고 꼴딱 속아 넘어가는 다수의 눈먼 자들에게 '먹을 것'을 담보로 갈취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조중동, 검새들과 어청수들, 완장찬 유인촌들. 고딩들에 역사를 팔아먹는 뉴라이트들, 불신지옥을 외치며 삐라 날리는 자들, 강남-영남에 복무하는 자들. 괴벨스와 네오콘들.

 

"(눈뜬 세상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뉴타운에 들어갈 수 있고 (눈 한번 딱 감고 투자하면) 땅부자 될 수 있다. ("노무현 때와는 달리") 거기서는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대신, 거기에선 말 잘 듣고 복종해야 한다. 일제 식민지와 박정희 때가 좋은 시절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배부르려면 눈이 멀어야 한다."

 

이 눈먼 돌격대들의 협박과 당근에 현혹되어, 세상을 보지 못해 어찌해야 할 줄 몰랐던 사람들은 대선 때 이명박을 찍었을 뿐이고, 나치를 합법적으로 집권 시켜줬을 뿐이고, 카우보이 부시에게 전권을....

 

차례대로, 마치 유행을 타듯, 눈이 멀어간다. 눈멀기 전의 세상이 좋았다는 것을 잊는다. 노무현을 애써 잊는다. 나치에 눈먼 사람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잊고 부시에 눈먼 사람들은 미국의 건국가치를 잊는다.

 

환상적 리얼리즘 픽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사람들은 결국 눈을 뜬다. 맨 먼저 눈 먼 사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보여, 보인다구. 세상이 보여"

 

기쁨에 소리치지만 이내 좌절한다. 다시 보이기 시작한 그들의 눈에 뭐가 보이겠는가. 세상은 바벨탑으로 가득 찬지 오래다.


나치로부터 눈뜬 베를린 사람들이 본 것은 시내를 뒤덮은 소련군 전차들이었다. 부시로부터 눈을 뜨니 70년만의 경제공황과 이라크 수렁이다. 마지막 자존심, 자동차 빅 쓰리도. 뭄바이를 보라. 그 잘난 '테러와의 전쟁'은 성공했는가.

 

이씨 정권에서는 뽑힌 전봇대와 방치된 갱제말고 뭣이 남아 있어 볼 수 있는가.

 

유일하게 눈뜬 자, 의사의 아내는 눈먼 도시에서 유일하게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어쩌다 보니, 힘없는 눈먼 자들의 리더가 되지만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지혜, 아주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 그녀가 개명(開明)으로 사람들을 이끈다는 것은, 유일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도시가 죄다 눈멀었다는 얘기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실 평범하다. 삶이 그랬고, 원칙에 입각해서 자신의 판단 하에 사고하고 행동하라는 말이 그랬다. 다 알고 있는 평범한 얘기들이다. 이 평범한 것들이 눈먼 자들의 미친 도시에서는 '가볍고 튀며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명박이나 조중동, 검새들이 노무현 죽이기에 아직까지 몰두하는 것은 그가, 이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지금도, 거의 유일하게 - 다른 누가 있나 둘러보라 - 눈을 부릅뜨고 있기 때문이다. 바벨탑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의사의 아내가 폭력 조직에 홀로 저항하자, 마름들의 오야붕이 말한다. "네 목소리를 잊지 않겠다." 의사의 아내가 대꾸한다. "난 네 모습을 잊지 않겠어!"

 

의사의 아내는 그 우두머리의 목을 친다. 노무현은 조중동들과 홀로 싸웠다.

 

"노건평이 엄청나게 먹었다메?"

 

눈먼 자들의 주된 반응이다. 사마라구는 소설에서 사람 이름도 도시 이름도 나라 이름도 일절 거론하지 않는다. 실명(失明) 유행병은 현재 진행형이고 누구에게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이 현상이 뚜렷이 목격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 시골 촌부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 휴일에도 전원출근하고 비상간부회의를 열고 시골 오락실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현상 말이다.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던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 한다. 노건평 사건 - 이 사건은 바로미터다 - 을 계기로 이 두 눈 멀쩡한 눈먼 자들은 눈을 뜨게 될까?

 

아니면, 의사의 아내 말처럼, 그들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은" 사람들에 불과한 것일까.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볼 수 없었고 끝까지 볼 수 없을 그런 사람들에 불과한 것인가. 영원히 보려하지 않는 눈먼 사람들일 뿐인가?

 

ⓒ 초모룽마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1&uid=183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