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보여주는 대로만 느끼다가는 앉아서 당하는 시대
쇼를 하고 있다. 새벽에 몰래 시장에 가서 사진 몇 방 찍고 하루 종일 언론을 도배했다. 그런데 이것도 시리즈로 준비되어 있었다. 당일치기가 아니었다. 이제는 이명박 배추포기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을까? 이런 기사가 등장했다. 알고보니 단막으로 끝낼 쇼가 아니라 연재로 기획된 쇼였다.
그 제목도 웃긴다. 조회해본 결과 대부분의 제목이 거의 일치한다. 대부분이 "어디로 갔을까?" 였다. 언론은 이미 장악되어 정권홍보실로 변했다. 언론이 청와대로부터 받아쓰기한 느낌이다. 9시 뉴스에는 어떻게 나올까 자못 궁금해진다. 몇번째로 얼마나 방송할까? 호기심을 자아내는 방법으로 대단한 선행의 행방을 쫓으는 것처럼 어디로 갔을까라면 추적보도하는 식으로 내보낼까? 과연 어떤 편집으로 보도할까? 연재물이니까 몇일 후면 전달받은 배추포기로 밥 먹으며 고마워하는 모습들이 보도될려나?
어떤 인터넷 포털의 화제의 인물 Best 1위 노무현과 Worst 1위 이명박이라는 네티즌의 선택이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바꿔치기하는 과정도 얼마나 압력이 급박스러웠으면 실수의 연발이었다. Worst 1위를 Best 2위 김연아로 바꾸면서 사진만 바꾸어놓아 한동안 이름은 이명박으로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명박 Worst 1위는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명박 정권이 우격다짐으로 집어삼켜 없애버린 것으로 볼수 밖에 없다.
인터넷 포털까지 자유롭지 못한 마당이다. 게시물마저 검열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검열은 절대적으로 금지된다. 헌법에서 직접 그렇게 명시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도 실제로는 검열당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아고라도 알게 모르게 정권의 압박으로 마음껏 제 기능을 뽑낼 수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온라인 세상이 이러하면 신문이나 방송은 더하면 더했지 덜했을 리 없다. 뉴스는 그 첫 타이틀을 보면 금방 들통난다. KBS는 9시 뉴스 첫 타이틀에서 가장 중요한 보도가 실종된 지 오래다. 정권에 도움이 되는 전망좋은 뉴스가 처음에 자리잡은 지 오래다. 4.19를 데모라 표현한 교과부 영상물 등 주요한 보도들은 한참 뒤로 밀려서 짤막하게 등장한다.
중요타이틀은 이미 사회의 비판적 담론에 의해 형성되기 보다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배치되고 있다. 지옥의 끓는 유황 속에서도 잠깐 누군가 손잡고 눈물 흘리는 장면만 포착하면 아름다운 세상으로 순식간에 비출 수 있는 것이다. 편집된 대로만 느끼다가는 이웃의 진정한 아픔을 놓치고 세상이 골로 가도 마지막 순간까지 포착 못할 수도 있다.
이제는 시민 모두가 너나없이 비판적 지식인이 되어야한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공적인 영역으로 남겨둘 수 없는 세상이다. 방송과 신문이 정해주는 대로 세상을 읽어나간다면 앞으로 세상은 별 문제 없이 차곡차곡 진행되어가는 것으로만 여겨질 것이다.
언론이 미덕이라고 칭찬하면 같이 따라 박수치면 되고, 미워할 대상이라고 보도해주면 미워하면 되고, 그러다보면 정권이 검열해 편집해놓은 세상에 빠져 살아가게 될 것이다. 보여주는 데로만 살다가는 속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정권의 손길이 이곳저곳 휘저어 놓으면서 믿을 놈 하나 없게 돌아가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그러하므로 이제 하나하나 비판적 지식인이 되어야한다. 이제는 배추포기 앞에 놓고 포옹하는 모습은 스스로 무시할 줄 알아야하고 배추포기 어디로 갔을까 하면서 호기심 자극하는 데 일절 고개를 돌리지 말아야한다. 뉴스의 헤드라인은 무시하고 그 뒤에 놓여있는 짤막한 보도에서 보석을 발굴할 줄 알아야한다. 공식적인 뉴스의 전달통로가 아닌 곳에서 소문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제대로 된 사회적 의제를 찾아내야 한다.
사회가 역행하지 않을려면 시민 각자가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부지런하게 뛰어야할 시대가 도래했다. 한가하게 제 삶의 안락이나 추구하면서 편안히 살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이제 보여주는 대로만 느끼다가는 앉아서 당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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