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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통계 25] 新애절양(哀絶陽)사회를 만든 좌우 애국지사들에게 | |
조회 (365) | 추천 (0) |점수 (0) | 2009-03-11 14:05:46 김대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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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끊는 사회를 만들어 놓고 나 몰라라 하는 피 끓던 당신에게-
지난 3월7일 자정께 방영된 MBC의 ‘뉴스 후’를 두 번이나 봤다. 본방으로 한번, 인터넷으로 한번. 오랜 궁금증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뉴스 후’는 한류의 원천인 TV드라마 시장 생태계와 음악 시장 생태계의 현 주소를 잘 보여주었다. 시청률이 매우 높은 TV드라마를 제작한 유명한 외주 제작사는 거의 적자였다. ‘아내의 유혹’ 제작사인 스타맥스는 2008년 38억 적자, ‘주몽’의 제작사인 ‘올리브9’은 2007년 43억 적자, 2008년 48억 적자였다. ‘태왕사신기’ ‘하얀거탑’의 제작사인 김종학 프로덕션은 2007년 381억 적자, 2008년 74억 적자였다. ‘로비스트’ ‘떼루아’ 제작사인 예당엔터테인먼트는 2007년 220억 적자, 2008년 209억 적자를 보았다. 적자의 핵심은 지나치게 높은 배우 출연료였다. ‘올리브9’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드라마 매출원가 및 매출구조 분석’ 자료에 따르면 총 드라마 제작비 중 배우 출연료가 55~60%, 작가/연출/스텝급여가 10~15%, 외주용역비가 10~15%, 일반관리비가 15~20% 이었다.(한국방송영상산업 진흥원 자료) 어떤 드라마는 배우 출연료가 70~80%에 달하는 것도 있다 한다. 배우들의 출연료는 지난 몇 년 간 한류 붐을 타고 급상승 하였다. 2001년 ‘여인천하’에 출연한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강수연의 편당 출연료는 4백만 원~5백만 원이었다. 2003년 ‘대장금’의 슈퍼스타 이영애는 편당 6백만 원이었다. 그러나 2007~8년 현재, 태왕사신기에 출연한 배용준은 (자신의 투자 분까지 반영되어) 편당 2억5천만 원이었다. ‘에덴의 동쪽’의 송승헌은 편당 7천만 원, ‘에어시티’의 이정재는 5천만 원, 여성 배우는 최지우가 4천8백만 원으로 최고, 고현정은 3천5백만 원. 명목 국민소득이 우리의 2배에 육박하는 일본의 울트라 슈퍼스타 기무라 타쿠야는 편당 출연료가 4천7백만 원이었다. 톱스타의 출연료가 올라가면 스타 작가들의 원고료도 자동으로 올라간다. 이렇게 하여 드라마 제작비가 급증한 것이다. 그래서 2007년 9월 한국 드라마제작사협회는 출연료 상한제(최고 1,500만원)를 발표했으나, 이미 아시아 한류의 상징이 된 유명 배우 13명은 예외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가 위에서 적은 높은 출연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산업에 종사하는 다른 사람들의 인건비는 올라가지 않는다. 올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드라마 산업은 다른 많은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얼굴 하나는 반반한데, 팔, 다리, 허리, 자궁, 혈관은 지극히 부실한 기형이 되었다. TV드라마 시장 생태계가 지속가능성 위기를 맞은 것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과열 경쟁 탓이다. 한류 붐이 일어나는 아시아권에다가 드라마 판권을 팔기 위해서는 제작사들이 거액을 주고서라도 간판스타를 기용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상당한 진통을 겪겠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 시장에 의해 조정되게 되어있다. 게다가 한류 붐 초기에는 한국 톱스타의 출연 여부가 흥행을 결정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콘텐츠(스토리)의 영향력이 커진다. 일본의 경우는 이것이 좀 더 빨리 나타난다. 따라서 조정의 방향은 기획, 투자, 콘텐츠(기획, 스토리 전개, 감독)와 관련된 가치생산 사슬에 보다 많은 이익이 갈 것이다. 이렇게 애써 태연하려 해도 여전히 씁쓸한 의문은 남는다. 왜 우리나라 산업들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가치생산 사슬(간판스타)이 이익을 독식해서 나머지 사슬들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들어 버리는 지, 왜 그렇게 위험한 모험 투자(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는 톱스타 캐스팅)를 경쟁적으로 하고, 끝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몇 개가 도산하고, 수많은 투자자들이 쪽박을 차고 나서야 비로소 시장 생태계가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는지!! 사실 나는 이런 모습이 처음이 아니다. 대우자동차에 근무하던 1990년대 중반에도 경험하였다. 당시 자동차 산업에는 대우, 기아, 쌍용, 삼성 그룹이 일개 말단 ‘대리’의 눈에도 도저히 이해 못할 낙관적인 전망에 기초하여, 그룹의 명운을 건 위험한 투자를 경쟁적으로 하는 것이 확연했다. 지극히 낙관적인 전망에 기초한 과잉 중복 투자는 자동차 산업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1998년 빅딜 대상이 된, 석유화학, 항공, 철도차량, 발전설비, 선박엔진, 정유, 반도체 산업에서 다 그랬다. 한보그룹의 무모한 철강 산업 투자는 이미 1997년 초에 비극적 종말을 고하였다. 이 모든 것은 금융 산업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던 만큼 은행들과 종금사들도 위험한 차입(단기외채 차입)과 대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0년대 중후반의 비극을 겪고, 한국은 금융 산업 구조조정, 부채비율 축소, 기업 지배구조 개혁, 인력사업 구조조정 등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드라마 산업에서 일어나는 한류 스타 잡기 러시(rush)와 엄청난 고액출연료와 그 후유증을 보면 금융 개혁이나 기업지배구조 개혁만으로는 제어하기 힘든 어떤 심리 내지 DNA가 한국 기업가들에게는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드라마 제작에 소요되는 투자금은 은행 대출이 아니라 주식시장 등 다른 금융시장에서 조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MBC, KBS, SBS가 자체 제작을 했다면 교섭력 우위 때문에 한류 스타들의 출연료가 그렇게 높이 치솟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외주제작사를 구성하고 있는 기획자, 감독, 투자자들의 창의와 열정이 분출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유로운 생산자와 시장이 없으면 공황도 없겠지만, 동시에 창의와 열정의 분출도 없고, ‘한류’도 없을 것이기에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야 안정적이고 생산력 높은 생태계가 만들어질지 모르겠다. 문제는 음악시장 생태계 TV드라마 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는 음악 시장 생태계에 있었다. 한국 음악시장 생태계의 위기는 콘텐츠 유통망을 장악한 이동통신 3사의 합법적 약탈의 문제였다. 그로 인해 창의, 열정, 오랜 몰입과 훈련이 필요한 콘텐츠 생산자(가수, 연주자, 음반 제작사)들이 말라 죽어가는 문제였다. 지금 한국의 대부분의 연예기획사는 적자다. 가수 ‘비’, GOD, ‘원더걸스’를 키워낸, 박진영이 만든 JYP 엔터테인먼트는 작년에 적자를 보았다. 원더걸스의 음반 5만장을 팔아 2억5천만 원 매출을 올렸고, 광고로 15억, 휴대전화 벨소리 다운로드 등으로 총 75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JYP 전체적으로는 10억 원의 적자를 보았다. H.O.T,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를 키워낸, 이수만이 만든 SM 엔터테인먼트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만든 YG 엔터테인먼트도 다 적자였다. 이들의 경영사정이 ‘외화내빈’이 되어 버린 것은, 겉으로 보면 음악 유통 방식의 급변 때문이다. 2001년까지만 해도 음반시장의 매출 규모는 총 4000억이었으나 2007년에는 848억으로 줄었다. 반면에 MP3나 핸드폰으로 듣는 디지털 음악시장은 2001년 당시만 해도 극히 미미했으나 2007년 들어 3700억 원으로 급팽창하였다. 음악을 음반(11,000원짜리 CD)으로 팔면 음반 제작자(가수, 작사. 작곡가, 제작사)가 수익의 63%, 음반매장이 26%를 가져간다. 그런대로 제작자에게 유리한 구조다. 그러나 음반 시장이 죽어버리고, 매출의 대부분이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 일어나면서 분배 구조는 유통망을 장악한 이동통신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되었다. 단적으로 소비자가 휴대전화 벨소리를 다운을 받으면 회당 1,200원을 지불하는데, 콘텐츠 생산자들은 38%(460원), 이동통신사 및 가공업체가 62%(740원)을 가져간다.(문화콘텐츠 진흥원(2008)) 콘텐츠 생산자에서도 가수, 작사. 작곡자의 몫은 작고, 제작사 몫은 크다. 한국 1위, 2위의 음반사인 서울음반은 SKT에, 도레미레코드는 KTF에 인수되었는데, 이로써 이동통신사는 가수, 작사. 작곡자에게는 울트라 갑이 되었다. 음원요율 분배구조를 보면, 벨소리와 통화연결음의 경우 가수에게 약 4.5%, 작사. 작곡자에게 각각 4.5%(도합 9%), 음반제작자에게 25%, 이동통신사에 32%, 콘텐츠 제공업체에 19%, ASP(Application Service Provider)업체에 10%가 분배된다. 그래서 음반과 음원을 팔아 월 100만 원 이상을 버는 가수가 별로 없다고 한다. 싸이월드 배경음악의 경우는 가수에게 돌아가는 요율은 더 낮아서 벨소리와 통화연결음의 절반 수준인 2.5%다. 요컨대 오랜 훈련, 몰입과 타고난 끼와 창의성이 필요하며, 다른 사람에 의해 결코 대체될 수 없는 기능을 가진 가수, 작사. 작곡자에게 너무 적은 몫이 분배되는 것이다. 이동통신사들은 기존 망에다가 새로운 서비스 하나를 얹혔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디지털 음원을 유통시켜 얻은 수익이 2006년 1,128억 원, 2007년 1,031억 원이다. 2007년 당시 전체 음반 시장의 규모가 848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이 이익이 얼마나 짭짤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휴대전화 망이 깔린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MP3 파일, 벨소리, 통화연결음, 배경음악 등으로 유통되는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 권리자(제작자)가 가져가는 몫은 한국은 대략 34~39%(제작자는 25% 내외), 일본은 40~65%(제작자는 50%내외), 미국은 50~55%(제작자는 45%내외)이다. 일본은 전체 디지털 음악시장 매출 중 이동통신사가 가져가는 몫은 10~15%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이동통신사들이 동남아 등지에 인프라를 깔아주고, 디지털 음원 서비스를 실시할 때, 한국과 같은 요율(이동통사가 50%)을 제시하면, 동남아의 콘텐츠 생산자들은 ‘당신들이 왜 50%를 가져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납득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비록 음원 요율은 낮을 지라도 음악 창작자들은 이동통신 망을 잘 탈 수 있는 음원을 만들어 팔아야 허기를 면할 수 있다. 요즈음 음악들이 벨소리와 통화연결음에 적합한 30초 내외의 후렴구가 많이 들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또 새로운 음악을 생산해봤자 생산비도 못 건지기 때문에 과거 히트했던 곡의 리메이크도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동통신 망을 탈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데 죽기 살기로 매달려도 배가 고픈데,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음악을 만드는 쪽으로 에너지가 올 수가 없다. ‘한류’를 만들었던 토양이 피폐해 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음악 시장 생태계는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핵심적인 모순과 부조리가 무엇인지,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 발전의 질곡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음악 시장 생태계의 문제는 유료 도로를 건설한 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통행료를 엄청나게 높게 책정하여, 도로를 이용하는 나머지 생태계(소비자, 생산자, 운송업자 등)를 피폐하게 만들어 버리는 꼴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유료도로 사업자가 통행료를 과다하게 징수하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기존의 공짜 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는 공짜 도로(밤무대 라이브쇼)나 값싼 도로(CD 판매)는 별로 없다. 디지털 음원을 생산하는 음반사도 이동통신사 소유고, 벨소리나 통화연결음은 당연히 이동통신사 관할 구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 일어나는 과도한 착취는 과거 지주가 토지를 떠나 살 길이 없는 소작인에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고율의 소작료를 징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중세 유럽에서 봉건 영주가 주민들이나 상인들이 도저히 지나다니지 않을 수 없는 도로, 강, 다리에다가 검문소를 만들어 놓고 고율의 통행세를 물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매우 전근대적인 착취이긴 하지만, 솔직히 요즘 유행하는 말인 ‘비즈니스 모델’로 따지면 최고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왜 재벌. 대기업이 방송 사업에 진출하려고 하는지 명백하다. 이들은 콘텐츠 사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기업의 참여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는 이동통신사처럼 수많은 가치생산 사슬을 한 손에 움켜쥐고, 가만히 앉아서 통행료나 소작료를 두둑이 챙길 수 있는 절대 ‘갑’적 존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콘텐츠 생산 사업에는 진입장벽이 거의 없고, 이미 CJ 등 재벌 그룹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완성차 회사의 매력도 바로 이것이다. 수많은 부품업체를 '구매권(Sourcing)’을 지렛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쁘게 말하면 납품단가 등을 통해 필요한 만큼 빨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1990년대 중반 대우자동차에서 협력업체 담당자를 몇 년 하고, 몇 년 전까지 자동차 부품업체 경영컨설팅을 해봤는데 협력업체에 대한 약탈성은 일본과 한국이 달랐다. 한국이 훨씬 가혹했고, 당연히 협력업체는 피골이 상접했고, 이익을 (장부상으로는) 절대로 많이 내려고 하지 않았다. 일본 도요타, 혼다, 니산 자동차조차도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가혹한 원가절감을 밀어붙였지만 한국 같은 수준은 아니었다. 이런 것을 보니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부품업체나 중간재 업체가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분명한 것은 유료도로(망) 사업자가 자신의 단기적인 이익을 극단적으로 추구하게 되면 그 도로에 의존하는 공장과 도시가 피폐해지면서, 결국에는 도로를 이용할 차량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 실제 이 조짐은 있다. (민주화의 산물인) 세계 최고 수준의 표현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류’를 만든 끼와 열정이 넘치는 연예인, 작가, 기획자들이 이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지주(이동통신사)로 인해 팍팍한 현실에 고통스러워하고, 암울한 미래에 절망하며, 자신이 들어선 길을 후회하고 있다. 다시 태어나면 절대로 이 짓을 하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자식이 그 길로 가려고 하면 극력 만류할 태세다. 그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한, 가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 같은 존재인 재기발랄한 젊은 연예인들이 더 이상 유전이기를 거부하는 격이다. 이들이 노래와 춤을 멈추고, 작사. 작곡을 멈추면 유전이 없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은 계급사회 문제 전근대사회는 길, 강, 다리, 토지가 통행세나 소작료 형태로 상인과 농민의 부를 왕창 빨아가는 사회이다. 또한 왕이 내려준 독점권(전매권), 세습 신분, 유력자들과의 사적 연고, 벼슬 여부-비록 과거 시험을 통해서 선발되었다 하더라도-에 따라 부, 권력, 명예가 천양지차가 나는 사회이다. 천민자본주의 사회는 기업과 노블레스들이 자본주의적으로 변형된 통행세나 소작료나 독점권을 추구하는 사회이다. 한번 깔아만 놓으면 가만히 있어도 끊임없이 통행량과 통행세가 증가하는 ‘망’을 사적으로 소유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사회이다. 더 심하면 19세기 말 미국의 ‘스탠더드 오일’처럼 깔아놓은 ‘망(철도)’을 지렛대로 다른 생산자(석유사업자)들을 모조리 먹어 치워 버리는 사회이다. 기업과 노블레스들이 수많은 농노나 소작인을 거느린 봉건 영주나 지주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이다. 한마디로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 일부 가치생산 사슬이 전후방 가치생산사슬을 악랄하게 착취하는 사회이다. 당연히 이런 사회에서는 알박기(가치생산 흐름 교란해서 이익 챙기기), 부동산 불로소득 추구, 도장만 찍으면서 돈 벌기, 높은 진입장벽 및 경쟁제한 장벽 쌓기, 관료가 되어 규제권과 처벌권을 갖기(민간 전체를 ‘을’로 만들기)가 횡행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도심요지 부동산 소유 여부, 자격증 소유 여부, 학벌, 학연, 연고, 가치생산 사슬에서의 위치 등이 곧 계급이 되기에, 높은 계급(소속)에 들어가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다. 한국의 부동산 투기 열풍,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진학률과 사교육 열풍, 고시, 공시, 유학열풍, 대기업. 공기업 현장직의 고령화, 외주화, 대기업 고용감소, 살인적인 대기업. 공기업 입사 경쟁률, 대기업에서 주로 벌어지는 몇 년에 걸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의 근원은 바로 계급 사회적 요소 때문이다. 계급사회는 세습 신분이 있어야만 계급사회가 아니다. 자신의 노력, 실력이 아니라 소속, 연고, 자격증, 도심요지 부동산 소유 여부가 운명을 결정하면 계급사회이다. 한국 사회가 선진 사회로 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장애는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노블레스들과 사회적 강자들이 전근대사회와 천민자본주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옹호하기 때문이다. 선진사회는 자신의 창의, 열정, 오랜 몰입을 통해 창조한 성과 -히트 곡, 스타쉽, 특허권, 브랜드 가치- 등을 통해 부, 권력, 명예를 누리는 것을 권장하는 사회이다. 당연히 자신의 노력, 능력, 실력에 기반을 두지 않는 각종 프리미엄, 진입장벽, 자릿세(경제적, 정치적 지대)가 낮은 사회이다. 놀고먹는 자, 적게 기여하고 많이 누리는 자를 철저히 배격하는 사회이다. 가치 생산 생태계가 기여, 부담, 책임과 이익, 혜택, 권능의 균형이 잘 잡힌 사회이다. 한마디로 경쟁과 거래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무엇보다도 가치의 분배가 공평하여 억울함이 덜 한 사회이다. 높은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은 바로 이 토양위에 핀 꽃이다. 유럽이나 일본 사회는 독과점이나 기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전후방 가치생산사슬 약탈을 법과 제도로 막고, 또 사회 구성원들이 공평 감각을 체화하여 스스로 자제하는 사회라고 알려져 있다. 반면에 미국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의 공평 감각이 체화된 사회는 아니다. 그렇기에 CEO 연봉과 금융 전문가들의 연봉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공정거래를 규제하고 엄벌하는 법,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 시장이 큰 만큼 시장 참여자가 많아서 독과점이 발생하기도 어렵지만, 용케 독과점에 도달한 거대한 공룡 기업(20세기 초 스탠더드 오일, 아메리칸 타바코, 최근의 AT&T,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기업분할명령을 통해서 쪼개 버린다. 단적으로 철도업체와 결합하여 석유수송망을 장악한 스탠더드 오일은 미 석유 시장의 90%를 점유했으나 1890년 제정된 셔먼 반트러스트 법에 의해 1911년 30개 회사로 분할되었다. 그런데 한국은 이도 저도 아니다. 모든 사회적 강자들이 적게 기여하고 많이 누리려는 도적의 심리를 가지고 있다. 가치생산 생태계를 불태워 잠깐의 높은 소출을 바라는 화전민의 심리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불공정거래에 대한 감시, 감독은 허술하고, 징벌은 솜방망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 사회는 모든 영역에서 ‘대’가 끊기는 사회가 된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청년고용률, 그리고 OECD최고의 자살율과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력산업의 현장직(노조원)의 급속한 고령화(신규채용 부재)는 그 징표이다.
新애절양(哀絶陽)사회 다산 정약용 (丁若鏞 )은 1803년 哀絶陽(애절양)-男根을 자른 것을 슬퍼함-이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목민심서에 실었다. 蘆田少婦哭聲長(노전소부곡성장) 갈밭마을 젊은 아낙 길게길게 우는 소리. 哭向縣門號穹蒼(곡향현문호궁창) 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네. 夫征不復尙可有(부정불복상가유) 출정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 있다해도 自古未聞男絶陽(자고미문남절양) 사내가 제 양물 잘랐단 소리 들어본 적 없네 舅喪已縞兒未澡(구상이호아미조)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갓난아인 배냇물도 안말랐는데 三代名簽在軍保(삼대명첨재군보) 이 집 삼대 이름 군적에 모두 실렸네. 薄言往愬虎守閽(박언왕소호수혼) 억울한 하소연 하려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같고, 里正咆哮牛去早(이정포효우거조) 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다네. 磨刀入房血滿席(마도입방혈만석)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가더니 피가 방에 흥건하네 自恨生兒遭窘厄(자한생아조군액) 스스로 부르짖길, "아이 낳은 죄로구나!". 蠶室淫刑豈有辜 (잠실음형기유고) 누에치던 방에서 불알까는 형벌도 억울한데 閩囝去勢良亦慽(민건거세양역척) 민나라 자식의 거세도 진실로 또한 슬픈 것이거늘 生生之理天所予 (생생지리천소여) 자식을 낳고 사는 이치는 하늘이 준 것이요 乾道成男坤道女 (건도성남곤도여) 하늘의 도는 남자 되고 땅의 도는 여자 되는 것이라 騸馬豶豕猶云悲(선마분시유운비)) 거세한 말과 거세한 돼지도 오히려 슬프다 할만한데 況乃生民思繼序 (황내생민사계서) 하물며 백성이 후손 이을 것을 생각함에 있어서랴! 豪家終世奏管弦(호가종세주관현) 부자집들 일년 내내 풍악 울리고 흥청망청 粒米寸帛無所損(립미촌백무소손) 이네들 한톨 쌀 한치 베 내다바치는 일 없네. 均吾赤子何厚薄(균오적자하후박)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 불공평하다니, 客窓重誦鳲鳩篇(객창중송시구편) 객창에 우두커니 앉아 시구편을 거듭 읇노라 (손경자 번역) 정다산은 목민심서에 이 시를 짓게 된 연유까지 써 놓았다. ‘이 시는 가경(嘉慶) 계해(癸亥·1803년) 가을에 강진에서 지었다. 노전(갈대밭)에 사는 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3일 만에 군보(軍保)에 올랐다. 그러자 이정(里正)-세금 징수 관리-이 군포(軍布) 대신 그 집의 소를 빼앗아 갔다. 남편은 칼을 뽑아 자신의 남근을 잘라버리면서 “나는 이 물건 때문에 이런 곤욕을 받는구나” 하였다. 아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근을 가지고 관가에 가 울면서 호소하였으나 문지기가 막았다. 내가 이를 듣고 이 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다산 선생이 살았던 시대에는 중앙과 지방의 모든 관아에서 기록이나 문서, 전곡(錢穀)을 관장하는 말단행정에 종사하는 이속(吏屬)들이 조세를 가혹하게 거두어들여, 백성을 못살게 들볶는 가렴주구(苛斂誅求)가 극에 달해 있었다고 한다. 갓난아이나 죽은 자에까지 군포(군 복무 대신에 내는 세금)를 물리는 실태-백골징포(白骨徵布), 황구첨정(黃口簽丁)- 가 허다했다고 한다. 물론 이 때 양반들은 세금이 면제되거나 담세 능력에 비해 매우 적은 세금을 부과 받았다. (법에는 16살부터 60살까지 평민 남자에게만 군역을 부과하여 역을 담당하거나 군포를 내도록 했고, 한 집에 두 사람을 한꺼번에 군역을 부과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법이 지켜지지 않았다)
양반이 되면 병역의무도 군포 납부의무도 없어지는 등 각종 특권이 생기니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양반이 되려고 하였다. 역사학자 이덕일의 조사에 따르면 족보가 비교적 잘 남아있는 대구 지역의 경우 1690년(숙종)에는 양반이 9.2%, 양민이 53.7%, 노비가 37.1%였다. 약 100년 뒤인 1783년(정조)에는 양반이 37.5%, 양민은 57.5%, 노비는 5.0%로 되었다. 그 70년 뒤인 1858년(철종)에는 양반이 70.3%, 양민이 28.2%, 노비는 1.5%로 줄었다. (이덕일,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마리서사,2005) 조선 말기에는 양반이 80~90%이상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양반과 일본의 영주, 사무라이, 유럽의 귀족들의 두드러진 차이는 조선의 양반계급은 병역, 납세 의무도 없고 특권만 있었는데 반해, 일본과 유럽은 최소한 공동체를 지키는 의무는 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조선은 재산권(소유권)이 뚜렷하지 않아 양민이 힘써 얻은 재화를 지방 관리와 유력 양반 집안이 약탈해 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이러니 문전옥답을 팔든, 딸자식을 팔든 기를 쓰고 양반 족보를 사서 양반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안 되면 자신과 처와 자식 등 한 가족을 양반가에 통째로 팔아서-기록에 따르면 18세기 말 4~6인 가족의 몸값이 소 한 마리 값이었다고 한다- 병역, 납세의 의무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지배층은 양반이 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회구조를 혁파하지 않고, 다시 말해 양반의 특권과 특혜를 폐지하지도, 권리와 혜택에 상응하는 의무와 부담도 지우지도 않고 양반을 변칙적으로 보편화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그것이 양반 증명서를 갖고 있거나 발급하는 기존 양반들과 왕실에 일시적 이익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남아있는 양인(평민)들의 부담은 점점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 악순환의 끝에서 터져 나온 단말마가 바로 哀絶陽(애절양)이며, 그 최종적인 귀결은 조선왕조의 멸망이다. 왕조가 망한지 10년이 안되어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입헌군주국도 아닌 ‘민주공화국’을 헌법 제1조에 명시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독립운동 시기에 근왕주의 세력이 거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조선이 양반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데 있다. 대기업. 공기업, 전문직(자격증), 공무원(고시, 공시합격자), 좋은 대학, 해외 학위 등의 과도한 특권, 특혜를 조정하지 않으니, 아니 그런 것을 확보하지 않으면 사람대접 받으며 살기가 힘드니, 소득의 증가, 대학 입학 정원의 확충, 해외 유학(송금) 자율화 등에 따라 양반되기 경쟁(地代=rent 추구 경쟁)이 널리 확산되어 버린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진학률과 고시, 공시, 유학열풍, 정규직화 투쟁 등은 본질적으로 문전옥답 팔고, 딸자식 팔아서 양반이 되려는 시도의 재판이라고 보아야 한다.
나는 한국의 자칭 자유주의자, 시장주의자들이 반미. 친북. 좌파를 욕하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재벌. 대기업, 조중동의 불공정거래를 욕하는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 MB정부의 반시장적 반자유주의적 행보를 욕하는 소리도 듣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뉴라이트는 뉴반공주의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자칭 진보주의자, 좌파들이 부동산 투기와 고용 불안을 탓하고, 국가의 무책임성과 공동체의 붕괴를 한탄하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좌우 이익집단에 의해, 또 이들에게 포섭된 무능한 국가에 의해 황폐화된 가치생산 생태계를 한탄하는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 과잉시장(경쟁)을 성토하는 소리는 귀가 아프게 들었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과소시장(경쟁)을 성토하는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여, 정부 발주 용역 사업 수주 조건에 들어있는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몇 명이라는 철지난 규정으로 인해, 실력은 있지만 곤궁한 시간강사, 박사들이 소작인처럼 착취당하는 현실을 시정하려는 움직임도 보지 못하였다. 지식인 사회의 계급 사회적 요소 내지 철지난 경제적 지대를 혁파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지식인들도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X 끊는 사회를 만든 책임은 약간 적을 지라도, X 끊는 사회의 마지막 수혜자이자, X 끊는 사회를 혁파할 역사적 책임이 있는 386세대의 자기반성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였다. 대선, 총선, 보궐선거 같은 장이 서면, 어디서 뭐하다 나왔는지,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에 공천을 받겠다고 길게 늘어선 참신한(?) 애국(?) 지사들은 넘치지만, 정치적 독과점 체제를 뚫고 제대로 된 정치를 하려고 정도를 걷는 정치인은 거의 보지 못하였다. 자유, 시장, 민주, 진보, 공화, 공동체, 복지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넘치지만 모든 것의 기초인 공정과 공평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얘기하는 사람도 보지 못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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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양, 다산, 정약용, 386세대, 가치생산 생태계, 드라마 산업, 디지털 음악, 음악산업, 한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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