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간지의 사람 사는 세상

당신은 세상에사 가장 행복한 '바보'입니다.

장백산-1 2009. 5. 28. 16:12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바보입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세상이 오길 빌며

( 스포츠春秋 / 박동희 기자 / 2009-05-24)


“야구 좋아하십니까?”
우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달리 물을 만한 게 없었습니다.

“야구요?”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습니다. 역시 어리석은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 어리석은 질문을 묵살하지 않았습니다. 빙그레 웃으며 그가 한 말은 이랬습니다.
“부산상고가 야구 명문 아닙니까.”

 

그게 그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2002년 늦가을이었습니다. 그는 제가 사는 동네로 대통령 유세를 왔고, 저는 퇴근길에 친한 선배와 함께 그의 유세를 듣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이윽고 그가 단상에 올랐습니다. 그때 선배가 제 어깨를 '툭' 치며 했던 말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봐, 노무현이야.” 노무현. 그의 이름을 그때 처음으로 곱씹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던 소시민이었습니다(죄송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장을 거울에 비춘 듯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정치’는 아무래도 좋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더했습니다. 이 또한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게 ‘정치인’은 화성인과 네안데르탈인 사이에서 태어난 신인류와 같았습니다. 도덕성과 양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신인류가 바로 ‘정치인’이었던 것입니다.

노무현이라고 별수 있겠어.” 아마도 저는 그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리고 선배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술이나 마시러 가자!”라고 채근했을 것입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조금만 듣고 가자.”

 

결국, 선배의 뜻에 따랐습니다. 잠자코 그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연설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마이크의 낮은 감도 때문에 도저히 연설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목공용 조각도로 깎은 듯한 그의 깊은 이마 주름과 반달모양의 입가가 이상하게 자꾸 눈에 밟혔습니다.

 

지금은 그 어떤 연설의 내용도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딱’ 하나 기억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 노무현이는 끝까지 여러분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가 그것입니다.

 

당시 그는 지지율 하락으로 당내에서 ‘후보 사퇴’를 강요받을 만큼 위기에 몰려 있었습니다. 당원들이 뽑은 대통령 후보를 당 수뇌부들이 몰아내려는 반(反)이성, 야만의 움직임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습니다. 입으로는 ‘서민정당’을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재벌총수를 대통령 후보로 모셔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동분서주하던 ‘당’이 실제로 지구 상에 존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주 많은 이들이 “노무현이 사퇴해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그때, 당이 자신을 외면하던 그때, 당직자들이 자신을 축출하려던 그때, 세상이 자신을 배신하려던 그때. 그가 한 말은 역설적이게도 “여러분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어째서 그의 말이 정치와 담을 쌓고 살던 제 마음에 큰 북소리가 돼 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영문으로 그의 “배신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나도 당신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가슴의 화답으로 이어졌는지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전 정말 그렇게 마음속으로 화답했습니다.
‘나도 당신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그가 연설을 마치고 단상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청중의 손을 한 명 한 명 정성스럽게 잡으며 지지를 부탁했습니다. 이윽고 제 차례가 됐을 때, 그의 손을 잡으며 제가 한 말은.
“야구 좋아하십니까?”

그리고 그가 한 말은.
“부산상고가 야구 명문 아닙니까.”

 

그해 대통령선거에서 그는 이겼습니다. 저는 그의 당선을 추어탕 집에서 확인했습니다. 당시 뛰었던 사회인야구팀의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하던 참이었습니다.

“자넨 왜…”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형님이 절보다 인상을 찌푸리시며 말을 이었습니다.
“다른 경기도 아니고 오늘 같은 경기에 빠지고 그래.” 저는 투표일에 열릴 예정이던 사회인야구팀의 경기에 불참하고 말았습니다.
“못 나오면 못 나온다고 사전에 말을 하던가. 갑자기 당일에 못 나오면 어떻게 하나.” 노여워하실 만도 했습니다. 팀의 주전 유격수가 빠진 셈이었으니까요.

 

저는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경기에 출전하려고 유니폼을 빼입고 집을 나서려던 찰나, 후보단일화에 합의했던 어떤 정치인이 투표 전날 갑자기 ‘지지 철회’를 선언하며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사회의 페어플레이’를 위해 지금 제가 출전해야 할 곳은 사회인야구장이 아니라, 투표장임을 깨닫게 됐다고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들을 향해 “배신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바보 같은 정치인을 여기서 배신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드리고 나서 몇 분 후면 나올 투표결과를 보려고 TV 브라운관으로 고갤 돌릴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분 후. 저는 밥상 아래로 두 손을 모은 채 어깨가 떨리지 않을 만큼의 가벼운 기쁨을 나타냈습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입니다. 그러나 가벼운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저나 여러분, 혹은 여러분과 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를 배.신했습니다. 경제가 나쁘면, 정국이 경색되면,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 국민이 대통령을 비난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 혹은 여러분과 저에게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일상의 게임이자 호흡처럼 빈번했습니다.

 

우리는 아무 의미 없이, 깊은 생각 없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의 탓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세상의 그 모든 잘못이 그의 탓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화장실 물이 내려가지 않아도 저와 여러분 혹은 여러분과 저는 “이게 모두 노무현 탓”이라며 천연덕스럽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기득권 세력과 결탁하지 않고, 서민들을 위해 집값을 잡겠다고 나섰을 때 정작 그에게 돌을 던진 이들도 서.민이었습니다. 땅 한 평, 집 한 채 갖지 않은 이들이 오히려 그를 향해 손가락질했고 ‘현실을 모르는 이’라며 비난했습니다.

 

그의 재임 동안 건국 이래 처음으로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기록했을 때, 이 나라의 수많은 경제학자는 “그가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어도 그 정도 성장은 기록했을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주가가 2천 포인트를 넘고, 외화보유액을 2천600억 달러 넘게 돌파했을 때도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국가신용등급을 A+로 만들고, 부도업체 수를 전(前) 정권에 비해 3분의 1이나 줄인 그의 경제업적을 “경제파탄”이라 불렀고, 그의 경제정책을 “아마추어”라고 놀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도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는지, 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가슴에 손을 올리면 아마도 둥근 심장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그들의 손을 찌를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정파적 입장의 옳고 그름을 가르고 싶지 않습니다.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대한민국 육군을 제대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아버지가 월남전 참전 자로서 보훈병원에 누워계신 것을 원망하지 않는 국민으로서, 그가 국방예산을 늘리고 이지스함을 비롯해 자주국방에 역점을 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인류의 부끄러움이자 인간의 역사 가운데 가장 파렴치한 봉건제국으로 남을 김정일 정권으로 말미암아, 그의 국방정책과 대북정책이 폄훼되는 걸 반대합니다. 그와 별개로 그가 제주 4.3 항쟁을 국가원수 가운데 최초로 정식 사과하고, 그가 다른 무엇보다 말의 자유와 생각의 자유를 중시했던 걸 지지합니다.

 

그러나...그는 갔습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향해 떠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도, 밀짚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는 얼굴도, 손녀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끌던 소박한 그의 모습도 다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순간부터 그는 우리 안에서 부활했습니다. 그가 새벽 안개가 잔뜩 서린 돌덩이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을 때부터 그는 우리 안의 심장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떠안고 2009년 5월 23일 저세상으로 떠났을 때부터 대한민국의 역사는 다시 시작됐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죽어서 부활했습니다. 그는 정파와 이데올로기를 떠나, 지역과 혈연을 떠나, 학벌과 연고를 떠나 '용서'하고 '화해'해 '통합'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가 살아서 못한 일들을 그는 죽어서 우리에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에게서 배운 것 가운데 가장 큰 게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세요? 나와 상대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나와 상대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전제하에서 대화하고 설득하며 공유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초석이라는 것입니다.

 

고백하겠습니다. 덕수궁에 갔다가 눈물을 펑펑 쏟아내면서도 어느 순간 밝게 웃고야 말았습니다. 분노와 한이 뒤섞여진 가운데서도 저는 결국 쥐었던 손을 풀고 말았습니다. 당신의 뒤에서 병풍 노릇을 하는 경찰차를 보며, 당신의 마지막을 함께 하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을 막는 경찰의 방패를 보며, 가슴에 칼이 돋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이윽고 저는 희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참 행복한 사내였다는 생각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왜인 줄 아세요?
그토록 많은 이들이 당신의 서거를 애도하고, 소금같이 정결한 눈물을 흘렸기 때문입니다. 당신 탓을 밥 먹듯이 하던 그들이, 당신의 편이었다가 등을 돌렸던 그들이, 당신을 끝까지 지켰던 그 모든 이들이 제 발로 찾아와 당신의 마지막 길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정적들도, 당신의 반대세력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누가 그랬나요. 사람은 떠날 때 그의 참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적도 결국엔 당신의 편으로 만드는…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대통령입니다. 죽어서 부활하여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바보입니다.

 

당신은 “이제 나를 버리라”했지만 저는 지금부터 당신과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저 하늘에 계실 대통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대한민국이 화해와 용서를 이뤄 대통합을 이루는 날. 우리 모두는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그런 날이 오도록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곁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NBlogMain.nhn?blogId=dhp1225&Redirect=Dlog&Qs=/dhp1225/120068996011


ⓒ 박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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