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극단의 길과 중도
보통 나이가 들게 되면 자신이 살아 오면서 익혀 온 습관이며, 고정관념, 편견들이 자리잡게 된다. 나이 든 사람은 절대 안 바뀐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고정된 관념들에 집착하기 쉽고, 그 생각을 결코 버리지 않으려고 마음을 닫아 걸기 쉽다.
‘이것이 옳다’거나, ‘이 방식이 옳다’거나 하는 특정한 방식이나 사고의 틀이 있고 그것에 대해 고집 하게 되면 그 이외의 것에는 결코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그 고정관념 때문에 우리 의 삶이 편협해지고, 축소되며, 괴로워진다는 사실은 잘 못 느낀다.
내 마음이 얼마나 활짝 열려 있는지, 혹은 지혜로운지를 살펴볼 수 있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자신은 어떤가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眞理는 不二法이며, 法性圓融無二相이고, 둘로 나누는 分別心을 여의는 中道의 가르침이다. 즉 좋고 싫고, 옳고 그르고, 크고 작고 하는 등으로 세상을 둘로 나누어 놓고, 좋은 것은 가지려고 집착하고, 싫은 것은 버리려고 집착하고 애쓰며 거부하고 미워하는 마음이야말로 이 공부에서 가장 피해야 할 마음이다. 그것은 極端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내가 극단에 치우쳐 있는지를 알아보는 두 가지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은 자신의 삶에서 좋아서 집착하거나 사로잡혀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내가 무언가를 심하게 좋아하고, 심하게 집착하며, 심지어 중독되어 있는 대상은 없는가?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할 때 너무 과하게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물건을 살 때에도 거기에 한 번 꽂히면 반드시 사야지 직성이 풀리지는 않는가? 혹은 특정한 생각에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의 생각을 관찰시키려 하지는 않는가?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거나, 절대로 저것은 안 돼라고 생각하는 것은 없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당신은 分別心에 사로잡혀, 좋아하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한 켠의 극단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기 쉽다. 극단적으로 좋아하거나 집착하거나 편견, 고집, 중독되는 것은 자신을 괴로움 으로 몰고 간다. 심지어 타인들까지 괴롭히기 쉽다.
두 번째 질문은 싫어하고 미워해서 집착하고 거부하는 것은 얼마나 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무언가를 싫어하면 절대 꼴도 보기 싫어하지는 않는가? 싫어하는 사람이 TV에 나오기만 해도 보기 싫어서 신경질적으로 다른 채널을 돌리거나 욕을 하지는 않는가?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싫어해서 용서하지 못하고 아직까지 미워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특정한 것에 대해 강박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있는가? 내 인생 에서 떠나가 주었으면 하고 밀쳐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절대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만약에 이처럼 싫어하는 것을 거부하는 마음, 용서되지 못한 원한심, 배척하려는 마음이 많이 남아 있다면 이 또한 싫어하는 것에 과도하게 사로잡혀 있는 한 쪽의 극단이다. 이 쪽의 극단 또한 나 자신을 괴롭게 만 들고, 타인들까지 피해를 주기 쉽다.
극단적으로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거나 거부하는 집착심이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제한된 틀에 갇히게 되고, 思考는 유연성을 잃으며, 마음은 닫히게 된다. 그로 인해 삶의 힘겨워지고, 괴로운 일들은 날마다 늘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좋아도 너무 과도하지 않게, 싫어도 너무 과도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활짝 열리게 되고, 괴로움 또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쉽게 말하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現實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 면서 있는 그대로를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삶, 그것이 바로 中道의 삶이며, 행복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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