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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안에 고대 한국어 실상 고스란히 담겨

장백산-1 2015. 11. 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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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안에 고대 한국어 실상 고스란히 담겼죠”
2015년 11월 19일 (목) 22:10:20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장경준 고려대 국문과 교수 등
‘유가사지론’ 석독구결 역주
15세기 이전 언어 형태 남아
고려시대 불교학 수준도 확인
불교학자 등 연구 참여 필요

  
▲ 장경준 고려대 교수는 최근 15세기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고대 한국어의 비밀을 담고 있는 ‘유가사지론 권20의 석독구결 역주’를 펴냈다.

 

 

국문학자에게 15세기 이전의 국어사 연구는 어두운 산길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 훈민정음처럼 우리말 소리를 정확히 기록할 수 있는 문자체계가 없는데다가 관련 기록들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장경준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와 오민석·문현수·허인영 연구자가 최근 공동집필한 ‘유가사지론 권20의 석독구결 역주’(역락)는 훈민정음 이전의 고대 한국어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유식학파의 핵심 문헌인 ‘유가사지론’에 대한 고려시대 학승의 이해가 뚜렷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불교학적인 가치도 크다는 평가다.

 

석독구결(釋讀口訣)은 한문으로 쓰인 불경을 한국어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토를 단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현토 당시의 한국어 문법형태의 쓰임이 자세히 기록돼 있을 뿐만 아니라 어순까지 표시돼 있어 15세기 이전의 한국어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1973년 발견된 ‘구역인왕경’ 권상에 이어 1990년대 이후 ‘유가사지론’ 권20, ‘화엄경’ 권14, ‘합부금광명경’ 권3, ‘화엄경소’ 권35에서 석독구결이 발견되면서 비록 가로등 환한 신작로는 아닐지라도 밤길을 비출 수 있는 작은 등불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더욱이 2000년 7월에는 아주 새로운 형태의 구결이 발견됐다. 일반적인 문자가 아닌 점과 선 모양의 기호를 특정 위치에 기입해 넣는 방식인 ‘점토구결(각필구결)’이 발견된 것이다. 고려시대 문헌인 ‘유가사지론’ 권5와 권8을 비롯해 ‘(주본)화엄경’ 권6, 권36, 권57, 권31, 권34, ‘(진본)화엄경’ 권20, ‘법화경’ 권1, ‘합부금광명경’ 권3, ‘유가사지론’ 권3, 권53도 속속 점토구결로 드러났다. 10~12세기 한문으로 쓰여진 경전을 그 당시의 한국어로 읽을 수 있도록 뾰족하고 날카로운 각필을 이용해 토를 달았음이 확인된 것이다.

 

 

  
▲ 왼쪽은 ‘구역인왕경’의 자토석독구결,  오른쪽은 ‘유가사지론’의 점토석독구결.

 

 

점토구결의 발견은 국어사 연구자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장경준 교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1999년 연세대에서 15세기와 현대 국어에 나타나는 ‘~어 하~’의 통합현상을 연구해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원로 국문학자인 남풍현 단국대 명예교수를 만나면서 구결에 큰 관심을 가졌다. 특히 석독구결은 그 가치에 비해 아직 미지의 영역이라는 점도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연구 영역. 그런 만큼 이 분야에 대한 개척은 쉽지 않았다. 15세기 국어 어휘 및 문법 지식과 더불어 한자를 이용해 한국어를 적는 차자(借字)표기에 대한 소양을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점토구결이나 부호구결은 암호와 비슷해 구결자로 토를 단 석독구결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어야 비로소 해독할 수 있었다.

 

2000년 초반 장 교수는 석독구결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남풍현 교수의 지도와 격려가 큰 힘이 됐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2월 ‘‘유가사지론’ 점토석독구결의 해독 방법 연구’(연세대대학원)로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구결점으로 토를 단 석독구결을 주제로 쓴 최초의 박사학위논문이었다.

 

서울여대 국문과 전임을 거쳐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게 된 그는 2011년부터 대학원생 등과 구결 강독 모임을 꾸렸다. 장 교수는 이들과 매주 정기적으로 모여 3~4시간씩 텍스트를 읽고 토론했다. 그해 ‘유가사지론’ 권20을 완독한 것을 시작으로 2012년 ‘유가사지론’ 권8, 2013년 ‘유가사지론’ 권5를 차례차례 독파해나갔다. 그리고 2014년에 다시 ‘유가사지론’ 권20을 강독한 뒤 올 상반기 교정 작업을 거쳐 단행본으로 엮어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유식학자인 백진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도 큰 도움이 됐다. 여러 차례 관련 강의를 한 것은 물론 ‘유가사지론’을 개관하는 해제와 전체 번역문에 대한 감수도 기꺼이 맡아주었다. 고려시대 ‘유가사지론’ 석독구결 자료는 비단 중세의 국어학뿐 아니라 고려시대의 불교학을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라는 게 백 교수의 판단이었다.

 

 

장 교수가 여러 연구자들의 도움을 얻어 이 책을 펴낸 것은 석독구결이 15세기 이전 국어사 연구의 필수 자료임에도 초학자들이 참고할 만한 책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 석독구결에 의한 고려시대 불경 번역의 구체적인 내용을 불교학자나 번역학자 등 연구자들과 공유할 때가 됐다는 생각에서다. 실제 장 교수는 한문 원문이나 동국역경원의 현대어역을 보았을 때 막연하던 내용이 석독구결의 토를 따라 읽다보면 머릿속에서 명확히 이해되는 경험을 자주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 ‘유가사지론 권20의 석독구결 역주’

 

장 교수는 “석독구결은 한문을 한국어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표기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번역물로 볼 수 있고 일본의 훈점과 유사한 점도 많아 흥미로운 비교 연구의 대상이 된다”며 “불교학을 비롯해 인접학문의 학자들이 힘을 모으면 고대 한국어의 실체를 보다 명확히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20호 / 2015년 1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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