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찾아서!!!

펄 벅과 한국의 독립운동

장백산-1 2015. 11. 14. 20:57

 

 

[조운찬의 들숨날숨]펄 벅과 한국의 독립운동

 

경향신문
| 조운찬 |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 | 입력2015.11.13. 21:06

기사 내용

중국 양쯔강변의 도시 전장(鎭江)은 1935~1937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머물렀던 곳이다. 상하이, 항저우에 이은 임시정부의 세번째 피난처이다. 전장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몇 해 전 임시정부 부지 인근의 학교를 기념관으로 꾸몄다. 2년 전 국민대 임시정부 루트 탐방단에 끼어 그곳을 방문했을 때, 한 전시 문건이 눈에 띄었다. 미국 작가 펄 벅이 1935년 8월15일자 중국 신문에 ‘한국인은 마땅히 자치를 해야 한다(韓國人應該自治)’는 칼럼을 발표하며 한국인의 항일투쟁을 지원했다는 내용이었다.

 

펄 벅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게 전부였던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 뒤 펄 벅의 상세한 이력을 읽고, 그가 한국 독립운동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내력을 이해하게 됐다. 펄 벅은 미국에서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간다. 젊은 시절을 전장시에서 보낸 그는 인근 난징대의 교수가 된다. 펄 벅은 대학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을 처음 만난다. 그들은 대부분 독립운동가의 자제들이었다. 펄 벅은 이들을 통해 한국의 독립운동을 접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독립운동가들의 고향’이 궁금했던 펄 벅은 1960년 한국을 찾는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 그는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을 구상한다. 이어 2년간의 집필기간을 거쳐 <살아있는 갈대(The living reed)>를 내놓는다. 소설은 한말에서 광복까지 나라를 구하기 위해 투쟁한 한 가문의 4대에 걸친 이야기다. ‘소설로 읽는 한국 독립운동사’라고 해도 좋겠다.

 

펄 벅은 대원군 섭정, 갑신정변, 명성황후 시해사건, 경술국치 등 한말의 역사를 개괄한 뒤 제암리 사건에서 의열단 투쟁, 만주항일투쟁으로 이어지는 독립운동을 유장하게 풀어낸다. 한말의 관료 ‘김일한’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펄 벅이 정작 말하고 싶었던 것은 김일한의 아들 ‘연춘’의 독립투쟁이었다. 소설에서 연춘은 중국과 만주 일대를 누비며 ‘항일투쟁의 전설’로 불린다. 그의 별명은 ‘살아있는 갈대’. 갈대는 꺾여도 해가 바뀌면 계속 다시 피어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불굴의 한민족을 상징한다.

 

<살아있는 갈대>는 <대지>와 쌍벽을 이루는 펄 벅의 대표작이다. 펄 벅은 이 책의 맨 앞장에 “한국은 고상한 국민이 살고 있는 보석 같은 나라이다”라고 적었다. 소설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와 항일투쟁에 대한 오마주다. 펄 벅은 독립운동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되었고, 한국인의 친구가 되었다. 그는 <살아있는 갈대> 이후 한국을 소재로 한 소설을 두어 편 더 발표했다. 또 말년에는 경기도 부천에서 살면서 혼혈 고아들을 위한 ‘소사 희망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현재 희망원이 있던 자리에는 ‘부천펄벅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펄 벅은 자서전에서 “독립운동가들의 항일정신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분석은 정확하다. 역사학자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 국호 탄생과정을 추적한 논문에서 ‘대한민국’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태어났으며 항일투쟁이 한국의 정체성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국호뿐인가.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가 각각 대한민국의 국기, 국가, 국화로 공식화된 것은 모두 독립운동 과정에서 이루어졌다(조동걸 교수의 논문 ‘국호, 국기, 국가, 국화는 언제, 어떻게 만드는가’).

 

일제하의 항일운동은 대한민국을 만든 원형질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대한민국헌법 제1조1항의 뿌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다. 현행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헌법 정신을 왜곡하며 독립운동의 역사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주관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는 새 국정교과서에서 근현대사의 비중을 크게 줄이겠다고 한다. 또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새 교과서에서는 독립운동이 지워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행태는 중국 정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를 복원하고, 안중근기념관을 세워 한국 독립운동을 기리는 것과는 정반대다.

 

2년 전 항저우 임정기념관에서 만난 중국인 관장은 “중국이 부동산 개발 이익을 포기하고 항저우 임정 청사를 보존하는 것은 항일연대 정신을 기리며 한국과의 우호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독립운동은 단순한 항일투쟁이 아니었다.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론’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민족을 뛰어넘은 인도주의 평화운동이었다. 펄 벅이 한국 독립운동가의 친구가 되고 중국이 한국의 항일정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보석 같은 독립운동을 내팽개치려 한다.

 

<조운찬 |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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