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본래지(本來知), (根本知)

장백산-1 2016. 6. 15. 20:24

본래지(本來知), (根本知)  | 영원한 나를 찾아서

유당|2016.06.15. 12:21  http://cafe.daum.net/yourhappyhouse/Ev0h/6172 



본래지(本來知, 根本知)



모든 부처님의 本來知나 일체중생의 本來知나 本來知는 하나뿐이지 둘이 아니다. 절대로 둘이 아니다.

중중무진重重無盡 일체중생들, 중중무진 수억겁의 중생들, 중중무진의 우주삼라만상만물들, 별의별 

모양과 형상, 가지가지 색깔이 다 다르고, 가지가지 각자가 지어놓은 業이 다 다르고 다르다 해도

연기법緣起法 즉, 연기로 생겨난 것들 以前, 모양과 형상 이전, 색깔 이전, 각기 지어놓은 業 이전의 

本來知, 根本知는 하나뿐이다. 또 억겁이 흐른다 해도 本來知는 하나뿐이지 결코 둘일 수 없다.

 

부처님은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즉 알에서 태어나는 중생이든, 태胎에서 태어나는 

중생이든, 습기濕氣로 생겨나는 중생이든, 화化해서 생겨나는 중생들이든 모두가 하나 같이 緣起法 

으로 생겨나기 以前에는 法身부처님과 같은 형제이고, 같은 가족이기 때문에 法身부처님은 알로 나는 

중생, 태로 나는 중생, 습기로 나는 중생, 화해서 나는 중생들을 누구나 무엇이나 분별 차별 없이 끝

까지 平等하게 키워내고 아끼고 사랑하시며 자비하신 법문을 계속하시는 것이다.

 

모양 이전, 형체 이전, 색깔 이전의 本來知에서는 太初부터 다 같은 한 형제이고  한 가족이다. 온갖

현상으로 현시되어 있는 우주만물은 제각각 자기가 緣起된 바에 따라 지은 業이 다르다보니 형체가 

다르고, 색깔이 다르고, 業이 다른 것이지 각기 지은 緣起法 이전, 本來知에서는 한 형제, 한 가족이다.

땅 속에 사는 微物의 벌레도 本來知에서는 같은 한 형제요, 같은 한 가족이기 때문에 佛敎에서는 아무

리 작디작은 벌레라 해도 함부로 살생하지 않고 모든 生命을 尊重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本來

知, 根本知, 자기 본래마음부터 믿고 섬기고, 이렇게 믿고 섬기는 智慧가 바로 佛敎의 智慧이다.

 

봄이 되어 법신부처님이 봄에 맞는 봄옷을 입는 것이나 일체중생들이 봄에 맞는 봄옷을 스스로 입을 

줄 아는 本來知, 根本知는 다 같은 본래지이지 다른 본래지이 아니지 않는가. 이 본래지, 근본지는 어

디 누구에게 별도로 배워가지고  아는 앎이 아니다. 本人 스스로 본래부터 이미 아는 本來知를 꼭 공

하는 삶이야말로 지혜로운 삶이다. 무더운 여름이 되면 법신부처님께서도 여름에 맞는 시원한 옷을 

입을 것이다. 법신부처님이라 해서 무더운 여름을 모르고 못 느끼고 여름에 맞지 않는 두꺼운 옷을 입

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중생들도 법신부처님 같이 여름에 맞는 시원한 옷을 입을 것이다.


법신부처님이 시원하게 입으시니 중생도 따라서 법신부처님과 같이 여름옷을 입는 것이 아니고 모든 

대중이 여름에 맞는 여름옷을 입기에 나도 남을 따라 여름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법신부처님과 다른 

대중들과 상관없이 本人 스스로 알아서 肉身이 요구하는 시원한 여름옷을 입는 것이다. 他人에게 배

워서 여름옷을 입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기 스스로가 자기 육신이 요구하는 대로 사계절에 맞

는 옷을 때마다 그 때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다.


봄이 다가오면 봄인 줄 알고, 여름이면 여름인 줄 스스로 느끼고 아는 本來知가 무언지 무언지 畜生이 

아닌 萬物의 영장靈長인 사람으로서 아무 생각 없이 배불음에만 만족하고 앞뒤 아무 생각 없이 허송

세월만 보내는 것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의 智慧로 사는 삶이 아니다. 사람들의 品位가 아니다.

 

가을이 되면 가을에 맞는 옷을 입고 가을 나들이를 즐기고, 가을 축제가 전국 방방곡곡에 펼쳐짐이

사람들이 사는 本來知, 우주 대자연(宇宙大自然)의 사는 본래 모습이다.

 

겨울이 되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월동준비를 시작한다. 어른들의 월동준비나 아이들의 월동준비나

늙은 노인들의 겨우살이 준비나, 펄펄한 청년들의 겨우살이 준비나 여자들의 월동준비나 남자들의 

겨우살이 준비나, 신분 높은 사람들의 겨우살이 준비나 신분 낮은 사람들의 준비나, 부자들의 월동

준비나 거지들의 겨울 살림살이 준비나, 추우면 추운 줄 스스로 아는 本來知는 사회적인 지위가 높고 

낮음에 아무런 관계없이 하나뿐이지 절대로 둘이 아니다. 本來知가 무언지 무언지 참구하는 佛事는

영원무궁토록 끝이 없어야 한다.

 

本來知가 一切衆生의 안식처安息處이고 의지처依支處라 해도 지혜지智慧知가 없어서는 안 된다.

虛空에 태양도 없고 달도 없고 수많은 별들도 없이 虛空만 있으면 안 되듯이 本來知만 있고 智慧知가 

없다면 허공에 달이 없고, 해가 없음과 똑같다. 본래지本來知에도 지혜지智慧知가 꼭 있어야 한다.

절대로 꼭 있어야 한다. 본래지本來知 앞에 지혜지智慧知가 있으면 허공에 달과 해가 있음과 같다.

 

그러나 지혜지智慧知가 아무리 위대하고 위대하다 해도 지혜지는 ‘本來부터’있는 本來知가 아니다.

지혜지는 ‘本來부터’있는 본래지가 아니기 때문에 일체중생의 안식처安息處가 될 수 없다. 의지처

依支處가 될 수 없다. 신앙처信仰處가 될 수 없다.

 

本來知는 本來부터 太初이고 本來부터 하나뿐이지만 智慧知는 ‘어느 때부터’ 생겨나는 앎이기 때문에

하나가 아니고 數數萬 개다. 일체중생들마다의 本來知는 하나뿐이지만 智慧知는 중생들마다 다 다르다. 

각각 다 다르고 다양하다.

 

사람이 백명이면 백명 모두의 本來知, 根本知는 하나뿐이지만 智慧知는 백명 모두가 각각 다 다르다.

지혜가 더 높은 사람, 지혜가 더 낮은 사람등 천차만별千差萬別로 모두 다 다른 것이 지혜지이다.

 

과학이 아무리 좋고 좋다 해도 人類에게 便利를 주는 그 이상은 아니다. 인류생활에 절대적인 安息은 

될 수 없다. 영원한 휴식처는 못된다. 智慧知도 인류에게 便利이지 便利 이상은 못 된다. 사람이 사는 

데에는 편리도 중요하고 중요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편리가 아니고 安息이고 休息이며 몸과 마음 

의 健康이다. 건강 이상 더 좋은 것은 세상에 없다.

 

本來知는 법신부처님 본래지나 중생들 본래지나 아무 差異가 없이 平等하지만 법신부처님과 중생들의 

智慧知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난다. 지혜지는 보살의 지혜지가 다르고, 조사스님들의 지혜지가 다

다르다. 지혜지는 차이가 나지 않는 곳이 없다. 천차만차千差萬差가 되지 않을 수 없다.

 

本來知, 根本知는 연기법緣起法이 작용하기 이전의 자리이기에 그곳에는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다.

지옥도 없고, 극락도 없다. 너도 없고, 나도 없다. 生도 없고, 死도 없다. 輪廻도 없고, 因果도 없다.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다. 높은 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다. 빈부도 없다. 오고 감도 없다.

靑黃赤白이라는 색깔이 본래부터 없다. 善도 없고 惡도 없다. 善도 아니고, 惡도 아니다.

 

本來知, 根本知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正覺), 無上大道, 宇宙大道이다.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곧 本來知, 根本知이다. 本來知가 眞空妙有法이다. 淸淨法身毘盧遮那佛(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다. 本

來知가 중생의 安息處이다. 休息處이다. 依支處이다. 信仰處이다. 佛供處이다. 祈禱處이다. 화두참구

話頭參究가 미신타파迷信打破이다. 우상타파偶像打破이다. 話頭參究가 천상락天上樂이다. 환희장歡喜

藏이다. 환희장歡喜藏 세계世界이다.

 

本來知는 천겁만겁을 간다 해도 항상 태초太初이다. 항상 밝고 밝은 太初이다. 根本知는 천만억겁을 

지난다 해도 神秘중의 신비이고 極秘중의 극비이다. 억겁을 지난다 해도 禮敬과 지극한 신심信心은

항상 한결같아야 한다. 일체중생 모두가 本來知 대자비의 품안으로 가고 가야함을 사문은 원고마다 

강조하지 않은 데가 없다. 本來知 자성참구自性參究 화두일과話頭日課는 세세생생 계속되어야 한다.

 

本來知를 참구參究하는 화두話頭 없이 산다면 江속의 물고기들이 강물을 못 만나고 육지 흙바닥에서 

팔딱팔딱 아등바등 숨 가쁘게 뛰고 뛰면서 사는 것과 같다 하겠다. 물고기들이 깊은 강을 만나면 마음

껏 놀고 마음껏 헤엄치고 그들 마음껏 自由自在하게 놀고 놀듯이 求道者들은 本來知가 무언지 무언지

알고자 깨닫고자 證得하고자 大發心하여 한결같은 화두참구를 일상의  일과와 같이 하고, 물고기들이 

깊은 江물을 만남과 같이 大自由 즉, 大解脫, 독거유희락獨居遊戱樂이 눈앞에 꼭 성취되는 그날까지

불퇴전의 보리심자 (不退戰의 菩提心者)가 됩시다.

 

 金井山人 佛國正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