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이 깨어있음
본성은 죽은 관념이 아니어서 인간의 分別하는 生覺으로는 그릴 수 없습니다. 본성은 생각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기에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지만 본성은 늘 살아있어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든지 잘 생각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본성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지만 선도
잘 드러내고 악도 잘 드러냅니다.
본성 자체는 모양도 없고 흔적도 없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어서 언제 어디서나 온갖 모양과 흔적을
다 현시하여 드러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본성은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니고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계
가 있다는 생각과 한계가 없다는 생각을 자유자재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본성은 이 세상의 모습으로 드러
나는 낱낱의 현상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현상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본성에 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보았지만 그 내용 속에 빠져 본성을 찾으려 한다면 본성과는 영영
멀어집니다. 본성에 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있을 때, 변함없이 살아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을 마실
때 물맛이 시원한 줄을 아는 깨어있음은 무엇입니까? 커피를 마실 때 커피향이 쓱 살아 꿈틀대는 이 자리
는 무엇입니까? 고요한 가운데 낮은 소음이 들린다면, 이 허공중에 생생히 깨어서 작은 소음을 또렷이 드
러내는 이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이 순간 이런저런 생각이 오갈 때 그 생각의 파노라마는 다양하지만, 끊
임없이 약동하는 생각의 활동은 무엇이 하는 것입니까? 지금 이렇게 손가락을 까딱거릴 때 무엇인지 모르
지만 생생하게 살아서 이렇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이것은 무엇입니까?
온 세상이 이 살아있음 하나로 충만합니다. 온 세상이 이 깨어있음으로 항상 타오르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이 빛 하나로 어둠과 밝음을 몽땅 비추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있는 그대로 이 하나로 고요하고 고요합니다.
본성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직접 느낄 일이지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다시 分別하는 生覺을 일으켜
본성에 관한 이런저런 상상이나 이미지에 빠져든다면 그 사람은 구제할 수가 없습니다. 물을 직접 맛보듯이
본성을 직접 느낄 뿐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이 깨어있음을 생생히 만끽할 뿐입니다.
- 릴라님- 가져온 곳, 다음 카페 : 무진장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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