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설]
'원세훈 국정원' 선거개입, 이렇게 노골적이었다니
입력 2017.07.24. 20:46
이명박 정권의 원세훈 전 국정원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선거 · 정치에 개입하고 불법으로 국정에 관여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검찰이 2017년 2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 제출한 ‘원세훈 국정원장 주재 국정원 전부서장 회의’ 녹취록을 보면, 입을 다물기가 어렵다. 4대강 여론조작과 보수단체 지원을 넘어 언론공작과 개별기업 노조 개입 등 국정원의 전방위적 불법·탈법 행태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녹취록을 통해서 국정원 심리전단의 2012년 대선 ‘댓글공작’이 일부 직원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국정원장의 구체적 지시에 따라 실행된 선거개입이란 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은 “심리전단 같은 데서도 그런 것 가지고 심리전도 하고 그렇게 해서 좌파들이 국정을 맡은 것을 차단시키는…”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북 심리전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에 대한 심리전이 꽤 중요해요”라고 강조했다. 심리전단이란 부서를 콕 찍어 북한보다는 주로 우리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에 나설 것을 주문한 셈이다. 각 부서장과 전국 지부장까지 참석한 공식 회의 자리에서 국정원장이 이런 지시를 내렸다니 그 배짱이 놀랍기만 하다.
총선·지방선거 등의 후보 결정 과정에 국정원이 구체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을 내비치는 대목도 나온다. 원세훈 원장은 “교육감 선거도 분열 때문에 졌잖아요”라며 일선 지부장들에게 ‘현장 교통정리’를 주문했다. 여당의 구청장 후보를 ‘국정원이 다 나서서 (조정)했다’는 과거 사례도 거론했다.
19대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2011년 11월 회의 발언이니, 이런 지시가 실제로 이행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원세훈 원장은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선 “우리 지부에서 후보들 잘 검증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정원이 이렇게 물불 가리지 않고 선거에 개입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녹취록을 보면, 원 원장이 자신을 정보기관 수장이라기보다 대통령의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발언이 많다. 대법원은 ‘증거능력 부족’을 이유로 원 원장의 선거개입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보다 명확한 증거가 또 어디 있을지 모르겠다. 원세훈 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정권 차원에서 기획되고 실행된 것은 아닌지 철저히 밝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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