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이미 완전한 삶
[아쉬타바크라 기타 강설] 18-26
“살아있는 상태에서 해탈한(자유을 얻은) 사람은
왜 그렇게 행위하는지 말할 수 없으면서 행위는 하지만 바보는 아니다.
그는 이 세상 속에서 살더라도 행복하다.”
【강설】
삶은 본래 이미 완전하게 해탈해(자유롭게 해방되어) 있습니다.
삶은 본래 이미 완전하게 어느 것 어디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삶은 본래 변함이 없는데 끝이 없이 변화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삶은 언제나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이렇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나’의 삶이라고 말하면 그 말이 삶에 대한 구속입니다.
‘나’라는 것은 삶의 일부이지 삶의 소유주가 아닙니다.
‘나’라는 것은 삶이라는 바다 위에 드러난 한 방울 물거품으로 바다에서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것이 바다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착각에서 ‘나’만의 삶이 있다는 믿음이 어리석음입니다.
생각 마음, 말, 행동, 즉 행위란 삶의 표현 방식입니다.
본래 행위가 없는 삶에서 행위가 나타났다 다시 그 삶 속으로 사라집니다.
수많은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본래 사람에게는 아무런 행위도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 즉 실재(實在)는 삶, 존재, 이것 뿐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행위들로 나타나는 삶, 존재에 어떤 이유나 목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어리석음입니다.
모든 행위들이 드러나는 삶, 존재 그대로 삶, 존재 그것의 이유고 목적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드러나는 삶, 존재 여기엔 어떤 분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적이나 이유를 따지는 그런 생각이나 마음이 나라는 것을 삶에서 분리시킴니다.
따라서 삶의 목적이나 이유를 따져서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삶과 하나 된 사람, 삶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마치
바보가 하는 생각, 말, 행동 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진실로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모습 없는 모습을 보고, 소리 없는 소리를 듣고, 느낌 없는 느낌을 느끼고,
앎이 없는 앎을 진실로 아는 사람은 단 한미디 말도 할 말이 없습니다.
더 이상 인위적인 행복을 추구하지 않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깃듭니다.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아닌 다른 때, 다른 곳, 다른 것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사라지는 때가 되어서야 점차적으로 서서히 본래 이미 완전하게 있는 것, 삶, 존재, 즉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전이 참나, 본래의 나, 모든 존재의 근본성품임을
알아차리기 시작하게 됩니다.
- 몽지님-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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