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무엇인가 -안도현-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때, 저기 저 고갯마루까지만 오르면 내리막길도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보자고, 자기 자신을 달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페달을 밟는
발목에 한 번 더 힘을 주는것
읽어도 읽어도 읽어야 할 책이 쌓이는 것
오래 전에 받은 편지에 답장은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또 편지가 오지 않았나 궁금해 우편함을 열어보는 것
무심코 손에 들고 온 섬진강 작은 돌멩이 하나한테 용서를 빌며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살짝 가져다 놓는 것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는 향기가 없으나 사과를 칼로 깎을 때 비로소 사과의 진한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
드는 것 처럼, 텃밭에 심어놓은 마늘은 매운 냄새를 풍기지 않으나 도마에 놓고 다질 때 그 매운 냄새를
퍼뜨리고야 마는 것 처럼 누구든 죽음을 목전에 두면 지울 수 없는 향기와 냄새를 남긴다는 사실을 문득
알게 되는 것
그리하여 나의 맨 마지막 향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 해 보는 것
날마다 물을 주고 보살피며 들여다보던 나무가 꽃을 화들짝 피워 올렸을 때,
마치 내가 꽃을 피운 것 처럼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
온몸이 꼬이고 꼬인 뒤에 제 집 처마에다 등꽃을 내다 거는 등나무를 보며, 그대와 나의 관계도 꼬이고
꼬인 뒤에라야 저렇듯 차랑차랑하게 꽃을 피울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
꼬리 한 쪽을 떼어주고도 나뒹굴지 않는 도마뱀과 집게발을 잃고도 울지 않고 제 구멍속으로 들어가는
바닷게를 보며 언젠가 새로 돋아날 희망의 새 살을 떠올리는 것
지푸라기에 닿았다 하면 금새 물처럼 흐물흐물 해 지는 해삼을 보며,
나는 누구에게 지푸라기였고 해삼이었는지 반성 해 보는 것
넥타이 하나 제대로 맬 줄 몰라 열 번 스무 번도 넘게 풀었다가 다시 매면서
아내에게 수 없이 눈총을 받으면서도 넥타이를 맬 때마다 번번히 쩔쩔 매는 것
식당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고도 음식을 날라주는 아주머니한테 택시비 하시라고 오천원을 줘야 할지
만원을 줘야 할지 망설이다가 한 번도 은근하고 멋있게 주지 못해 그 식당에 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
술값 계산을 하고 나서도 소주 한 병 값을 더 내지 않았나 싶어
이리저리 머리라는 계산기로 숫자를 두드려 보는 것
공중전화 부스에 말끔한 전화카드 한 장 놓여있으면 혹시라도
새 카드인가 싶어 카드 투입구에 속는 셈 치고 한 번 밀어넣어 보는 것
평생 시내버스만 타던 사람은 택시 기본요금이 얼만지 몰라 택시 한 번 타기가 머뭇거려지고,
평생 택시만 타던 사람은 시내버스 요금이 얼만지 몰라서 시내버스 한 번 타기가 머뭇거려 지는 것
초등학교 앞을 지나갈 때 운동장에서 체육복을 입고 정구공처럼 통통 튀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보며 가슴이 통통 튀는 것
쓰레기 봉투로도 써먹지 못하고 시원한 물 한 동이 퍼담을 수 없는 몸뚱이
하나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개고기를 뜯는 것
물구나무를 서야 바로 보이는 세상이 있는 것 처럼 꺼꾸로 놓았을 때 진실이 보이기도 하는 것
내가 물 한 바가지를 쓰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그 한 바가지의 물을 쓰지 못하게 됨을 아는 것
여름날 저녁에 온 식구가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인 뒤에
첫 눈이 오는 겨울 저녁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사는 것
겨울 밤, 가끔씩 서로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것
가끔씩은 서로 싸리나무 회초리가 되어 차르륵 차르륵 소리가 나도록 때리기도 하는 것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없으나
늘 떠나고 싶어지고 늘 머물고 싶어지는 것
바깥으론 따뜻하고 부드럽고, 안으로는 차갑고 단단한 것
단칸방에 살다가, 12평 아파트에 살다가, 24평에 살다가, 32평에 살다가, 39평에 살다가,
45평에 살다가, 51평에 살다가, 63평에 살다가, 82평에 살다가, 문득 단칸방을 그리워 하다가...
결국엔 한 평도 채 못되는 무덤 속으로 들어가 눕는 것
도대체 이 같은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물어도 물어도 알 수 없어서
자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되묻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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