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춤을 돌이켜 또렷이 비춤을 볼 수 있다면, 탐냄 성냄 어리석음의 본성이 곧 불성이고,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 밖에 다시 다른 불성은 없다.
✔ 탐냄 성냄 어리석음 삼독(貪瞋癡 三毒心)의 본성(本性)이 곧 불성(佛性)이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로 번뇌가 있는 곳에 곧 깨달음이 있다. 색즉시공(色卽是空), 색이 있는 곳에 곧 공이 있다.
그러므로 탐진치 삼독심을 버리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삼독심의 본체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기만 하라. 삼독심과 싸워 이기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이 삼독심과의 싸움만 더해 간다. 삼독심 역시 내 마음이기 때문에 내가 나를 이길 수가 없다. 싸우면 싸울수록 지치기만 할 뿐!
탐진치 삼독심은 바로 우리 중생들이 늘 일으키고 사용하는중생심이다. 중생들의 번뇌로 오염된 마음이 곧 탐진치 삼독심이다. 중생들은 이 삼독심을 없애버려야지만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다고 믿기 때문에, 너도나도 탐진치 삼독심을 끊기 위해 애쓴다.
탐진치 삼독심이 없어져야지만 비로소 깨끗하고 청정한 해탈, 열반이라는 새롭고 놀라운 본성, 불성, 깨달음의 세계가 비로소 건립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탐진치 삼독심을 없애야지만 불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탐진치 삼독심이라는 번뇌가 곧 깨달음이며 불성이다. 삼독을 버리고 불성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바다와 파도의 비유가 이 공부에 적절하게 많이 쓰인다. 우리의 늘 쓰고 있는 이 탐진치 삼독의 마음은 곧 파도이고, 불성과 본성은 바다와 같다. 바다 위에서 끊임없이 파도가 치지만, 그 파도는 똑같이 바다다. 파도를 없애야지만 바다가 되는 것이 아니라, 파도 그대로가 바다다.
마찬가지로 번뇌를 없애야지만 깨달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번뇌의 본성이 곧 깨달음이다. 번뇌 또한 본성의 바다 위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생사법이라는 일체 모든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모든 존재는 전부 이처럼 본성의 바다, 자성의 바다 위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허망한 파도와도 같다.
그러니 파도를 없앨 필요가 없다. 파도가 곧 바다임을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고, 견성(見性)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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