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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 중 도성제 – 불교에 수행 방법이 많은 이유

사성제 중 도성제  –  불교에 수행 방법이 많은 이유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시키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 도성제(道聖諦)다. 도성제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성스러운 길로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도성제는 십이연기의 환멸문의 순관을 통해 확인된다. 도성제는 ‘중도(中道)’ 혹은 팔정도(八正道)로 알려져 있다. 양 극단을 떠난 조화로운 실천 수행법인 중도의 구현은 구체적으로 팔정도로 구현된다. 또한 팔정도는 계정혜(戒定慧/ 계율 선정 지혜) 삼학(三學)의 실천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불교를 공부하다보면 불교의 실천수행 방법이 너무 많고, 복잡하며, 그래서 도대체 어떤 방법이 핵심인지를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어떤 경전에서는 무명을 타파하는 것이 불교의 요체라고 하고, 또 다른 경전에서는 집착만 버리면 열반에 이..

가난한 이유

가난한 이유  우리가 가난한 가장 큰 문제는 ‘나는 부족하다’고 하는 결핍된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가난과 부자라는 단순한 이원론을 넘어, 능력의 있고 없음, 지혜의 있고 없음, 잘나고 못남, 중생과 부처 등의 수많은 이원론적인 차별심과도 맞닿아 있다. ‘나는 부족하다’는 생각은 곧 ‘나는 능력이 없다’, ‘나는 못났다’, ‘나는 실패자다’, ‘나는 어리석은 중생이다’라는 생각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완전성과 무한한 지혜, 무한한 자비와 사랑, 풍요로움과 그 모든 덕목을 완전하게 갖춘 존재라고 했다. 우리의 본질은 본래 이미 깨달은 부처이지 중생이 아니다. 우리의 본질은 부족이 아니며 풍요이고, 증오가 아닌 사랑이며, 무명이 아닌 지혜이다. 완전성을 갖춘 본래불인 우리를 어리석고 ..

카테고리 없음 2024.09.13

4성제 중 멸성제 - 괴로움의 소멸

4성제 중 멸성제  -  괴로움의 소멸 멸(滅)은  ‘니르바나’의 음역으로, ‘번뇌로 타는 불이 훅 꺼진 상태’로 흔희 회자되는 ‘열반(涅槃)’이다. 다시 말해, 괴로움의 원인인 온갖 번뇌로 타는 불길이 훅 꺼진 상태, 즉, 고(苦/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다. 집성제는, 십이연기의 유전문을 통해 괴로움의 원인을 고찰해 십이지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 무명(無明)이라고 관찰한 것이다. 그렇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멸성제는 어떻게 하면 될까? 불교는 현상 세계가 ‘괴롭다’라고 하여, 괴로움의 원인을 밝히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지는 않는다. 괴로움의 원인을 밝힌 것은, 그 원인을 제거하여 괴로움이 없는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작업일 뿐이다. 집성제인 괴로움의 원인을 십이연기의..

“마음이 아플 때, 도움받으세요”

[기고] “마음이 아플 때  도움받으세요”입력 2024. 9. 13. 05:05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 물질주의, 사회적 단절과 고립 등의 영향으로 국민 전 연령층에서 심리적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입시, 취업, 승진 등 경쟁이 심한 사회인 데다가 최근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비교문화가 더 심화되고 있다. 또 예기치 못한 사회적 참사와 자연재해로 인해 국민의 마음 건강이 더욱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은 우울, 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대화 기반의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를 최대 8회까지 제공한다.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은 심리상담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게시판 2024.09.13

생각을 믿지 말라

생각을 믿지 말라 몸이 먼저 행동하는 신업과 입으로 내뱉은 구업은 빠른 반면에 생각 즉 의업은 어떨까? ‘내가 도와야지’라는 생각만으로는 쉽게 저질러 돕지 않게 된다. 사실 생각은 진리의 편이 아니다. 생각은 늘 아상(我相)의 편이며 아상과 아집에 기초해서 일어날 뿐이다. 따라서 생각은 항상 이기적인 마음을 돕는 쪽으로 일어나고, ‘이 생각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안 될까’를 가장 먼저 따지게 되어 있다. 생각은 항상 우리를 비본질적인 아상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몰아간다. 생각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나’를 도와야 하는 것이다. 생각은 이타적이기 보다는 이기적인 쪽으로 늘 방향을 틀 수 밖에 없는 것이 생각의 특성이다. 그렇기에 생각의 노예가 되면 아상을 강화시키는 수행자답지 못한 행동, 욕심과 이기와 집..

집성제 (3) - 괴로움의 2가지 핵심 원인 무명과 애욕

집성제 (3)  -  괴로움의 2가지 핵심 원인 무명과 애욕 집(集)은 ‘집기(集起)’ 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집기(集起)는 ‘모여서 일어난다’ 는 뜻으로, ‘연기’라는 말과 매우 가까운 개념이다. 즉, 집성제는 괴로움의 원인이 어느 특정한 한 가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기적으로 여러 가지 원인들이 모여서 일어난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기에 십이연기의 12가지 모든 지분들이 모여서 결국 노병사라는 괴로움이 연기한 것이다. 이처럼 십이연기를 통해 괴로움의 원인을 살펴보았더니 그 근본 원인은 무명(無明)임을 아셨다. 그러나 무명이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나머지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모두가 생로병사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몸 -> 입 -> 생각의 순서대로 실천하라

몸 -> 입 -> 생각의 순서대로 실천하라 나는 본래 풍요로운 존재인데 ‘나는 가난하다, 결핍되어 있다, 부족하다’는 환상을 가지고 살면서 지금까지 결핍과 가난을 창조해온 것이다. 이 생존경쟁에서 이겨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산 것이다. 문제는 환상, 착각인 이 생각을 바꾸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내가 본래 풍요로운 존재였다?’ 이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반문한다. “태어날 때부터 돈도 없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돈을 많이 벌 수 없는데, 내가 어떻게 풍요롭다는 말입니까? 현실이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을 해요?” 이처럼 자신이 본래 부처이며, 이미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존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구의(身口意/몸 ..

집성제(2) - 12가지 괴로움의 원인

집성제(2)  -  12가지 괴로움의 원인 불교는 무엇을 괴로움이라고 하나? 모든 괴로움을 생노병사 우비고뇌(生老病死 憂悲苦惱)라고 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 슬픔, 고통, 번민으로, 생노병사 우비고뇌는 인간의 모든 괴로움을 포괄하여 설명하는 술어다. 이것을 줄여 노사(老死)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는 생노병사와 우비고뇌로 대표되는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사유해 보았더니, 당연히 그 원인은 생(生)이다. 사실 중생에게는 태어났다는 허망한 착각이 있지만, 진리에서는 태어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그러나 인간은 몸과 마음 즉 오온이 나라는 허망한 착각을 진실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몸이 태어날 때 나도 태어나고 몸이 죽을 때 나도 죽는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지금부터는 덤이다

[법륜스님 - 지금부터는 덤이다]   나이가 들면 체력이 떨어져서 여기저기가 아프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몸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죽음이 두려워져요.   몸이나 죽음에 대해 미리 불안해하고 걱정하면 스트레스로 없던 병도 생깁니다. 이럴 때는 몸에 집착하는 나를 돌아보는 게 중요합니다. ‘영원할 줄 알았더니 허물어지는구나!’ 육신에 대한 집착과 오래 살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지금 살아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지금부터는 덤이다!’라고 생각해 보세요.   인생이란 오래 살고 싶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오래 살았다고 성공한 것도 아닙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이 중요합니다.   오래 살겠다는 집착을 놓으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우리는 본래 풍요롭다는 완전성의 이해

우리는 본래 풍요롭다는 완전성의 이해 모든 수행자들의 공통적인 원(願)은 구류중생(九類衆生), 즉 일체 생명 있는 모든 존재를 깨달음으로 이끌어 완전한 행복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부처의 완전한 지혜와 자비가 우리에게도 동등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 불교의 본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가 어리석다고 착각하면서 완전성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본래 부처로 다시 되돌아가자는 것, 그것이 귀의(歸依)다. 절에 갈 때마다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삼배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본래 부처요, 법이요, 불법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수행자라는 것이다. 내가 바로 부처라면 무엇이 바뀔까. 부처니까 무한한 풍요로움과 지혜가 나에게 갖춰져있다. 따라서 밖에서 지혜와 물질적인 풍요를 구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