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강 한반도대운하의 대재앙

[한반도 대운하의 악몽] 산은 강을 안 넘고 강은 산막을 안 가르는데...

장백산-1 2008. 4. 2. 09:43
산은 강을 안 넘고 강은 산맥을 안 가르는데 등록자 :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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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님 글방] 한반도 대운하의 악몽

‘젖줄’인 남한강이 뜬금없이 남해로 빠지면?
내륙 가로지르는 뱃놀이터 구상 ‘환각 자해’

 

 
 제가 살고 있는 산위의 마을은 단양 읍내에서 영월 쪽으로 20분 정도 가야 하는데 줄곧 남한강변을 따라 가게 됩니다. 경치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협곡의 산과 강, 억새 강변, 2차선 국도의 가로수, 그리고 어머니의 정갈한 가르마처럼 느껴지는 산촌의 밭두렁들……. 계절마다 뚜렷한 색감으로 변신합니다.
 아주 작은 시골 면소재지 가곡면은 강변을 따라 줄줄이 면사무소, 학교, 농협, 우체국, 경찰지구대도 있고 물론 구멍가게와 한중식을 겸한 식당도 있습니다.

기암괴석 절벽이 동양화 병풍처럼…산하의 전설 품고 묵묵히 흘러

 며칠 전 면사무소에서 일을 보고 나오다가 마당에 잠시 서서 눈을 드니 그날 따라 바로 앞에 펼쳐진 기암괴석의 절벽이 마치 동양화 병풍처럼 느껴졌습니다. 추운 날씨인데도 한참이나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절벽 아래 한켠을 하얀 눈으로 얼어 붙인 채 더욱 푸르게 흐르고 있는 강을 내려다봤습니다. 남한강은 온 백두대간 산하의 얽힌 전설과 이제는 신화가 되어버린 역사를 가슴에 묻어두듯이 묵묵히 흘러갑니다. 

 멀리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아오라지를 거쳐 오던 강이 오대산에서 출발한 물을 만나 동강을 이루며 정선과 영월을 지납니다. 곧 평창강 주천강의 합수가 서강인데, 동강 서강이 하나 되어 남한강이 시작됩니다. 
 단양팔경의 제1경인 도담삼봉을 쓰다듬으며 흐르던 남한강은 충주를 지나 섬강을 껴안고 여주 양평을 거쳐 팔당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교합하니 두 물이 만났다고 해서 두물머리(양수리)이고 여기서부터 서울의 젖줄 한강으로 불립니다.

 한강이 황해의 품으로 귀의하기까지 이름 불려지기는 여럿이지만 하나인 물이기에 그 모든 여정과 역사를 안고 있는 강심은 경건합니다. 북한강도 역시 금강산 골짜기로부터 먼먼 여정의 지리와 궤적을 안고 흘러왔겠지요. 낙동강 칠백리는 말할 것 없고 금강 섬진강 영산강 임진강 예성강 또한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라 했거늘…댐 지은 지 20년만에 선착장 폐지
 
 그런데,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마음이 답답하더니 가슴마저 웅크려집니다.
 금년 겨울이 유난히 추운 탓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반도 대운하’란 괴기스런 흉계 때문입니다. 기쁨과 희망의 춤을 추며 흐르는 남한강이 서해가 아니라 뜬금없이 남해로 빠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대운하! 어머니의 젖가슴을 폭약과 굴삭기로 찍어 내리면서 화려한 폭죽 쑈의 기공식 버튼을 누르며 성공시대를 건배하는 이들의 그림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정치인들을 국민의 손으로 선출했던 죄책감 때문이며 그 당당한 민주주의가 무서워지기 때문입니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라 했거니와, 그래서 산은 강을 넘지 않고 강은 산맥을 가르지 않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해는 동쪽에서 뜨는 것과 같은 창조의 질서 그것입니다. 그 질서 안에 세계 인류의 문명과 문화와 역사가 점철되었고 명멸했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성현들은 한결같이 대자연의 이법을 경외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인간의 오만이 자연의 법을 넘어서려 할 때는 어김없는 재앙으로 응징되었음을 창세기 에덴동산과 바벨탑의 이야기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연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며 걸어 다니는 대지의 솜털일 뿐입니다. 장자는 “숲에 사는 새는 온 숲이 제 세상인양 노닐지만 정작 그에게는 둥지 틀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다” 했는데 왜 우리는 모든 환경이 인간의 의지 앞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갯벌이건 강산이건 가만 두지 못할까요? 탐욕입니다. 

 남한강은 태백에서부터 정선 아리랑을 부르며 서울 마포나루까지 운반하던 아오라지 배꾼들이 뗏목을 타고 지나가던 길이었지만 그것은 100년 전 이야기입니다. 충주댐 건설 초기만 해도 충주호 유람선이 단양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20년도 못되어 단양 선착장은 폐쇄되었습니다. 강수량이 줄어든 것입니다. 향후 20년은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에덴동산 선악과도 식품일 뿐이고 바벨탑은 건축공학 문제일 뿐이다?
 
 저는 대운하 계획을 반대하지만 솔직히 물류가 어떻고 경제성장과 국민소득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저의 생각만이 반드시 옳은 것이라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대운하 못 만들면 국가 경제가 붕괴되고 성장이 뒷걸음 치고 토목건설업이 모두 도산하고 대운하 예정지 주변 농민들이 파산된다고 한다면 고집을 피우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대운하 없어도 아무 탈 없을 것을 두고 고집 피우는 것은, 가정에서도 동네서도 국가에서도 안 될 일이지요. 여러 사람 괴롭히고 소탐대실하는 어리석음이지요. 

 청계천 복개를 뜯고 전력 모터로 물을 퍼다 흘려보내며 포석정 놀이터 같은 거 만들어 놓았더니 모두들 좋아했지요. 내륙에 장대한 뱃놀이 터 만들어 보겠다는 것도 이런 환각 상태의 끔찍한 자해 행위일 것입니다.

 이런 발상은  ‘에덴 동산의 선악과도 식품일 뿐이고 바벨탑은 건축 공학의 문제일 뿐이니 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고 생각하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입니다. 결심만 하면 가능할지라도 결코 해서는 안 될 일도 있습니다. 
 대통령은 5년으로 물러날 것이지만 그가 환각에 취해 긁어버린 상처는 500년의 재앙이 되어 후손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경제가 죽어서 살리겠다고 하면서 국민의 에너지를 대운하 반대에 낭비하게 한다면 안될 말입니다. 화평 무사한 5년이 되기를 원합니다.

(2008. 2. 13 박기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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