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민주주의

[18년 반골 삼성맨의 경고] " 미디어법 통괴되면..."

장백산-1 2009. 6. 12. 11:59

'18년 반골 삼성맨'의 경고 "미디어법 통과되면…"

[인터뷰] 김병윤 두레스경영연구소 대표

기사입력 2009-06-12 오전 8: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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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서 18년 동안 일하다 부장으로 퇴직한 김병윤 씨는 지난 9일 뉴스를 보다 문득 오싹했다. '아이 낳기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 때문이다. 그 역시 지나치게 낮은 출산율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말에 왜 놀랐을까. 그가 툭 내뱉은 말에 답이 있다.

"결국 비정규직 노예들만 늘어날 텐데."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기득권의 벽을 뚫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의 이런 생각이 견고해진 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날 열린 삼성 재판이다. 대중의 시선이 영결식에 쏠려 있는 사이,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는 대법원을 보며 그는 평소 생각이 굳어드는 느낌을 받았다. 재벌과 법조계 고위층, 보수 언론이 한통속이라는 생각이다.

"최근 박연차 게이트로 논란이 된 태광실업은 연매출이 고작 5000억 원 규모에 불과하다. 그런데 검찰은 이 회사가 수백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회사가 권력층을 상대로 전 방위 로비를 했다고 밝혔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그렇다면 재벌은'이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재벌과 정치권의 유착은 오래 전부터 공공연했다. 연매출 5000억 원 규모 기업이 수백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권에 로비를 했다면, 재벌이 저지른 비리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큰 규모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법부는 이런 부분을 건드리지 않는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가혹하지만, 재벌에 대해서는 반대다. 소수 재벌, 그리고 그들과 연줄이 닿는 이들을 제외한 다수 시민은 이제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어졌다. 부당한 특권에 대해 항의할 수 없다면 그게 노예가 아니고 무엇인가."


"삼성 비판하는 책은 광고조차 낼 수 없었다"

사실, 흔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사연이 있다. 삼성전자에서 나와 미국 유학을 다녀온 그는 지난 2007년 7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책을 냈다. 삼성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벌 개혁에 관한 생각을 담아낸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내는 과정에서 잊기 힘든 경험을 했다. 출간을 앞둔 무렵, 그가 대표이사로 있는 두레스경영연구소를 찾는 손님이 갑자기 늘었다. 주로 그의 고교 선·후배들이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책을 내면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동문들 앞길 막으려 하느냐"….

결국 책은 냈다. 그래도 문제는 남았다. 책 광고를 할 수 없었다. 언론사에 돈만 내면 할 수 있는 게 광고지만, 삼성에 비판적인 책은 예외였다. 한 경제지는 광고 지면을 확정하고 광고비까지 줬는데 광고를 싣지 않았다. 결국 광고비를 되돌려 받았다. 다른 일간지는 컬러 광고와 흑백 광고를 각각 한 건씩 내기로 했는데, 컬러 광고 한 건으로 그쳤다. 광고비를 더 줄 테니 광고를 계속 내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일간지는 아예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삼성에서 광고를 싣지 말라고 해서 어쩔 수 없다면서 광고비를 환불해주겠다고 했다.

재벌개혁만으로는 부족한 이유

언론의 입을 다물게 하는 삼성의 힘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돈 내고 내가 광고하겠다는 것"까지 막을 수 있는 줄은 몰랐었다. 그리고 더 큰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삼성은 내부 고발까지 잠재우는 힘을 발휘했다. 같은 해 10월,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통해 삼성 비리를 세상에 알렸지만 결국 유야무야됐다. 삼성 비리를 수사하겠다던 특검은 비자금 조성 등 주요 의혹 대부분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법원은 기존 판례까지 무시하며 면죄부를 줬다. 지난달 29일 대법원 판결은 그 정점이다.

보통사람들은 근처에만 가도 주눅이 드는 법원을 제멋대로 요리하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이런 궁리 끝에 나온 책이 <대한민국 판도라 상자를 열다>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낼 무렵, 그는 재벌 개혁만 이뤄지면 사회가 바로잡힐 줄 알았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영향력이 센 보수 언론은 이미 재벌과 한 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 개혁만 외쳐봐야 아무런 반향이 없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은 재벌에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이끈다. 그렇게 되면, 역시 재벌과 한통속인 법조계 상층부가 굳이 여론을 거스를 이유가 없다. 반발 여론도 있지만, 이런 목소리는 주요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다. 법원이 별 망설임 없이 재벌에 치우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미디어법을 개정해서 재벌이 언론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큰일 났구나' 싶었다. 언론이 노골적으로 재벌의 시녀 노릇을 하게 되리라는 불안감이다. <대한민국 판도라 상자를 열다> 출간 일정을 5월 말에 맞춘 것도 그래서다. 미디어법 개정안이 6월 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기 때문. 10일 오전, 서울 서초동에 있는 두레스 경영연구소에서 그와 나눈 이야기를 간추렸다.

"상대가 삼성이 아니었더라도 그랬을까?"

▲ 김병윤 두레스경영연구소 대표. ⓒ프레시안
프레시안 :
지난달 29일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주요 언론은 '삼성 무죄론'을 기정사실로 못 박는 분위기다. 삼성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발행 사건은 대법원에서 유죄로 판명이 났다는 사실은 언론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김병윤 : 삼성에버랜드 사건, SDS 사건 모두 비상장 회사 주식을 이용해 이익을 취한 사례다. 꼭 삼성이 아니더라도, 재벌 계열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비상장 회사 내부 정보를 알고 있으면, 얼마든지 폭리를 취할 수 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00년 초, 내가
파견돼 있던 삼성인력개발원에서 분사한 인터넷 교육업체 주식을 배정받았다. 당시 300만 원어치를 받았는데, 나중에 3억 6000만 원이 됐다. 평범한 직원인 내가 이런 이익을 누렸는데, 총수 일가는 어떻겠는가. 특정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주가를 높이는 게 가능하다. 삼성에버랜드 사건에서처럼 총수의 통제를 받는 계열사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지분을 헐값에 넘기는 경우라면, 총수는 원하는 만큼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번 판결로 이렇게 얻은 이익이 합법화됐다.

삼성에버랜드 CB(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을 고발한 법학 교수들은 이 회사의 전·현직 사장들만 고발한 게 아니었다. 삼성에버랜드 대표이사·이사·감사
전원, 주주 계열사 대표이사 전원, 그리고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이 고발 대상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삼성에버랜드 CB를 배정받자마자 실권해서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넘겼던 주주들은 조사하지 않았다. 이들과 이건희 회장을 조사했어야만 했다. 정상적인 거래라면, 왜 막대한 이익이 예상되는 CB를 스스로 실권하겠는가.

하지만, 검찰은 이런 당연한 의문을 외면했다. 상대가 삼성이 아니었더라고 그랬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삼성 과장 시절, 특허료 깎으려고 판매량 속였다"

프레시안 : 삼성 비리에 대한 면죄부 판결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 애초 특검 수사 단계에서부터 단추가 잘못 채워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비자금 조성 문제다. 국민의 관심사였던 불법 로비 문제도 결국 비자금과 관계가 있다. 비자금이 아닌 공식적인 자금으로 로비를 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또, 비자금 문제는 회계 조작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공식 회계에 비자금이 반영돼 있을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특검은 비자금 문제를 덮어버렸다.

김병윤 : 삼성에서 실무자였던 나는 비자금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생각나는 일들은 있다.

내가 삼성전자에서 비디오 1과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어느 날 비디오 관련 특허를 갖고 있는 업체에서 삼성이 판매한 비디오 물량을 확인하러 왔다. 당시 삼성이 판매한 물량은 400만대 가량이었다. 언론에도 이렇게 소개됐다. 그런데 특허를 갖고 있는 업체에는 200만대를 팔았다고
통보했다. 특허료 역시 200만대에 맞춰서 지불했다. 삼성전자는 200만대에 해당하는 특허료를 떼어먹은 셈이다. 이 일 때문에 생긴 분쟁을 해결하느라 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언론 보도를 보고 항의하러 온 업체 관계자에게 나는 "경쟁사를 의식해서 일부러 판매량을 부풀렸다"라고 말했다. "해외 수출 물량 가운데 반제품이 있는데, 이것을 완제품인 양 포장해서 수출 물량을 부풀렸다"는 논리였다. 물론,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항의하던 업체 관계자는 속아 넘어갔고, 분쟁은 간신히 해결됐다.

그런데 이렇게 얻은 부당이익은 어디로 흘러들어갔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나도 답을 모른다. 하지만, 떳떳한 돈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재벌 총수 친위조직 임원, 직급 낮추자"

프레시안 : 비자금 조성 등 삼성 관련 각종 비리 의혹에는 늘 구조본이 중심에 놓였다. 비서실, 구조조정본부(구조본), 전략기획실 등으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역할은 그대로였다. 지난해 특검 수사를 계기로, 전략기획실이 해체됐지만 그 기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병윤 : 삼성과 같은 구조에서 전략기획실은 해체될 수 없다. 지금도 삼성전자 등 계열사 내부에 같은 역할을 하는 기구가 마련돼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구조본, 전략기획실 등이 총수 일가를 위해 계열사를 통제해 왔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법을 어긴 일도 많다. 그리고 이런 사례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전략기획실과 같은 조직을 없애는 게 반드시 옳다고 보지는 않는다. 필요한 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권한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삼성 전략기획실장을 맡았던 이학수의 직급은 부회장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략기획실은 권한이 센데, 직급까지 계열사 사장들보다 높다. 계열사가 통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전략기획실 임원들은 늘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이건희 전 회장은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면서 천재를 중시했는데, 엉뚱하게도 이런 논리가 전략기획실 임원들에 대한 파격적인 급여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됐다. 천재가 아닌 사람들이 천재 대접을 받은 셈이다. 전략기획실 임원들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이런 이들에게 천재 대접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전략기획실과 같은 성격의 조직에 대한 거품을 빼야 한다.

전략기획실과 같은 조직의 수장은 전무급 정도로 낮추는 게 옳다고 본다. 계열사 사장보다 전략기획실이 위에 있는 구조를 깨야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계열사에 대한 부당한 통제나 간섭도 줄어들리라고 본다. 또, 비자금 조성 등 비리에 계열사를 동원하는 일도 줄어들리라고 본다.

"삼성 등기임원 성과급은 공식적인 비자금"

프레시안 : 임원들에게 지급되는 급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고위 임원들이 받는 높은 급여 가운데 상당 부분은 비자금이라고 말했었다.

김병윤 : 그건 공식적인 비자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삼성 계열사 등기임원 연봉은 여느 재벌보다 높기로 유명하다. 이 가운데 성과급의 경우는 사실상 임원 몫이 아니라고 보면 된다. 임원이 필요한 곳에 쓰고 남은 돈을 회사에 되돌려주는 게 관례다. 물론, 돈을 쓸 때도 증빙 서류를 갖춰야 한다. 남은 돈을 반납할 때는 별도의 비자금 계좌를 이용한다. 이 경우는 연봉 지급 과정에서 세금을 냈으니, 깨끗한 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거둬들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알 수 없다.

주식 위탁받아 삼성전자 주총꾼으로 나섰던 기억

▲ 김병윤 두레스경영연구소 대표. ⓒ프레시안
프레시안 :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계기로, 삼성이 차명계좌를 방대한 규모로 관리해 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김병윤 : 역시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2006년 10월 사망한 전 삼성화재 회장이 갖고 있던 삼성생명 지분 4.68%가 그해 말 삼성생명 공익재단에 기부됐다. 당시 장외시세로 5300억 원 규모라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거액의 재산이 공식 발표 없이 기부된 것을 놓고 말이 많았다. 삼성생명 지분이 고인의 명의로 차명으로 관리돼 오다가 증여됐다는 의혹이다.

삼성이 차명으로 관리하는 자산의 정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언론과 수사기관이 모두 제 구실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주총꾼으로 나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회사가 내게 준 의결권 주식이 230만 주였다. 당시 13명이 주총꾼으로 나갔는데, 내가 직급이 가장 낮았다. 당시 나는 차장이었고, 13명 가운데는 상무급도 포함됐다.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주식이 주어졌을 게다. 회사가 13명에게 준 의결권 주식을 다 합치면, 적어도 4000만 주는 될 것이다.

이 주식들의 정체가 뭘까. 회사가 차명으로 관리하던 주식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삼성생명 등 다른 계열사가 갖고 있는 주식이라면, 해당 회사 직원이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 굳이 삼성전자 직원을 내세울 이유가 없다.

"이미 혼맥으로 뭉쳐있는 재벌과 보수 언론, 미디어법까지 통과되면…"

프레시안 : 삼성이 대규모 차명계좌를 운용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관련 금융기관은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삼성이 우리사회에서 발휘하는 힘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김병윤 : 삼성만이 문제라고 보면 안 된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보수언론 및 기득권 세력의 총체적인 문제다. <대한민국 판도라 상자를 열다>를 쓰면서, 소름이 끼칠 때가 몇 번 있었다. 그 중 한 번이 재벌 총수 집안의 혼맥(婚脈)을 조사할 때였다. <조선>, <중앙>, <동아> 등 3대 보수 신문 사주일가가 주요 재벌과 모두 사돈 사이였다. 그리고 이명박, 이회창, 전두환, 이한동, 노태우 등 거물 정치인들 역시 이들과 사돈으로 엮여있다. 이런 관계를 도표로 그렸는데, 다 그리고 나니 숨이 막혔다. 재벌과 보수 언론, 그리고 정치권력의 견고한 동맹에 맞서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제치하 친일파에 뿌리를 둔 이들 동맹의 힘이 약해지는 날이 과연 올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동맹의 힘이 세질수록 나머지 다수 시민의 삶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 재벌과 보수언론은 미디어법을 바꿔서 언론을 더 세게 움켜쥐려 한다. 우리 자식들이 이들 동맹의 노예로 살기를 원치 않는다면, 다수 시민이 할 일은 분명한 것 아닌가.

/성현석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