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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의(藥醫)와 침의(鍼醫)는 구분돼야 한다

장백산-1 2010. 1. 8. 01:00

허준은 침을 모른다
박용규의 주역원리 탐구<6> 약의(藥醫)와 침의(鍼醫)는 구분돼야 한다
약의만 침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모순이자 집단의기주의
 
박용규

1. 허준이 약(藥)과 침, 뜸을 모두 잘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완전히 다르다. 허준은 약의(藥醫)였고 침의(鍼醫)는 허임이라는 걸출한 어의(御醫)가 또 있었다. 조선 실록의 기록을 보면,

선조 37년(1604년; 임란 때) 밤에 선조에게 갑작스런 편두통이 발작하여 입시한 의관 허준에게 선조가 묻는다. “침을 맞는 것이 어떻겠는가?” 허준이 아뢴다. “여러 차례 침을 맞는 것이 송구스럽기는 하지만, 증세가 긴급하니 상례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지만 침의들은 항상 반드시 침으로 열기를 해소시켜야 통증이 감소된다고 말합니다. 소신은 침놓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허임도 평소에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낸 뒤에 아시혈(阿是穴;아픈 곳)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잠시 후 병풍이 쳐지고 남영이 혈(穴)자리를 정하고 허임이 침을 놓는다. -중략- 한 달 뒤, 대대적인 포상이 따른다. 어의(御醫) 허준에게는 숙마1필이 하사되고 허임과 남영은 6,7품의 관원에서 당상관으로 파격 승진을 하게 된다.

여기서도 허준은 분명하게 “소신은 침(鍼)을 모릅니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침의(鍼醫)와 약의(藥醫)는 구분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나라 한의사들의 집단 의기주의 때문에 침을 모른다는 허준이 침놓는 사람이 되고, 전문 침의는 없었던 것처럼 하여 역사까지 왜곡시키며 약의(藥醫)가 침구사인 것처럼 하여 침구사들이 침을 못하게 하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침구사는 약의가 아니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나 약의만 침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모순이며, 집단의기주의에 기인하여 법이 이들의 편을 들어주게 한 것은 바르게 고쳐져야만 한다.


2. 허준은 선조 앞에서는 침(鍼)을 모른다하여 침의(鍼醫)인 허임에게 미루고서는 동의보감의 침의(鍼醫)들이 침의 보사를 내경 영추를 인용하며 논해놓은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자기의 생각을 덧붙여서 실어 놓았다.

◎ 鍼法有瀉無補○鍼刺雖有補瀉之法予恐但有瀉而無補焉經謂瀉者迎而奪之以鍼迎其經脈之來氣而出之固可以瀉實也謂補者隨而濟之以鍼隨其經脈之去氣而留之未必能補虛也不然內經何以曰無刺熇熇之熱無刺渾渾之脈無刺漉漉之汗無刺大勞人無刺大飢人無刺大渴人無刺新飽人無刺大驚人又曰形氣不足病氣不足此陰陽皆不足不可刺刺之則重竭其氣老者絶滅壯者不復矣若此等語皆有瀉無補之謂也凡虛損危病久病俱不宜用鍼[入門]

사법(瀉法)만 있고 보법(補法)은 없는 침법[鍼法有瀉無補]이라면서

○ 침놓는 데는 비록 보하고 사하는 법이 있다고 하나 나는 다만 사하는 것만 있고 보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내경』에 사한다는 것을 맞받아가서 빼앗는 것이라고 한 것은 침으로 그 경맥에 오는 기를 맞 받아가서 빼는 것이므로 실한 것을 사한다고 한 것이고 보한다는 것을 따라 가면서 도와주는 것이라고 한 것은 그 경맥의 가는 기를 따라 가면서 침을 놓아 머무르게 한다는 것이므로 반드시 허한 것을 보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내경』에서 화끈화끈하게 열이 날 때 침을 놓지 말고 똑똑하지 못한 맥이 나올 때 침을 놓지 말며 땀이 뚝뚝 떨어질 때에 침을 놓지 말고 몹시 피로한 사람, 몹시 배가 고픈 사람, 몹시 갈증이 나는 사람, 음식을 금방 먹어 배가 부른 사람, 몹시 놀란 사람에게는 다 침을 놓지 말라고 하였겠는가.

○ 『내경』에 또 형(形)과 기(氣)가 부족하고 병사도 부족한 것은 음양이 모두 부족한 것이므로 침을 놓을 수 없으며 침을 놓으면 그 기가 더욱 부족해져 늙은 사람은 아주 죽고 젊은 사람은 회복되지 않는다고 하였겠는가. 이런 말들은 다 침 치료법에는 사법만 있고 보법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모든 허손(虛損)으로 위험한 병과 오래된 병은 다 침을 놓는 것이 좋지 않다[입문]. 라고 자기가 침술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변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양오행에 기초가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내경에도 보면 한방의 주된 원리는 건강한 정상인에서 위로는 과(過)한 것을 태과(太過)라하고 아래로 모자라는 것을 불급(不及)이라 하여 병(病)은 태과나 불급에 의해 생기는 것이니 치료의 원리로는 태과는 결과를 치료하고, 불급은 원인을 치료하라는 것이 기본원리이다. 이런 연유로


 © 박용규
오행이란 한 요소를 보(補)하는 경우 < 木을 예로 들면 >

목(木)을 보(補)하면 생(生)인 화(火)는 보(補)가 되나, 극(克)인 토(土)는 오히려 화(火)가 補되는 것보다 더 크게 사(瀉)되므로 『내경』에 형(形)과 기(氣)가 부족하고 병사도 부족한 것은 음양이 모두 부족한 것이므로 기력이 약한 토(土)가 쉽게 불급(不及)에 이르러 기력을 차릴 수 없어서 대병(大病)에 빠지기 쉬우므로 내경에서는 먼저 꿀(土)물을 먹어 기력이 회복되는 것을 확인 후에 침을 놓게 하자는 것이지 火補가 안 된다.는 것은 아닌 것이다. 사(瀉)란 반드시 강한 것이 사(瀉)되게 해야 한다. 는 것을 강조한 것인데도 말이다. 즉, 火가 弱하여 木을 補하고 싶을 때는 土가 弱하여 불급에 이르면 木을 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는 음양이 모두 부족하니 마땅히 土가 부족하므로 木을 보할 수 없다는 원리이다.


3. 이제마는 진정한 한의사였으나 그의 저서를 읽고 이해하려는 사람이 없다. 온라인상에 많은 한의사들이 동무라는 이제마의 호를 사용하면서도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아이로니컬하다. 동양의학을 강의하는 중에 동양의학의 역사상 동양의학의 원초는 『素問』과 『靈樞』이나 원리를 발견한 사람은 오행침의 원리를 찾아낸 사암선생과 침도 체질 따라 치료법이 다르다는 체질침 원리를 펴온 권도원 선생과 동의보감의 미비한 부분을 개선하여 같은 병이라도 체질에 따라 치료법이 다르다. 고하여 사상의학의 원리를 펴낸 이제마선생으로 모두 우리나라사람 뿐이지만 그의 원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고 말하면 허준은 무엇이냐고 묻곤 한다.

그는 근대 한의학을 정리 정돈하여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자랑스러운 사람이긴 하나 원리를 탐구해서 펼친 사람은 아니다. 더욱이 침구사도 아니며 실제로는 동양의학의 비교분석가인 명나라의 유경(類經)을 편찬한 장개빈(張介賓)에 미치지 못한다.

* 장개빈(張介賓; 1563~1640) : 호는 景岳, 명나라의 의학자. 10세부터 명의 金英으로부터 의학을 배웠고, 임진왜란 때는 조선에 출병하였으며 중년에는 군인으로서 河北, 東北 등지에서 지냈다. 『素問』과 『靈樞』를 깊이 연구하여 30년만에 『類經』을 만들었다. 이외에도 『質疑錄』을 편집하였고, 만년에는 과거의 임상 경험을 종합하여 『景岳全書』를 집대성 하였다. 그는 이론에서 陽非有餘, 眞陰不足, 人體虛多實少 등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제마가 주장하는 사상이론은 주역에 기초를 두어 선천과 후천을 나누며 선천의 하늘이 준 천기(天機)와 후천이 받은 인사(人事)의 사상을 오행으로 풀어서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오래 살아가는 길을 제시한 것은 첫째로는 허준의 동의보감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치료법을 사용하는 것에 반발하여 같은 병이라도 사람의 체질에 따라 그 약의 처방도 달라야한다는 것을 주장하였고, 둘째로 지금까지의 증상처방에서 벋어난 예방의학의 원리를 펼쳐놓았기 때문에 그 원리가 다르므로 황제내경에 묶여있는 한의학자들은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그 뜻을 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그의 저서에서 성명론은 화_중심오행으로 해설하고, 사단론은 토_중심오행으로 해설하며, 확장론에서는 이들 두 가지를 혼합 확장시켜 병의 원인을 치료하는 예방의학을 전개하고 있으며, 무속에서는 목_중심오행을, 권도원의 체질침에서는 금_중심오행과 수_중심오행을 첨가시킨 처방을 내리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현재까지도 한의학의 원리를 캐기 위한 기초물리학의 연구나 원리를 연구하는 교과과목이 없이 한자의 풀이에만 매달려 젊은 세대를 구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행은 고정되어 죽어있는 평면이 아니고, 쉴새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입체의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박용규 입체음양오행 연구소장]
 
 < 입체 음양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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