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覺性은 永遠히 지금 이 瞬間 現在에 머문다

장백산-1 2014. 9. 13. 23:34

 

 

 

 

 

<覺性은 永遠히 지금 이 瞬間  現在에 머문다. >


 

覺性은 判斷없는 觀察이다.

覺性은 非判없이 觀察하는 마음의 能力이다.

 

 

判斷이나 非板 없이 觀察하는 마음의 能力, 覺性된 사람은 責望하거나 判斷하는 일없이 事態를 본다.

어떤 事態에도 놀라지 않는다. 다만 그 事態의 꾸밈없는 狀態 있는 그대로에 均衡잡힌 關心을 갖는다.

決定하지도 判斷하지도 않고 그냥 事態를 觀察만 한다.

'決定하지도 判斷하지도 않는다'고 할 때 冥想家는,

아무 先入見 없이 顯微鏡 아래의 物體를 觀察하고 그 對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인 科學者와 흡사하게,

經驗을 觀察하라는 뜻임에 注目해주기 바란다.

이와 같은 方法으로 冥想家들은 無常-不滿足-無我 (삼법인:三法印)를 알아차린다.

 

 

 

心理學的으로도 우리가 우리의 多樣한 心理狀態의 發生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우리의 內面에서 進行되는 일의 事態를 客觀的으로 觀察하기는 不可能하다.

이러한 事態는 不快한 마음상태의 경우에 特히 觀察이 不可能 한데,

自身의 두려움을 觀察하기 위해서는 自身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事實을 받아들여야 한다.

自身의 우울함을 完全히 認定하지 않고서는 自身의 우울함을 觀察할 수 없는 법이다.

짜증과 動搖와 挫折을 비롯한 기타 온갖 不便한 感情狀態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런 感情狀態의 存在를 否認하는데 급급해서는 그런 感情狀態를 充分히 觀察할 수가 없다.

 

 

우리가 어떤 體驗을 하게 되든지  覺性은 그냥 그 經驗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經驗은 그냥 삶의 또 하나의 事件, 自覺해야 할 또 하나의 事態일 뿐이다.

 

 

 

覺性은 生覺을 하는 것이 아니다. 覺性은 事態를 經驗을 그냥 바라볼 뿐이다.

覺性은 일어나는 모든 사태를 思考나 生覺을 거치지 않고

直接的이고 卽刻的으로 體驗하는 마음의 能力이다.

覺性은 認識 過程의 思考나 生覺  以前에 온다.

 

 

 

覺性은 現在 지금 이 瞬間의 自覺이다. 覺性은 지금 여기서 일어난다.

覺性은 바로 지금 이 瞬間에 일어나는 事態를 있는 그대로 觀察하는 마음의 能力이다.

覺性은 永遠히 지금 이 瞬間  現在에 머문다.

覺性은 永遠히 스쳐 지나가는 時間의 일렁이는 몰마루위에  現存함이다.

 

 

 

覺性 狀態에 있는 偏見 없는 觀察者의 唯一한 일거리는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는 內面 世界의 意識의 쇼를 계속 따라가는 일뿐이다.

覺性 狀態에 있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은 內面 世界다.

內面 世界는 單純한 外部 世界의 反映  以上을 담고 있는 엄청난 情報의 寶庫다.

이 內面 世界를 잘 觀察해 보면 당신은 完全한 大自由를 만끽할 것이다.

 

 -'가장 손쉬운 깨달음의 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