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마음은 마음이 아닌 이름이 마음인 ‘비심’--마음씨 타령 ①

장백산-1 2014. 11. 7.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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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마음이 아닌 이름이 마음인  ‘非心’

 

마음씨 타령 ①

 

2014년 10월 31일 (금) 21:03:14백봉 김기추 거사 추모사업회 bwjhs@hyyunbul.com

과거· 현재· 미래의 마음  얻지 못할 때  虛空 생각해야

바닷물에서 파도가 일지만  중생들은 파도에만 얽매인다

생사와 생사 없는 것 딱 하나  마음(心)은 부처자리(佛) 곧 하나의 法

 

 

마음이 마음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非心이다.(心卽非是名心) 非心인데 이걸 이름하여서

觀念 槪念으로 마음이라 말한다. 이러하니 실로 이것이 마음은 마음인데 마음이라 해 봤든

무엇을 걷어잡고 우리가 마음이라 하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한 것인데, 그러나 事實 이

말씀은 또 마음이 없단 말이 절대로 아니거든요. 이 자리가 아주 不可思議한 자리다. 여러분들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매일 써. 매일 쓰는 이 마음씨가 지극히 不可思議한 자리다. 그러하기 때문에 過去心도 얻지 못하고  現在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未來의 마음도 얻지 못한다.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이 말씀이거든요. 주 골자라.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이 마음씨를 매일 써. 매일 쓰는 이 마음씨를 알긴 알아야겠는데 알아 봤자 알려고 하는 그 놈이거든. 내 마음씨가 어떤 것인고 알려고 하는 바로 그 놈이라요. 그러기 때문에

過去心도 얻지 못하고 現在心도 얻지 못하고 未來心도 얻지 못하는 것인데,

 이때는 언제라도 虛空을 生覺하면 됩니다.

虛空을 生覺하면 이걸 아는 데 있어서 들어가는 첩경의 길이 될 겁니다.

虛空, 事實 아닌 게 아니라 虛空은 있어요. 틀림없이 있어. 虛空이 틀림없이 있기 때문에

이런 地球도 나투고  太陽도 나오는데, 나와서 虛空에 依持하고 있는데 그러나 虛空 찾으려야 찾을 길이 없어. 참 막연해. 事實로 虛空 이거 아주 드높은 고개입니다. 실로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와 工夫하는 것도 이 자리 알려고 工夫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자리 하나 알아 버리면

여기 이 자리는 죽고 사는 것이 딱 끊어진 자리입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이 자리는 죽고 사는 것이 없기 때문에, 죽고 사는 것을 나투어. 착하고 악한 것이 없기 때문에 착하고 악한 것도 나투어. 밝고 어두운 것도 없기 때문에 밝고 어두운 것도 나투어. 이런 式으로 生覺하면 됩니다. 그러하면 나중에는 말이지 生死와 生死 없는 것이 딱 하나라는 것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두말할 것 없이 波濤나 한가집니다. 바닷물이 있기 때문에 波濤가 생기는데 衆生들은 波濤 이놈에만 얽매어 있거든요. 이 波濤도 역시 하나의 바다물인데 波濤라 해서 바다물 아닌 것도 아니거든요. 바다는 안 보인단 말이죠. 波濤만 보여. 그래서 이러한 설법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 마음씨타령을 하나 붙여 봤거든요. 마음씨타령.

우리나라 말로 타령이란 말이 있거든요.

우리나라 말로 소리, 노래, 타령. 마음씨타령이라 했는데

이걸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강송] 뚜렷하게 맑은 生覺  法이라하면

           휘영청히 밝은 마음 부처아니냐.

 

만약 뚜렷한 生覺이 마음이란 말이죠. 마음이란 것도 없는데 부처님 말씀대로 마음은 非心이라. 이름뿐인 마음이라. 그러나 이름뿐인 마음이라 할지라도 그 말입니다. 이름뿐인 마음이라 하면 좀 섭섭하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런 거 아닙니다. 그 마음자리가 너무나 맑아. 그러하기

때문에 도저히 이름을 붙일 수가 없어. 그러하기 때문에 아닌 마음이다. 마음이 아니다. 우리

보림선원에서 새기는 것은 아닌 마음이다 이렇게 새기고 있죠. 非心하면 아닐 非자거든요.

아닌 마음이다. 보통 마음이 아니라고 새기지만 우리는 아닌 마음이다 이런 식으로 새기거든요. 아닌 마음이라 하면 아니라도 좋아요. 아닌 마음이라 하는 이놈은 있거든. 마음이 아니다.

마음이 아니다라는 이것은 있단 말이죠.

 

이렇게 생각해 봐요. 마음이 아니라고 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이 말이 아니거든요.

마음이 아닌데 마음이 아닌 그것은 있단 말이죠. 그럼 그것이 뭣꼬. 왜 이런 복잡한 한문을

썼을고? 한문이 아주 좋아요. 다른 의미가 다 포함되거든요. 이런 좋은 글 가지고서 非心이라 했느냐. 마음이 아니라 이렇게 새기는데 우리는 아닌 마음이다 바로 이래 버렸거든요.

그럼 아닌 마음 그 놈는 있거든. 또 마음이 아닌 그 놈은 또 있거든요. 이건 무엇인가.

이거 한 번 생각해 봐요. 그럼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이 마음자리가 참 不可思議하거든요.

不可思議하면서도 이 마음을 써. 웃기도 하고 화도 내고. 이걸 써. 그러하니 이거 기막힌 자리 아니에요? 結局은 이 자리 하나 알려고 다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강송] 뚜렷하게 밝은 性稟  法이라하면

           휘영청히 밝은 마음 부처아니냐.

 

性稟, 이래 하면 하나의 法이거든요. 밝은 마음이 바로 性稟이거든요. 그러하니

 

[강송] 어즈버야 온누리는 不可思議니

          지화자자 좋을씨고 쇠꽃이랄까.

 

쇠꽃, 鐵花, 그러니 뚜렷하게 밝은 性稟을 보자면 바로 虛空性입니다. 뚜렷하다고 써 놨지만 뚜렷한 것도 또 아니에요. 그렇다고 모난 것도 아니에요. 그러하니 천상 뚜렷하단 말을 부처님도 이 말을 빌려서 많이 썼습니다. 뚜렷하다는 말은 우리의 눈동자가 둥글둥글하기 때문에 뚜렷하게 봬. 하지만 뚜렷한 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뚜렷 안 한 것도 아니에요. 이 누리는 뚜렷한 데

속한 것도 아니고 뚜렷 안 한데 속한 것도 아니에요. 모난 데 속한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그 마음씨가 그렇단 말이에요.

마음씨를 말마디로써 表現한다면 그렇게 그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하니 휘영청한 마음씨가 물건 사고 싶으면 물건을 사. 장사하고 싶으면 장사를 해.

밥 먹고 싶을 땐 밥을 먹어. 휘영청하기 때문에 生覺나는 대로 마음이 탁탁 일어나거든요.

그 마음이 어찌 부처가 아니냔 말이에요. 性稟이 法이라면은 마음(心)은 부처(佛)다 이 말입니다. 러하기 때문에 내 마음을 여의어서는 절대로 부처 찾지 못합니다.

만약 마음을 여의어서 부처를 찾으려고 하면은 이건 外道고 邪道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 이 부처자리, 네 글자가 있는데

부처(佛)라 해도 좋고 마음(心)이라 해도 좋고, 또 부처니 마음이니 하나의 法이거든요.

法이라 해도 좋고 性稟이라 해도 좋고 어떤 이름을 갖다 써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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