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성불하는 두 가지 길

장백산-1 2015. 7. 26. 21:39

 

 

 

성불(成佛)하는 데에는 두가지 길이 있으니,이치(理)로 되는 길과 행(行)으로 되는 길이다.

 

理致로 成佛하는 길은 부처님이 말씀한 뜻을 깨달아서 모든 衆生이 그대로 부처(佛)임을 믿어야

한다.  오직 煩惱 妄想을 벗기기 위해 虛妄한 것을 버리고 本來의 참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한데 뭉쳐 나와 他人, 聖人과 凡夫가 그 本質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고 한결같이

平等하다는 境界에 흔들림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文字를 떠나 그대로 分別心이 없는 무위(無爲)의

理致로 들어가는 것이다.

 

行으로 成佛하는 길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원행(報寃行)이다.

보원행이란 조금도 원망이 없는 행이다.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무리 괴로운 일을 당해도 남을

원망하지 말고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라. `한없는 물결 속에 輪廻하면서 나는 타인으로 인해서 

무수한 원한과 미움을 쌓았으리라. 또한 나는 남을 괴롭히고 被害를 준 일도 수도 없이 많으리라.

지금의 나의 잘못이 아니라 하더라도 前生에 지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하더라도 前生에 지은 나의

惡業의 열매가 지금 익은 것이니라.`이렇게 생각하며 괴로움을 달게 받으며 누구도 원망하지 말아

야 한다. 經에 이르기를 "괴로움을 당해도 걱정하지 말라. 왜냐하면 이 마음은 限없이 넓기 때문이다

."고 하였다.

 

이렇게 마음을 가진다면 眞理와 한몸이 되어 원수도 없고 원망도 없고 미워함도 없어짐을 깨닫게 되니

이것이 바로 怨望이 없는 報寃行으로 가는 길이다.

 

둘째는 수연행(隧緣行)이다. 수연행이란 因緣을 따르는 行이다.

`나`라고 하는 이 하잘것 없는 중생은 모두가 因緣의 業을 따라서 괴로워하기도 하고 즐거워 하기도

한다. 어쩌다가 좋은 果報를 얻어 富貴榮華를 누린다 하더라도  이것은 다 前生에 지어 놓은 것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좋아하지만 다시 因緣이 다하면 福樂이 없어질 것인데 무엇을 그리 좋아 하는가?

얻거나 잃거나 모두 因緣에 맡겨 두고 마음에 좋고 나쁜 生覺을 담아두지 말라.

 

셋째는 무소구행(無所求行)이다. 무소구행은 求하는 生覺이 없는 行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가는 곳마다 貪着하기만 하는데 이것을 `求하는 生覺`이라 한다.

슬기로운 사람은 眞理를 깨닫기 위해 언제나 한마음을 돌이킬 줄 안다. 마음을 便安히 먹고 因緣을 따라

오고 가되 `一切의 有爲法은 모두 無常한 것(一切有爲法 如 夢幻泡影露電 應作如是觀)이니 그것에 執着

하고 좋아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고, 복이 되는 일과 죄가 되는 일, 이 두가지는 恒常 함께 다니는 것

임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世上에 산다는 것이 마치 불 타는 집 속에 있는 것과 같으니 몸뚱이가 있는 한 어디를 가도

고통이 따른다.`고 生覺하고 모든 欲心에 대한 生覺을 쉬어 一切 求하지 않는다. 경에 이르기를

"구하는 것이 있으면 괴로움이요, 구하는 것이 없으면 즐거움이다." 하였으니 이 無所求行이야말로

참된 도행(道行)이 아니겠는가?

 

넷째는 칭법행(稱法行)이다. 稱法行이란 法에 맞추어 하는 行이다.

이 마음이 本來 淸淨하다는 理致를 法이라 일컫는데, 眞理의 자리에서 보면 모든 상(相)은 텅~빈

것이라서 이분법적인 분리 분별 차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더럽고 깨끗한 것도 없고, 이것도 저것

도 없다. 그러므로 經에 이르기를 "法에는 衆生이라는 것이 없으니 이는 중생이라는 더러움을 여의

였기 때문이요, 法에는 `나`라는 것이 없으니(無我), 이는 본래 청정한 마음에는 `나`라는 더러움이

낄 수 없기 때문이다."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이치를 알므로 반드시 稱法行을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法의 性稟에서는 本來 아끼고 貪하는 것이 없으니 財物을 布施 하더라도

마음에 아까움이 없다라면 삼공(三空) 즉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을 通達할 것이며,

衆生을 敎化하고 利롭게 하되 그 相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自身의 利益일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利益을 주는 길이며 또한 보리(菩提)의 道를 成就하는 길이 된다.

 

布施 한가지가 이렇게 된다면 나머지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도

그렇게 되어서 六波羅蜜을 수행하되 修行한다는 相이 없이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稱法行이다.


(理入四行論)


[출처] 보리달마의 네가지 수행법 |작성자 혜연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