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의 법문 - 사홍서원(四弘誓願) [六祖壇經 懺悔品]
이미 참회하였으니 이제는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발심해야 한다.
내 마음의 중생이 끝없어도 모두 다 건지오리다.
내 마음의 번뇌가 다함이 없어도 모두 다 끊으오리다.
내 마음의 법문이 한이 없어도 모두 다 배우오리다.
내 마음의 불도(佛道)가 위가 없어도 모두 다 이루오리다.
내 마음의 중생을 건진다 함은 육조인 내가 그대들을 구제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 마음 속의 중생이란 바르지 못한 어두운 생각, 망녕되고 진실하지 못한 생각, 착하지 못한 생각,
질투하는 생각, 악독한 생각 등 이와 같은 생각들이 모두 내 마음 속의 중생인 것이다. 저마다 자기
마음 속의 그릇된 생각들을 스스로 구제하는 이것이 참으로 내 마음 속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자기 마음의 중생, 즉 마음 속의 그릇된 생각들을 스스로 구제할 수 있을까?
자기 마음 속의 그릇된 소견과 헛된 분별 망상 번뇌와 무지를 올바른 견해(正見)을 써서 구제한다.
바른 견해(正見)는 지혜로 하여금 마음 속의 어리석은 생각들을 깨뜨리고 스스로 구제하게 한다.
그릇된 생각이 올라오면 올바른 견해로, 미혹(迷惑)한 생각이 올라오면 깨달음으로, 어리석은
생각이 올라오면 지혜로, 악한 생각이 올라오면 선한 생각으로 구제하는 이것이 진정한 구제이다.
그리고 번뇌(분별 망상)를 끊는다 함은 자성(自性)의 지혜로 헛되고 허망한 생각을 없앤다는 말이고,
법문(法門)을 배운다 함은 자신의 성품(自性)을 봐서 항상 바른 행위(생각, 말, 행동)을 행하는 것이다.
불도(佛道)를 이룬다 함은 항상 마음을 낮추어 참되고 바르게 행동하며, 미혹도 버리고 깨달음에서도
떠나 항상 지혜를 내며, 참됨도 없애고 망녕됨도 없애어, 바로 스스로의 근본성품, 자성(自性), 불성
(佛性)을 보면 곧바로 불도(佛道)를 이루는 것이다.
육조의 법문 - 삼귀의(三歸依) [六祖壇經 懺悔品]
네 가지 큰 서원(四弘誓願)을 발심한 사람은 불보(佛寶)ㆍ법보(法寶)ㆍ승보(僧寶)라는 자성삼보(自性
三寶)에 귀의(歸依)하여라. 불보(佛寶)란 깨달음, 법보(法寶)란 올바름, 승보(僧寶)란 청정함이다.
마음이 불보인 깨달음에 귀의하여 그릇되고 어두운 생각 마음을 내지 않고,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하게
생각하여 재물(財物)과 색(色, 모양, 형상, 모습)을 여의게 되면 이것을 일러 양족존(兩足尊)이라 한다.
마음이 법보인 올바름에 귀의하여 그릇된 견해 소견이 없으면 남과 나를 분리 분별하는 일도 없고,
탐욕과 애욕에 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니 이것을 일러 이욕존(離欲尊)이라 한다.
마음이 승보인 청정함에 귀의하여 온갖 지저분한 생각 마음과 애욕에 물들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일러
중중존(衆中尊)이라 한다.
이와 같이 실행하는 것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귀의(歸依)하는 것(自歸依)인데, 범부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밤낮으로 삼귀계(三歸戒)를 받는다고 쓸데없는 너스레를 늘어놓는다.
만약 부처에게 귀의한다면 그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부처를 못본다면 무엇을 의지해 돌아갈 것인가?
그러니 귀의(歸依)한다는 말, 즉 의지해 돌아간다는 말이 우습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자신의 부처에게
(自性佛) 돌아가지 않으면 의지할 곳이 없다.
이제 스스로 깨달았으면 저마다 제 마음의 삼보(三寶 : 불보, 법보, 승보)에 돌아가 의지(歸依)하여라.
안으로 심성(心性)을 고르게 하고, 밖으로 남을 공경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돌아가 의지함 歸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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