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과 현대물리학

물질과 반물질, 10억분의 1 차이가 지금의 우주를 만들었다

장백산-1 2018. 4. 12. 21:58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 (19) 

물질과 반물질, 10억분의 1 차이가 

지금의 우주를 만들었다

입력 2018.04.12. 21:12




[경향신문] 

ㆍ이 세상의 모든 것이 우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빅뱅이론을 확인하기 위해 활용한 WMAP 위성. 2001년부터 약 9년 동안 이 위성은 빅뱅의 잔재인 우주배경복사라는 빛을 측정함으로써 빅뱅 이후 우주가 팽창해왔다는 ‘빅뱅이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도움을 줬다. NASA

■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세상은 왜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 없다. 하지만 무엇인가 존재한다면 왜 그것이 있어야 하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300년 전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무언가 있는 것보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존재의 이유를 창조자에서 찾는다. 물론 세상이 무(無)라고 해도 설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면 그런 질문을 할 주체, 아니 질문 자체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는 물리학자라면 세상이 왜 존재하는지 답할 수 있을까?

‘우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두운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주는 존재하는 이 세상 전부다. 스마트폰, 벚꽃, 고양이, 모래, 돌, 흙, 식물, 동뮬, 공기, 물, 불, 바람은 말할 것도 없고, 이 글을 읽는 사람인 당신도 우주의 일부다. 우주는 시공간과 물질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거칠게 말해서 시공간은 무대, 물질은 배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주는 시공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연법칙이라는 대본에 따라 물질이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연극이다.

우리는 누가 왜 연극을 제작했는지, 아니 왜 우주가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주가 항상 존재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는지는 알고 있다. 칸트는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우주에 시작점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두 정당화될 수 있어 이율배반이라고 했다. 즉 이런 질문은 이성으로 답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우주의 시작점에 대한 질문을 과학적 탐구 대상으로 만들었다.

상대성이론에서 시공간은 연극 무대와 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배우와 같다. 배우의 특성이나 움직임에 따라 무대의 구조가 매 순간 함께 바뀌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에서 시공간은 물질과 마찬가지로 기술되어야 할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제 시공간의 변화, 나아가 시공간의 시작과 끝을 묻는 것이 가능해진다. 1920년대 조르주 르메르트는 상대성이론에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수학적 가능성을 찾는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말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면 한 점에서 출발했다는 뜻이니, 우주에 시작점이 있다는 거다. 바로 빅뱅이론이다.

빅뱅이론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물리학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언급해두어야겠다. 우주에 시작이 있다는 사실이 바로 기독교의 창조론을 닮았기 때문이다. 실제 1950년대 기독교계에서는 빅뱅이론이 창조론과 모순되지 않으며, 나아가 그 증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경우 상대성이론이 팽창우주의 가능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방정식에 ‘우주상수’라는 것을 억지로 집어넣어 우주의 팽창을 막기도 했다. 훗날 자신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라고 했지만 말이다. 사실 스티븐 호킹의 중요한 업적의 하나가 블랙홀과 빅뱅 같은 특이점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빅뱅이론은 우주가 한 점에 시작하여 팽창해왔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모른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어느 날 “꽝!” 하고 우주가 나타난 것이 아니다. 시작점 이전에는 장차 우주가 존재하게 될 빈 공간 자체가 없었다. 아니 시간조차 없었다. 빅뱅과 더불어 시간과 공간 그 자체가 생겼다. 사실 우주가 이 세상의 전부라고 한다면 우주는 언제나 존재해왔다고 할 수도 있다. 시간이 탄생한 이후에는 줄곧 존재해왔으니까.

■ 빅뱅의 메아리

빅뱅이론은 과학이다. 물질적 증거가 있다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권위로 방정식에 상수를 써넣을 수는 있지만, 과학에서의 옳고 그름은 권위가 아니라 실험적 증거로 결정된다. 빅뱅의 첫 번째 증거는 현재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천문학적 관측 결과다. 현재 평창하고 있어도 과거에는 아닐 수 있지 않을까? 빛은 유한한 속력을 갖는다. 그래서 먼 곳에서 온 빛은 오래전에 출발한 것이다. 오늘 당신에게 각각 부산, 베이징, 파리에서 떠난 소포들이 동시에 도착했다고 하자. 부산에서 온 것은 오늘 오전, 베이징은 이틀 전, 파리는 5일 전에 출발한 것이리라. 내가 보는 별빛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은 1년, 어떤 것은 100만년, 또 다른 것은 100억년 전에 출발한 것들이란 말이다. 멀리서 온 것일수록 더 먼 과거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신기한 일이지만, 이렇게 우리는 과거의 우주를 현재에서 볼 수 있다.

과거의 우주를 보면 우주가 줄곧 팽창해왔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우주의 팽창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애덤 리스, 브라이언 슈밋, 솔 펄머터는 이 관측 결과로 201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우주가 팽창하는 양상은 우주의 미래에 대해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이대로 간다면 우주는 그냥 영원히 팽창하기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에 들어있는 물질의 양이 유한하다면 우주는 점점 희박해질 것이고, 결국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이 될 것이다. 현대 우주론이 말해주는 암울하다면 암울한 우주의 미래다.

물질은 온도에 따라 상태가 변한다. 온도를 낮추어 가면 수증기에서 물, 물에서 얼음으로 변하는 것이 그 예다. 우주는 초기에 엄청나게 높은 온도 상태에 있었다.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온도가 점차 낮아졌고, 그에 따라 쿼크와 전자, 쿼크가 모여 양성자, 중성자, 이들이 모여 원자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물리이론이 있음은 물론이다. 빅뱅 이후 38만년이 지났을 때 원자가 만들어지며 빛도 생겨났다. 그 이전에 빛은 물질과 한데 뒤엉켜 따로 분리할 수 없었다. 일단 빛이 물질과 분리되면 우주의 끝을 향해 쉴 새 없이 달려간다. 빅뱅의 잔재인 이 빛은 지금도 우리 주위에 존재하며, 이를 ‘우주배경복사’라 부른다.

우주배경복사가 존재한다면 이 빛은 우주 어디에나 어느 방향으로나 있어야 하고, 물리법칙이 이야기하는 특별한 형태의 주파수분포를 가져야 한다. 1964년 벨연구소의 펜지어스와 윌슨이 6m 안테나로 기구위성에서 오는 전파를 수신하려다 우연히 이 신호를 발견한 것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이들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우주배경복사에는 빅뱅 이후 38만년의 시점, 그러니까 초기 우주의 정보가 담겨 있다. 그래서 정밀히 측정할수록 초기 우주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지상에서는 각종 잡음이 많아, 우주공간에 나가서 측정하는 편이 좋다.

1989년 COBE는 이런 목적으로 발사된 인공위성이다. 여기서 얻은 데이터는 우주배경복사의 존재를 더욱 명백히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공간적으로 그 세기에 미세한 요동이 있음도 알려주었다. 우주 초기, 그러니까 우주가 아주 작았을 때 존재했을 이런 미세한 요동은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물질들이 중력으로 뭉치는 핵(核)의 역할을 했다. 바로 이들이 최초의 별과 은하가 된다. COBE의 과학자들에게 1996년 노벨물리학상이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이후 WMAP, 플랑크 위성이 차례로 발사되었다. WMAP 위성은 우주가 편평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공간이 휘어지고 뒤집히는 일도 가능한데, 우리 우주는 유클리드기하학이 잘 작동하는 평범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중국집에서 눈감고 메뉴를 골랐는데 하필 자장면을 선택한 셈이라고 할까. 플랑크 위성은 전례 없는 정확도로 우주배경복사를 다시 측정했고, 그 결과가 2014년 발표되었다. 뭔가 새롭고 이상한 것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정밀하게 측정된 우주배경복사는 빅뱅이론이 옳다는 것을 더욱 높은 정확도로 보여주었다.

■ 시간의 역사

빅뱅이론은 시공간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하지만, 왜 물질이 존재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빅뱅의 순간 우주는 엄청난 에너지로 가득했다. 이 에너지는 빈 공간에서 물질을 만들어 낼 만큼 컸다. 쌍생성이라 불리는 현상인데, 이 과정에서 물질은 언제나 반물질과 함께 동시에 태어난다. 마치 은행에서 100만원을 대출하고 -100만원이 들어 있는 마이너스통장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우주에는 끊임없이 100만원의 돈과 -100만원의 마이너스통장이 만들어졌다가 이 둘이 만나 동시에 사라지는 일이 반복된다.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에너지의 밀도는 낮아지고, 결국 쌍생성할 수 있는 에너지 이하가 되면 우주에는 오직 빛만 가득하고 물질은 없는 세상이 된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세상에는 물질이 존재한다. 왜일까?

아직 정확한 답은 모르지만 쌍생성으로 만들어진 물질, 반물질의 양이 미세하게 달라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질이 반물질보다 10억분의 1 정도 많이 생성되어야 한다. 이보다 너무 크거나 작다면 우리 우주는 지금의 모습을 가질 수 없다. 10억분의 1이라면 서울, 부산 거리를 밀리미터(㎜) 정확도로 측정하는 거다. 아무튼 세상의 물질은 알 수 없는 비대칭에서 생겨났다. 적절한 크기의 삐딱함이 세상을 만든 것이다.

빅뱅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묻는 분들이 있다. 물리학자에게 역사란 초기 조건과 법칙을 알면 정해지는 이야기다. 작가 T S 엘리엇은 “우리의 탐험이 끝나는 때는 우리가 시작한 장소가 어디인지 알아내는 순간”이라고 종종 말했다고 한다. 공을 던질 때, 위치와 속도가 정해지면 공이 날아갈 궤도와 떨어질 지점이 정해진 것과 비슷하다. 물론 큰 규모에서 대강의 역사만을 알 수 있다. 카오스이론과 양자역학은 역사의 디테일을 모조리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준다. 우리가 현재 가진 물리법칙은 빅뱅이라는 초기 조건으로부터 우주의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국 MIT 등 공동연구팀이 2014년 5월 발표한 빅뱅 이후 우주 형성 과정을 재현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한 장면. 우주를 구성하는 미지의 존재인 암흑물질에서 가스가 생성돼 성단이 형성되는 모습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빅뱅 이후 38만년이 지나자 원자와 빛이 생겨났다. 우주는 계속 팽창하는 가운데 원자들이 서로 중력으로 당기기 시작했다. 원자들이 충분히 모여 거대한 덩어리를 형성하면 이제 그 중심은 엄청난 압력과 온도에 도달한다. 짓눌린 원자들이 원자핵과 전자로 찢기고, 원자핵이 하나로 합쳐지며 핵융합 반응이 시작된다. 스타(별) 탄생이다. 지금도 태양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초기의 원자들은 주로 수소와 헬륨이었다. 사실 우주의 초기에 원자라고는 이게 거의 전부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별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은 수소와 헬륨 같은 가벼운 원자들을 융합시켜 점점 더 크고 무거운 원자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아주 무거운 원자들은 별이 초신성으로 폭발할 때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별들은 모여서 은하를 이룬다. 우리 은하는 태양과 같은 별을 1000억개나 가진 거대한 별 집단이다. 은하를 이루는 별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듯 은하 중심 주위를 돈다. 뉴턴의 중력법칙에 따르면 은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별의 회전속도는 작아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 관측해보니 속도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감히 뉴턴의 중력이론이 틀렸다고 주장할 사람은 없기 때문에, 아직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있다고 과학자들이 합의한 상태다. 즉 별의 속도를 예상보다 빠르게 만들어주는 추가적인 물질이 은하의 내부에 숨어 있다는 거다. 이들이 눈에 보였다면 이런 문제는 애초 생기지도 않았을 거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해야만 하는 이것을 ‘암흑물질’이라 부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주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암흑물질의 총량이 우리가 아는 물질 총량의 5배가 넘는다.

별이 되지 못한 입자들이 별 주위를 떠돌기도 한다. 여기에는 우주공간을 떠돌던 원자들이 모인 먼지도 포함된다. 이들이 모여 지구와 같은 행성이 된다. 지구 표면에 있는 일부 원자들이 모여 자신의 원자구조를 유지하고, 나아가 복제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 생명의 탄생이다. 생명은 진화를 거듭하여 호모사피엔스에 이르렀고, 호모사피엔스는 이제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 묻고 있다.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의 단서는 빅뱅이 일어나는 순간에 있을 거다. 현대물리학은 빅뱅 이후 1000억분의 1초 지난 다음부터 적용할 수 있다. 그 이전의 엄청나게 짧은 시간 동안을 기술할 수 있는 물리이론은 아직 없다. 물리학의 성배나 다름없는 통일장이론 혹은 양자중력이론이 나온다면 1000억×1000억×1000억분의 1초까지 빅뱅에 근접하여 우주를 기술할 수 있게 된다. 이 찰나와도 같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주 존재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까? 스티븐 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의 마지막 문장이다.

“만약 우리가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의 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최종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김상욱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양자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포스텍, 카이스트,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BK조교수, 부산대 교수를 거쳐 현재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학하는 과학자로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김상욱의 과학공부> <김상욱의 양자공부> 등의 저서가 있다.
연재김상욱의 물리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