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삶이라는 영화(影畵)

장백산-1 2020. 1. 11. 19:16

삶이라는 영화(影畵)  - - 몽지와 릴라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봅니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하얀 스크린 위로 영화 제작회사의 로고와 영화사 고유의 시그널 음악이 나옵니다. 영화 제목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자리에 인상적인 첫 장면이 나타납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이 걸어가고 사물과 배경,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암시하는 복선들이 곳곳에 깔립니다. 주인공이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많은 사건 사고를 경험하고 곤경에 빠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납니다. 스크린이 까맣게 변했다가 음악과 함께 등장인물들과 제작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스크린 위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영화관에 조명이 환하게 켜집니다. 스크린은 아무 일이 없었던 듯 하얀색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영화 상영 시간 동안 영화의 스토리 속으로 빠져들어갔던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관을 빠져나가 버린 뒤에도 스크린은 무심하게 하얀색 그대로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사람들이 방편(方便)인 말로 표현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영화관의 스크린처럼 눈에 보이는 물건은 아니지만 마음은 영화관의 스크린 같은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하루를 경험합니다. 아침에 눈이 떠지기 전 선잠 상태에서 짧은 이야기와 같은 꿈을 꾸다가 몸과 정신이 서서히 깨어나면서 눈이 떠집니다. 째깍째깍 소리를 내는 탁상시계를 보니 일어나야 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화장실에 들러 볼 일을 보고 손을 씻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가족들이 일어나 인사합니다.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사람도 점점 정신이 돌아와 아침 밥상 앞에 앉고 하루 할 일을 이야기합니다. 식사가 끝나고 뒷정리를 한 다음 각자 집을 나설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섭니다. 집 밖에서도 영화 속의 장면과 같은 경험을 합니다. 아스팔트 바닥이 보이고 온갖 자동치들이 지나다니고,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고, 전철을 타고 목적지로 향합니다. 목적지에서 온갖 일들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가족끼리 인사하고 저녁을 먹고 TV를 보거나 얘기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다가 씻고 잠이 듭니다. 마치 영화가 끝난 것처럼 하루의 스토리가 끝났습니다. 내일도 다시 이런 식으로 다른 삶이라는 영화가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 동안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영화관에서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경험했습니다. 사람들이 영화를 시각, 청각적인 감각과 생각, 감정 등의 정신적인 요소로만 경험했다면, 사람들이 평소에 경험하는 삶이라는 영화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감각과 함께 생각과 감정 등의 정신적인 요소가 더 정교하게 짜여지고 어우러져 단순한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정밀감과 실재감을 줍니다. 그러나 스크린 위에 비춰지는 영화의 장면을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의 삶이라는 영화의 장면도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삶이라는 영화의 수많은 장면은 변함없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이렇게 있는 마음에서 펼쳐지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현전이라는 마음은 눈으로 볼 수 없어서 특정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경험의 대상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모든 경험 가운데 늘 경험과 하나로 존재합니다.


세상 모든 일, 모든 것은 이 깨어있는 성품, 즉 마음에 의해서 밖으로 드러나며 드러날 때는 늘 하나입니다. 깨어있는 성품, 즉 마음, 즉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현전이라는 방편의 말로 가리키는 '이것'은 시간과 장소, 사물과 생각이 경험될 때마다 언제나  현존합니다. '이것'은 외부로 나타나는 모양의 변화나 내용의 다양성과 상관없이 항상 변함이 없이 그대로 입니다.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영상 속에 사물이 부서지건, 주인공이 피를 흘리건 스크린은 부서지지도 않고 피 한 방울을 묻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의 삶이라는 영화 속에서 상상할 수없이 다양한 일을 경험하더라도 스크린 같은 '이것'은 더럽혀지지도 않고 깨끗해지지도 않고, 찢어지지도 않고 파괴되지 않고, 피를 흘리지도 피가 뭍지도 않으며, 나빠지거나 좋아지지 않고, 생겨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이 있든 아무런 의도 없이 차별 분별 없이 모든 것을 언제나 평등하게 비춰주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스크린에 비춰지는 무수한 장면들이 변하지만 그 장면들이 실제로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니듯이 깨어있는 성품, 즉 마음, 즉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현전이라는 방편의 말로 가리키는 '이것' 위에 나타나는 삶이라는 영화의 모든 것은 실체성(實體性)이 없는 것입니다. 영원히 변함이 없는 것이 실재(實在)라 한다면 깨어있는 성품, 즉 마음, 즉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현전이라는 방편의 말로 가리키는 모양도 없고, 위치도 없고, 흔적도 없고, 없는 때가 없고 없는 곳이 없는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이것'만이 실재(實在)입니다. 궁극(窮極)에 들어가면 실재(實在)라는 방편(方便)의 말조차도 '이것'에서 드러난 영상이기에 실재한다고 규정할 수도 없고 실재하는 어떤 것이라고도 얘기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일, 모든 것은 바로 '이것'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도 '이것'에서 드러난 삶이라는 영화 속의 주연이고, 타인도 '이것'에서 나타난 삶이라는 영화 속의 조연입니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삶이라는 영화 속의 모든 사람 사건 사고 사물들이 영화 속의 한 장면에 불과할 뿐입니다. 영화 속의 주연이든 조연이든 배경이든 사물이든 사건이든 이야기든 모두 실체가 없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듯이 삶이라는 영화 속에서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 모든 일이 실체가 없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아니 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혹은 지금부터 내 미래의 모든 일까지 바로 삶이라는 영화 속의 일로 실체가 없는 그림자 입니다. 각자의 앞에 온갖 이야기와 상황의 변화가 펼쳐질 것입니다. 삶이라는 영화의 이야기는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보다 더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짜여져서 재미나고 실감나고 감정이입이 잘 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삶이라는 영화의 이야기도 극장에서 보는 영화와 다름없습니다.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삶이라는 영화의 사실입니다. 때론 삶이라는 영화에 빠져들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할 것입니다. 삶이라는 영화의 이야기가 너무 서글플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게할 수도 있으며 때론 주인공의 역할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신을 학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삶이라는 영화 속에서는 모든 일, 모든 것이 가능하겠지만, 삶이라는 영화 속 이야기의 흐름과 상황의 변화에 상관없이 삶이라는 영화는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곧 하나의 마음일 뿐이라는 사실[만법유식(萬法唯識), 삼계유심(三界唯心),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이 글을 읽고 이해하고 느끼는 중에서도 변함이 없는 '이것'만이 전부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