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관(觀)하고 살펴야 돼 그것이 참선이야

장백산-1 2020. 9. 22. 15:24

관(觀)하고 살펴야 돼 그것이 참선이야     / 송암 스님(죽림정사 조실)

밥 먹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밥을 먹는 놈, 길을 걷는 놈이 무엇인가
그 놈을 관(觀)하고 살펴야 돼 그것이 참선이야.

제 분수·마음자리 잘 살펴야. ‘삼재’나 ‘사주팔자’는 마음의 장난


“산이 참 좋지? 이곳은 어머니 품같이 고요하고 편안하면서도 생기가 있어. 여기 앉아 산에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 참 좋아. 안개에 싸여 산허리가 반쯤만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봉오리 
끝만 살짝 보이기도 하고 아주 그만이야.” 

스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피어오르던 망상(妄想)이 잠시 산허리를 휘도는 물안개로 향한다. 일순간 
마음이 고요해지며 모든게 정지한 듯한 느낌이 된다. 한사코 법문할 것이 없다고 하시는 스님에게
은사스님이신 경봉스님에 대해 여쭈었다. 송암스님의 은사는 당대의 선승이였던 경봉스님이시다. 
은사스님을 회고하는 스님의 얼굴에 보일 듯 말듯한 미소가 한동안 번졌다. 

“경봉스님을 한 3년 모시고 살았는데, 그때는 참 헛되지 않았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지금도 
그 시절이 새록새록해. 무척 인자하시면서도 서릿발같은 기상을 간직하신 분이었어. 천지를 뒤흔들 
정도의 기상 말이야. 그리고 칭찬을 잘 하시지 않았는데 ‘공부 더 해라’하는 말씀이 최고의 칭찬이요, 
격려였어.” 스님의 말씀에는 경봉스님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이 역력했다. 

경봉스님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통도사 극락암에는 끊이지 않았다. 특히 경봉스님의 작품을 소장
할 수 있는 인연이나마 지어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어떤 날은 보살 한사람이 스님앞에 와서 눈물
부터 흘렸다. 경봉스님은 “와 우노?”하고 물었다. “저는 10년동안 스님께 다녔는데 스님 글씨 하나 못
얻었으니 이제 집에 못갑니다”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스님은 불편한 몸을 일으켜 글을 써주셨다. 

“불자들이 막무가내로 스님의 법문을 청하고 점 하나라도 찍어 달라고 야단들이니 쉬실 수가 없었어. 
마음이 아파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였지. 그 정도로 우리 스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떠나서 모든 
이들에게 자비로우셨지.” 송암스님은 어느 날 새벽 경봉스님께 문안을 드리려 갔던 일을 들려주신다. 

“게송을 하나 일러주시고는 '좋지?'하고 물으시더군. ‘예’하고 대답을 했더니 내가 나중에 써 주마 하
시더군. 나중에 시자가 불러 다시 가보니 ‘먹 갈아라’ 하시대. ‘뭐하려고 그러십니까’ 했더니 아까 그 
게송을 써주겠다고 하셔. 불편한 몸으로 그러시는 게 송구해 다음에 써 주십시오 했다가 청천벽력같은 
고함을 대답으로 듣고 말았지.”  그렇게 받은 글이 송암스님의 방에 걸려 있다. 1977년 1월 10일 이른 
아침에 쓴 그 글이 시공을 넘어 경봉스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다. 경봉스님의 평등심과 자비심에서 
송암스님은 절 문턱이 높으면 안 된다는 것과 불법은 차별이 없음을 체득했다. 그래서 송암스님은 지금도 
스님을 찾아오는 이면 누구나 만나 삶의 지혜를 일러준다. 

‘제 분수를 지키며 살아라’거나  ‘마음자리를 잘 살펴라’하는 간단한 말로 요약되는 스님의 법문은 많은 
이들이 생활 속에서 불법의 깊은 맛을 보도록 이끌고 있다. 송암스님의 법문은 차맛을 닮았다. 차는 이미 
목으로 넘어가고 없는데 차의 향과 맛이 오래 남아 입안 가득 되고이는 맛과 향. “마음공부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떠나 아무나 할 수가 있어. 먹물 옷 입고 머리를 깎아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가능
한 거야.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도 방거사, 부설거사 등 멋진 분들이 얼마나 많아? 그러나 생활하면서는
마음공부가 잘 안되니 야단들이지.”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제 분수를 잘 지키고 자신의 마음자리를 잘 살피면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말이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는 말이다. 이 말속에 모든 게 다 들어 있어. 이렇게 안되
니까 이런저런 말이 많이 생기고  갖가지 수행법들이 생겨난거지. 그래서 밥 먹을 때나 걸을 때나 밥을
먹고 걷는 놈이 무엇인지 관(觀)하고 살펴야 해. 그것이 참선이야. 참선을 잘하면 흐릿한 정신이 맑아
지고 정신을 차려서 살 수가 있게 돼. 일부러 좋은 일 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자리를 잘 살펴 나쁜 
일을 하지 않는게 출발이야. 또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그리고 천당에 가서도 내 마음 편치 않으면 그곳은 지옥이 되듯이 생각으로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 괴롭게 
살지 말어. 그런 어리석음, 무지에서 깨어나려면 이 세상 모든 것, 일체를 하는 그놈을 관해야 하는 거야. 
그것이 진정한 참선인 거지.” 송암스님은 마음공부란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마음공부를 “집에 비유해보면 금방 알 수 있어. 집을 지키는 주인이 정신이 또렷하고 눈이 초롱초롱하면 
도둑이 함부로 그 집을 넘볼 수가 없겠지? 그 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훔쳐갈 수 있겠어? 그러나 대궐
같은 집에 살더라도 그 집을 지키는 주인의 정신이 흐리멍텅하고 정신을 딴데 빼앗기고 있다면 도둑이 
어떤 것이라도 훔쳐갈 수 있는 이치와 같은 것이지.”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뜻대로 부리지 못하고 탐진치
3독심에 수시로 도둑 맞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경책의 말씀이다. 

스님은 이어 “눈에 보이는 것은 거짓말을 많이 하며 하는 말도 거짓이 많다”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
에도 속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육근(六根 : 눈, 귀, 코, 혀, 몸, 뜻)이라고 하는 놈은 거짓이 많아. 
눈은 안 보아도 될 것은 더 잘 보고, 귀는 안들어도 될 말을 더 잘 듣고, 코는 맡지 않아도 될 냄새를 더
잘 맡고, 입도 안먹어도 될 것을 더 잘 먹고, 몸은 안해도 될 행동을 더 잘하고, 마음은 안해도 될 생각을
더 잘 하거든. 그러니 이 모든 것을 하는 그 놈이 무엇인가를 관(觀)하고 살피는 참선을 통해 생사(生死)
를 뛰어넘고 궁극의 문제를 해결해야 해. 육체의 유한성을 뛰어넘어 영원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야.”

송암스님은 가로수가 길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인간의 몸도 숨 들이쉬었다 내쉬지 못하면 송장이 된다
는 사실을 깊이 인식했다고 한다. 육체의 유한성을 자각하면 영원에 대한 참구는 간절해진다. 발심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각을 이루려는 간절한 초발심을 잃지 않는 것이 불가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 

송암스님은 “처음 출가해서 배우게 되는 초발심자경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부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며 “부처되는 길이 초발심자경문에 모두 들어 있는데 발심이 제대로 안되니 길을 자꾸 벗어나 
엉뚱한 길을 헤매게 된다”고 발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님은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첫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며 초심을 견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공부할 때 일어나는 망상도 첫마음을 잃어 버린데서 생기는 거야. 망상에 속으면 안돼. 길을 걷다 
헛발을 디뎠으면 다시 가던 길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지, 헛발을 디딘 것에 집착해선 안되거든. 망상을 
없애려고 하지말고 망상을 피는 그 놈을 관하기만 하면 제자리로 돌아오게 돼. 그러면 망상을 끊어야지, 
없애야지 씨름할 필요 없이 저절로 망상이 사라져.”

송암스님은 삼재기도나 사주팔자 모두가 마음의 장난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죽림정사나 스님이 20년 동안 
암주로 있었던 대둔산 내원암에는 삼재기도가 없었다. 하루는 신도 한사람이 찾아와 “스님, 집에 삼재가 
들었다고 하는데 우리 절에는 삼재기도 안합니까?”하고 묻자 스님은  “삼재가 어디 있는지 한번 내놔봐라. 
그러면 내가 삼재를 없애 줄테니” 했다. 다급해진 신도는 집에 놓고 왔다고 했고 스님은 집 어디에 두고 
왔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 신도는 엉뚱하게도 “장롱 속에 넣어두고 왔다”고 대답을 해서 한바탕 웃었다. 
“삼재는 마음이 만드는 환상, 허깨비야. 스스로 마음에 삼재라는 허깨비를 지어 놓고 자신을 괴롭히는 거지. 
그러나 이렇게 말해 줘도 자신의 마음에 걸림이 있으면 그런 사람은 삼재기도를 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
으로라도 해결을 하고 넘어가야지.”  생각으로 짓는 지옥을 없애주려는 스님의 가르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삿날이 언제가 좋은가 물으면 비 안오고, 식구들 일손이 충분한 날 하면 좋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사주나 팔자를 봐달라고 하는 이가 오면 얼굴을 쳐다보곤 다 봤으니 가보라고 돌려보낸다. 그러나 그것은 
‘돌려보냄’이 아니라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려세움’이 아닐까 싶다.

95년 경봉스님을 시봉했던 인연으로 이곳에 절을 짓게 된 송암스님은 상좌없이 ‘보리’라는 개와 함께 살고 
있다. 먹을 것이 있으면 한끼 밥해 먹고 형편 닿는 대로 살고 있다는 스님의 검소한 삶이 오히려 풍족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사람들한테 저 앞산이 내꺼야 그러거든. 그러면 사람들은 저 산을 샀느냐고 물어봐. 
저 산 주인은 땅문서 보관하느라 고생이지만 나는 그런 걱정 없이 저 산을 보고 앉았으니 내 산이지. 허허
허. 모든 게 내 것 아닌 것이 없어. 그러니 가지려고 욕심부리지 않아도 부자가 되는 거지.” 

점심 공양 후 스님의 이야기같은 법문을 듣고 있으니 언제까지라도 올 것 같던 비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햇살이 내렸다. 스님은 넓지 않는 도량 이곳 저곳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법당 뒷켠으로 심어진 소나무와 
할미꽃,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 돌멩이 하나 잡초 하나까지 소중하지 않는 게 없는 듯 소개를 하신다. 
식구를 소개하듯이. 마당에는 손수 화분에서 옮겨 심은 꽃이 피어있다. 법당 앞에서 스님은 “밤이 되면 
달빛이 그림을 그려. 이 법당벽에다 벽화를 그리는 거지” 하신다. 달빛을 배경으로 나무 그림자가 벽에 
비치는 것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셨을 어느 밤의 스님 모습이 그려진다. 비가 그치니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
가 더욱 맑게 마음을 씻어준다. 

스님은 하루 전 일어난 비행기 추락소식을 접하신 듯 사고의 대부분이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설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미비점이 많잖아. 한국 방문의 해니 월드컵이니 말로만 떠들지 
말고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해. 사고는 사람들이 제대로 일처리를 하지 않아 생겨. 관제시설이나 조종사의 
비행 기술 등 뭐든 사람이 자신을 잘 살펴보고 정신을 차려 일을 처리하면 방지할 수 있는 사고가 많아.” 
사람만이 희망이라 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희망이 되는 사람, 정신이 맑은 사람을 내 몸의 주인으로 
삼아야 혼돈과 전도된 가치 속에 살고 있는 삶에 희망이 있다는 호통이다.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은 '하나'야. 수행 잘 하라는 '하나'이지. 처음부터 계율 따로 있고, 뭐 있고 했는게 
아냐. 많은 제자들을 데리고 수행하다 보니 지장이 생겨서 계율이 생겨난 거야. 어떤 사람이 어디가서 딴 
짓하고는 장모님 돌아가셔서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해 봐. 그러면 다음에 진짜 장모님이 돌아가시면 
그때는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어 있잖아. 결국엔 거짓말이 습이 되어 자신을 구속하는 감옥이 돼. 그것
을 방지하고 근원을 없애는 것이 계(戒)야. 결국 중요한 것은 수행(修行)이야. 자신이 왜 절에 다니는지 
깊이 참구해 봐. 그것이 발심이야.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 
바로 진정(眞正)한 발심(發心)의 순간이야. 그것이 참선의 시작이고 마음공부의 시작인 것이지. 그렇게만 
되면 마음공부는 저절로 진행되고 진정한 불교인, 수행인이 되는 거지.”


▒ 송암스님 ▒ 

스님은 당신의 살아온 발자취나 수행이력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지 않으려 했다. “고향도 모르고 왜 출가
했는지 아무 것도 몰라.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만 확실할 뿐, 그 외엔 모든 게 거짓
이야. 내 모습도 참이 아니며 내 말도 거짓이 많아. 그러니 겉 모습에 속지 마.” 늘 눈에 보이고 이름 붙여진 
것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송암스님의 이 같은 말씀은 당혹스럽다. 그러나 스님의 지나온 수행이력을 알지 
못해도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스님의 법문을 듣는 확연한 현실만으로 충분했다. 소중한 일이
었다. 세수 일흔 아홉 팔순을 바라보는 송암스님의 현재 속에 녹아 있는 과거와 미래를 죽림정사를 찾는 
많은 후학들이 눈치챘고, 가르침을 구하는 그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송암스님의 크지 않는 방 벽에는 경봉스님의 사진과 글이 걸려 있고 한쪽에는 경봉스님이 쓴 반야심경으로 
제자가 직접 나무로 만들어준 병풍이 소담하게 놓여있다. 돋보기는 한쪽 알이 깨어진대로 그냥 놓여 있고 
그 이후로 스님은 책을 보지 않는다. 스님의 일상은 그처럼 형편따라 자연의 순리처럼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