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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자리에서 분별하지 않고 보기

장백산-1 2022. 7. 18. 14:23

첫 번째 자리에서 분별하지 않고 보기

 

대승불교에서는 방편인 언어로 표현된 진리를 세속제라고 부르고, 제일의제 또는 승의제로 부르는 '진짜 진리'와는 구별하여 설명합니다. 일단 진짜 진리가 방편인 언어로 표현되고 나면 한 번 왜곡되고, 언어라는 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그대로를 언어로 짜맞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과'라는 언어는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사과라는 진짜 사과를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저 '사과'라고 이름을 붙였을 뿐이지, '사과'라는 이름 속에는 사과는 없습니다. 그 이름이 사과라면 사과를 먹고 싶을 때, 그 이름만 들어도 사과를 먹은 것과 같을까요? 당연히 아니죠. 사과라는 이름, 언어에는 사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깨달음을 설명하는 여러가지 언어에는 '진짜 깨달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깨달음은 이런 것일거야', '해탈, 열반은 어떤 것이겠지' 하고 아무리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려 보더라도, 그것은 진짜 깨달음이 아니고 하나의 상이고, 이름 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진짜 깨달음이 아닙니다.

 

방편상으로 부르는 견성, 성불, 해탈, 열반, 참나, 본래면목 등의 언어에도 참된 진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말에 떨어지지 말라'고 설명합니다. 방편인 말만 붙잡아서는, 언어에 집착해서는, 특정한 상으로 그림 그린 것을 붙잡아서는 '그것'에 다가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과라는 언어도, 사과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사과에 대한 사진도, 사과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그저 눈앞에 있는 사과를 깨물어 먹어 보면 될 뿐, 먹어 보고 나서 그 사과에 대한 맛을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설명해 버리면, 벌써 자기식대로 해석한 자기만의 분별심이 되고, 해석된 것이 되기에 어긋나 버립니다.

 

매 순간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그저 있는 그대로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름 붙이지 말고, 그림 그리지 말고, 해석하지 말고, 말로 표현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느껴보세요. 보되 본 것을 해석하지 말고, 듣되 들은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느끼되 느끼는 것에 대해 이름 붙이지 말고, 그저 보고 듣고 느끼기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첫 번째 자리, 분별 이전, 본래자리에서의 생생한 경험입니다. 생생한 존재 자체이지요.

눈 앞에 뭐가 보이나요?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9.06.18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