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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한 마음이 신령스럽게 알기 때문에 어리석지 않다

장백산-1 2024. 6. 1. 15:03

공적한 마음이 신령스럽게 알기 때문에 어리석지 않다


'空寂之心 靈知不昧(공적지심 영지불매) 는  보조 지눌스님의 절요의 한부분입니다. 공적한 마음이 신령스럽게 알기 때문에 어리석지않다.'

'마음을 깨달았든 아니든 간에 마음이 본디 스스로 아는 앎(知)이며, 앎은 인연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경계로 인연하여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앎(知)이라는 글자는 온갖 오묘한 도리의 근원이다. 이 앎을 모르기 때문에 나에 대해 집착하고, 나와 내 것으로 만들어 좋아하고 미워하는 분별을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선지식을 만나 그 가르침을 받아 '텅 빈 고요한 앎'을 몰록 깨닫는다면, '고요한 마음자리에서 드러나는 앎'은 망념도 없고, 어떤 형태도 없으니, 어찌 '나'와 '남'에 대해 집착하겠는가.  <보조 지눌 '절요' 중에서>

여기서 말하는 영지(靈知)가 영각성(靈覺性), 공적영지(空寂靈知)입니다. 임제스님은 영지(靈知), 영각성(靈覺性), 공적영지(空寂靈知)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지 수 화 풍 사대로 된 육신은 법을 설하거나 법을 들을 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법을 설하고 법을 들을 줄 아는 건가? 그대들 눈앞에 역력하고 뚜렷한 아무 형체 없이 홀로 밝은 이것이 법을 설하고 법을 들을 줄 안다.'

볼 때 보는 줄 아는 이것, 들을 때 들을 줄 아는 이 앎, 분별이 아닌 첫 번째 자리에서 아는 이 순수한 앎, 이것이 영지(靈知), 영각성(靈覺性), 공적영지(空寂靈知)입니다. 영지(靈知), 영각성(靈覺性), 공적영지(空寂靈知)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견성(見性)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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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