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금 여기 눈 앞으로 오세요
18. 분별심이 만든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은 나의 분별심
분별심은 실상이 아닌 망상임을 알면
남이 바뀌기 전에 즉시 괴로움이 해결됨
바로 지금 여기 눈앞의 실제를 봐야
얼마 전, 제가 아는 스님 두 분과 같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맞았습니다. 두 스님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지만, 저는 각각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온 사이이기에 이번 기회에 서로 소개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 같이 잘 지낸다면 다음부터는 따로따로 만나지 않고 같이 만나면 더 즐거운 자리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두 스님 중 한 분께 먼저 연락을 드렸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스님께서는 함께 만나고자 하는 다른 스님을 싫어해서 같이 어울리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왜 싫어하는지를 여쭈어보니 몇 년 전에 우연히 여러 스님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한 번 봤는데 자신에게 한마디 말도 걸지 않아서 본인을 무시한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는 그 다른 스님은 남을 쉽게 무시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기지 않아 혹시 다른 사람을 그 스님으로 착각하신 게 아닌지 여쭈어보기까지 했습니다.
얼마 후 무시를 했다는 스님을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여쭈어보았습니다. 같이 만나려고 했던 그 스님을 무시한 적이 있으셨냐고요. 그랬더니 정색을 하며, 자신은 그 스님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절대로 무시한 적이 없다면서요.
알고 보니 두 스님이 만났다는 날 무시를 했다는 스님은 대상포진이 생겨 몸이 많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그 모임에 참석할 몸 상태가 아니었는데 일과 관련된 모임이어서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인 할 말만 하고 자리를 뜨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덧붙여 평소에 자신은 무시를 당했다는 그 스님을 좋게 보고 있었으며, 언젠가 차를 함께 한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심리적으로 괴로움을 겪는 원인은 사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대로의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나의 상(相), 내 분별심이 만들어낸 어떤 이미지 때문입니다. 타인은 분명 지금 나를 무시하고 있다고 분별한다면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내 분별이 만든 상이 지금 나에게 심리적인 괴로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괴로움의 원인이 상대에게 있다고 여기면서 상대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힘든 것은 다 남이 원인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진짜 원인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내 분별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진실은 엄청난 희소식입니다. 왜냐하면 괴로움의 원인이 남에게 있다면 내 괴로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내 마음이 일으킨 분별 때문이라면 내가 그 분별심을 내려놓기만 하면 바로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즉 내 분별심이 실상이 아니고 망상이었음을 보면 타인이 바뀌길 기다릴 필요 없이 즉시 괴로운 문제가 해결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사실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마음이 만들어낸 분별상에 구속되어 살아갑니다. 자기가 힘든 이유, 본인이 지금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남이 아니고 자기 분별이 만들어 낸 이야기에 자신이 속아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요. 자기를 과거의 어떤 이야기와 동일시하면서 그 이야기 상이 만들어 낸 한계가 실제인 것처럼 느끼면서 그 안에서 자유가 없어 괴로움을 겪습니다.
선불교 관점에서 봤을 때 부처님께서 해탈하셨다는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분별의 상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사실 분별의 상에서 벗어난 실상의 자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내 눈앞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의 눈앞에 지금 어떤 이야기가 존재하나요? 지금 바로 여기 눈앞을 실제로 바라보세요. 잠시라도 바라보시고 다음 문장을 읽으세요.
바로 지금 여기 눈앞에 어떤 생각이 존재하나요? 어떤 과거가 바로 지금 눈앞에 있나요? 바로 지금 눈앞에 그 어떤 것도 없지 않나요? 이름을 각각 붙이지 않고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바로 지금 여기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음은 너무나도 명백하지 않나요?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 믿는 지금 상황도 실제로는 결국 한 생각에 불과하지 않나요? 마음의 괴로움은 마음이 괴롭다는 그 생각과 함께 일어나지 않나요? 생각이 있으니 괴로운 것이지 분별김을 떠난 바로 지금 여기 눈앞의 실상은 아무런 말이 없지 않나요?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746호 / 2024년 10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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