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조건만 채우는 삶엔 참행복이 깃들지 못해

장백산-1 2012. 8. 14. 13:05

 

 

   조건(條件)만 채우는 삶엔 참幸福 깃들지 못해 

人間은 누구나 '참다운 幸福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우리가 存在하는 目的은 幸福한 삶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깨달은 사람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윌리엄 제임스에 이르는 西洋의 思想家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사는 目的이 幸福이라면 우리는 幸福이란 어떠한 것인가, 이것을 알아봐야 되겠지요. 幸福은 絶對的인 참幸福과 相對的인 거짓幸福, 이렇게 두 가지로 말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참다운 幸福'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참다운 幸福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참마음의 屬性이 참다운 幸福이라는 것입니다. 참다운 幸福은 表層意識인 겉마음이 참마음 그 自體와 完全히 하나로 通할 때만이 온전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말로 말해봤자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아주 맛있는 어떤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채 그 음식 맛에 대해 말로 설명을 들어본 것에 지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나 맑고 純粹한 淸淨함이며 恒常 밝고 밝은 大智慧, 참사랑, 어디에도 걸림 없는 大自由와 絶對平和, 언제나 고요한 大三昧….이러한 마음의 狀態가 참마음 狀態입니다. 이러한 참마음의 狀態가 참다운 幸福의 世界라는 것입니다. 참마음의 狀態가 참다운 幸福世界라고 알 수 있는 힌트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마음이 맑고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自由로울 때 幸福하지요! 마음이 고요하고 平和로울 때 幸福하지요!

純粹하게 사랑할 때 幸福하지요! 우리의 마음이 自由로울 때 幸福하고,

平和로울 때 幸福하며,

맑고 고요할 때 幸福하고,

밝고 지혜로울 때 행복하며,

자비심으로 사랑할 때 행복하다는 것을 이상의 몇 가지 힌트를 通해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마음의 狀態에 가까울수록 幸福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힌트에서 알아차린다면 참다운 幸福이 어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幸福은 바로 참마음의 狀態, 참마음의 內容이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眞實입니다. 참다운 幸福은 참마음의 內容이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참다운 幸福은 ‘지금·여기’에 恒常하다는 事實도 알아차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一分一秒 일찰라라도 空性의 참마음을 떠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相對的인 거짓幸福은 무엇일까요? 거짓幸福이란 내가 願하는 어떤 條件이 充足될 때, 欲望이 充足될 때 느끼는 滿足感입니다. 그렇게 바라는 것이 充足되면 幸福感을 느끼지만 充足되지 않을 때는 不滿足 卽 괴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自己가 願하는 것이 또 充足되었다 하더라도 滿足感 卽 거짓幸福을 느끼지만 이내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또다시 뭔가를 願하는 欲望의 마음과 안 맞을 때는 싫어하는 진심(嗔心)의 마음이 계속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貪慾의 마음과 嗔心의 마음이 우리를 支配하고 있는 限 우리는 결코 참다운 幸福에 道達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참마음의 內容인 참다운 幸福의 흐름이 삶의 本來 모습이라고 말했는데 왜 우리는 幸福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잠깐 말한 바 있습니다만 이제 좀 더 자세히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 기특하고도 기특하구나. 一切衆生이 如來의 智慧德性을 다 갖추고 있건만 分別妄想으로 因하여 증득치 못함이로다.” 우리의 本來 모습은 부처님의 삶, 完全한 幸福의 삶인데

分別妄想 卽 煩惱 때문에 참다운 幸福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幸福의 삶을 살지 못한 理由는 分別妄想 卽 煩惱 때문입니다. 貪慾, 愛着, 執着 등의 貪心作用과

짜증, 스트레스, 싫어함, 미움, 怨望, 憤怒 등의 嗔心作用이

참다운 幸福을 防害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그런데 왜 이런 탐심작용과 진심작용의 번뇌들이 생기는 것일까요? 똘똘 뭉쳐 한마디로 말하자면 結局 이 ‘나’ 때문이에요. ‘참 나’를 모르고 내가 알고 있는 이 몸, 이 마음을 ‘’라 여기는, ‘이 놈’라고 錯覺하기 때문에 수 없는 貪心作用의 煩惱와 수 없는 嗔心作用의 煩腦가 일어나 참다운 幸福을 防害하고 있어서 우리는 참다운 幸福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참다운 幸福의 삶을 살지 못한 理由는 無明과 無明의 子孫인 貪心의 煩惱作用과 嗔心의 煩惱作用 때문인데 無明이란 것도 實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實際로는 空 한 것입니다. 따라서 煩惱의 屬性도 空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空性인 참마음참다운 幸福의 흐름 속에서 煩惱에게 속고 煩惱에게 빼앗기고 있을 뿐 煩惱가 空 한 줄 알고 알아차리면 지금 여기서 참다운 幸福의 흐름을 보게 되고 참다운 幸福을 맛보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幸福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이 問題를 整理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外部的인 條件充足만으로는 참다운 幸福의 삶은 不可能하다는 確信이 서야 합니다. 아까 말한 거짓幸福 卽 欲望이 充足될 때 느끼는 滿足感, 幸福感은 잠깐 있다가 사라져 버리고 더 좋은 조건, 더 많은 것, 더 큰 것을 願합니다. 結局 거짓幸福에 속으며 幸福의 갈증은 解消되지 않고 참다운 幸福의 삶을 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부처님, 깨달은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다 말씀하셨지요. 서양의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위와 같은 거짓幸福에 속는 삶의 方式을 '所有樣式의 삶'이라고 말하면서 '所有樣式의 삶'으로는 인간은 결코 참다운 幸福에 이를 수 없다고, 그의 저서 ‘所有냐 存在냐’에서 단언하고 있습니다. 외부적인 조건충족에서 찾는 거짓행복에 속아 끝없이 갈망하며 만족을 모르고 거짓행복을 추구하는 소유양식의 삶으로는 참다운 행복의 삶을 살 수 없다는 價値觀이 確實하게 서야 합니다. 둘째, 참다운 행복이 참마음의 내용이라는 것은 앞서 말했는데 이것을 確信해야 합니다. 참 행복은 곧 참 마음의 내용이란 것을 알았으면 참 마음의 屬性인 참 幸福이 나의 삶속에서 꽃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삶속에서 행복의 꽃이 필 수 있는, 참 幸福이 實現되도록 해야 합니다. 참 마음속에 있는 참 행복의 ‘인(因)’이 나의 努力의 ‘연(緣)’을 만나 幸福한 삶이란 ‘과(果)’가 實現되도록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나의 努力을 마음의 닦음, 修行이라고 말하는데 이 마음 닦음, 修行을 꾸준하게 熱心히 하면 한만큼 참 幸福은 나타납니다. 그러면 나의 삶 속에서 참 幸福이 꽃필 수 있도록 어떠한 마음 닦음이 필요한지, 어떻게 修行해야 되는가에 대해 要約해서 말해 보겠습니다. 하나, 참 마음의 참 幸福은 煩惱가 쉰 狀態 卽, 煩惱의 뿌리인 에고가 없는 狀態이므로 에고가 없는 狀態, 煩惱가 쉰 狀態가 되도록 一念으로 ‘祈禱’ 또는 ‘懺禪’하는 時間을 가져야 합니다. 一念으로 기도할 때 그 때 幸福한 瞬間을 만나지요! 아침저녁 30분씩이라도 집중해서 一念이 되도록

‘기도’ 또는 ‘참선’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기회가 있으면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하나는 내 마음의 不定的인 生覺들을 비우고 살자는 것입니다. 煩惱의 뿌리인 ‘無明’이 實體가 없고 ‘空’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煩惱는 實은 ‘空’한 것이니까 그 煩惱가 空한 줄 알면

그 瞬間은 참 幸福을 防害한 煩惱가 사라지므로

'바로 지금 여기'에서 幸福의 삶을 맛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愛着, 執着, 미움, 怨望, 시기 등 煩惱의 보따리를 부처님께 몽땅 갖다 바쳐 비워 버리고 놓아버리라는 것입니다. 놓아버리면 놓아버린 만큼 幸福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내 마음의 肯定的인 要素를 發現하여 感謝하고 사랑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마음은 絶對肯定의 世界입니다. 우리의 참마음은 大智慧, 참사랑, 大自由, 絶對平和, 限없는 德性, 큰 能力이 本來 갖추어진 그런 絶對肯定의 世界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 絶對肯定인 참마음의 內用대로 肯定的인 삶을 살면 肯定的인 面이 絶對肯定의 世界로 通하기 때문에 참 마음의 內容인 참 幸福이 나타나 幸福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참마음의 肯定的인 內容인

感謝한 마음,

平和스런 마음, 사랑의 마음,

밝은 마음으로

살자 이것입니다. 마음도 항상 그렇게 갖고

표정도 항상 그렇게 짓고

도 긍정의 언어 따뜻하고 사랑스런 언어 이런 말을 하고

행동도 그렇게 感謝, 사랑, 慈悲行을 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幸福하게 된다는 것을 體驗해 본 사람이면 다 느낍니다. 헤르만 헷세는 ‘행복해진다는 것’이라는 詩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지…” 그런데 저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행복하라는 의무뿐 아니라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 瞬間瞬間 幸福의 原理에 맞춰 그냥 幸福하게 살자.”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이 법문은 3월7일 봉행된 증심사 명사초청법회에서 '지환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결가부좌 명상도량 자비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