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자기잣대 아상을 내려놓으면 단박에 깨닫는다

장백산-1 2014. 9. 16. 18:52

 

 

 

 

하루 아침에 깨닫는 법  

                                            /  법륜스님

<질문> 
부처님께서는 어려운 수행 기간을 보냈는데
야사라는 분은 어떻게 하루 만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는지요?

<스님>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밤새 惡夢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래서 흔들어 깨우니까 눈을 딱 뜨더니 “아, 꿈이네.” 했습니다.
이 사람은 5時間 만에 깼습니다.
또 한 사람은 惡夢에 시달린 지 10分이 채 안 돼 깼어요.
잠꼬대 하자마자 깨워서 그 사람은 10分 만에 깼습니다.
그러면 저 사람은 5時間 만에 깼고 이 사람은 10分 만에 깼으니까
저 사람은 根機가 낮고 이 사람은 根機가 높은 사람일까요?
그런 게 아닙니다.
사는 부처님 法/가르침을 만나지 못했으면 죽을 때까지 헤맸을지도 모를 사람입니다.
마침 부처님을 만나서 눈을 뜬 겁니다.
사람들은 이걸 보고   ‘나도 야사처럼 단번에 깨달을 수 없나?’ 生覺하지만
그런 生覺은 慾心입니다.

‘빨리, 많이’ 이런 生覺은 다 慾心에 속합니다.
慾心을 버려야 깨달아 自由로워질수 있지
慾心으로는 깨달아 自由人이 될  수 없습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모든 苦惱를
自己中心에 놓고 事物을 보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을 中心에 세우니까  이게 東이 되고, 저게 西가 되고, 南이 되고, 北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내 잣대, 내 中心를 놓아 버리면 東西南北의 虛空이 本來 없습니다.
어디를 基準으로 삼느냐에 따라 東이 되기도 하고 西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自己잣대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煩惱가 일어납니다.
自己잣대 自己中心 自己基準 그걸 내려놓으면 煩惱는 卽時 사라집니다.


지금 가르침/法을 못 만나서 煩惱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니고
自己잣대를 내려놓지 않기 때문에 煩惱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절에 다니는 것  結局  宗敎란 것에서도 모든 것의 中心은 ‘나’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괴로움은 내 잣대 때문에 나를 中心에 둠으로써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잣대 나중심 내기준 卽, 我相 이것을 내려놓으면 苦惱 괴로움은 사라지고 卽時 便安해집니다.

그런데 그걸 딱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것을 움켜쥐고 있는 동안은 꿈속을 헤매는 겁니다.
사람이 얼마나 利己的입니까? 自己中心的입니까?
여러분도 어떤 스님의 法門을 듣고 맘에 쏙 들면 스쳐가는 스님도 ‘우리 스님’이 되고
3년을 공부했더라도 순간 맘에 안 들면 그날로 뒤돌아서 버립니다.
이게 우리 自身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중생이지요.

그러니까 苦惱가 自己中心 我相 거기서부터 일어납니다.
나를 中心으로 事物을 바라보는 이것에서부터 東西南北이 생기고 萬相萬物이 생기므로
我相 이것만 내려놓으면 卽時 萬相이 無相으로 돌아갑니다. 모든 相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工夫는 我相 내려놓는 것 바로 여기서부터 始作해야 합니다.

오늘 당장 나를 中心에 세우고 바라보던 모든 것을 놓아보세요.
그러면 누구 煩惱가 사라질까요? 내 煩惱가 사라집니다.
내 煩惱가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내 人生이 괴롭고
내 煩惱가 사라지면 내가 스트레스를 않받으니까  내 人生이 즐겁습니다.
즐겁고 便安하니까 에너지가 자꾸 나오고 活力이 생기고 自信感이 생깁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짜증내고, 性質내고, 萬事가 뜻대로 안 되고,
折望하고, 침울해지고, 남 보기 싫고, 죽고 싶습니다.
前生에 무슨 원수가 져서 저러나 싶어 前生도 怨望스럽고 온갖 것들이 다 問題가 되지요.
自己가 좋으면, 前生도 좋고, 來生도 좋고, 지금도 좋고, 길가는 사람도 다 좋게 됩니다.
自己잣대를 내려놓으면 야사처럼 될 수 있습니다. 야사처럼 되는 길은 누구나 可能합니다.


오늘 집에 가서 마음의 演習을 해 보세요.
實際로 되든 안 되든 남편이나 아내가 뭐라고 말하면
말로만이라도 ‘예!’ 해 보세요. 지금은 말로만이라도 ‘예’가 잘 안됩니다.

“내일 절에 가지 마라.”   “예.”
내일 가는 한이 있더라도 어쨌든 일단 “예”하고

갈 수밖에 없다면 그냥 가고 꾸중을 들으세요.
“안 간다 하고는 왜 갔느냐?”하면  “아이고, 죄송합니다”하면 됩니다.
그렇게 演習해 보세요.  거짓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生覺을 내려놓는 마음의 演習을 하라는 겁니다.
自己/我相를 움켜쥐는 것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直接 부딪치는 속에서 한번 해 봐야 합니다.
演習 삼아 한 번 해 보려 해도 現實 삶에 부딪히면 잘 안 되는게 現實이지만

演習으로 몇 번 해 보다 보면 나중에 진짜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여유가 생기면 智慧가 생깁니다.



 

가져온 곳 : 
카페 >무진장 -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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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해솔|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