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게 여기에 그 다음에 뭐라고 나오냐 하면은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깨끗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形色에 執着하지 않고 마음을 내어야 하고. 소리 향기 맛 촉감 마음의 대상에도 執着하지 않고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땅히 執着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한다. 이렇게 말했거든요. 그러면 요것은 소리나 또는 맛이나 향기나. 이런데 執着하지 않고 마음을 내어야 된다 이 말은. 조금 전에 제가 말했듯이 보살이 사바세계를 莊嚴 하는데 사바세계 장엄이 뭐냐 하면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莊嚴이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바로 보살이 成佛하는 자리고 그렇다 이 말이오.
般若心經에선 이걸 뭐라 그러냐 하면은 無眼耳鼻舌身意무안이비설신의 無色聲香味觸法무색성향미촉법 無眼界乃至무안계내지 無意識무의식계. 생각의 의식계까지 다 무의식계. 다 없다 이 말이오. 없기 때문에 無智 亦無得이다. 이렇게 般若心經은 이야기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 말이 뭐냐 하면 아까 제가 처음에 말씀 드렸듯이 日常生活 속에서 우리가 하루에도 수천만 가지 境界가 오지 않습니까? 많은 人間關係나 物質關係나 다 境界가 온다 이 말이야. 그 境界가 오는 것은 무엇을 봅니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맛을 혀로 보고, 몸으로 촉감 느끼고, 마음에서 대상을 인식하고 다 이 속에 있는 거 잖아요. 그런데 이것이 없다는 거요. 無眼耳鼻舌身意무안이비설신의고 無色聲香味觸法무색성향미촉법이고. 이게 없다고 般若心經은 이야기 하잖아요. 이게 없다는 건 뭐냐 하면은 그것에 昧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속지 아니하고. 그것을 그대로 쓰면서도 그것이 그대로 지나가게끔 만들어 주고, 그것을 잘 응용하고 활용하는 사람을 無眼耳鼻舌身意무안이비설신의 無色聲香味觸法무색성향미촉법이다. 거기서 無라는 것에서는 속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이걸 말하는 거요.
우리가 반야심경을 만날 외우면서도 無색성향미촉법이 뭐고 無안이비설신의가 뭐냐? 뭐 다 있는데 왜 없다 하느냐? 거기에만 매달리지 말란 말이요. 그 境界에 속지 않는 것을 없다 그렇게 말한 거에요. 요것을 禪家에서 工夫를 많이 하는 스님네들은 禪에서는 이것을 좀 어렵게 表現을 해요 선에서는. 선에서는 달마스님이후로 혜가대사라든지, 성찬대사, 그 다음에 도신대사. 이렇게 죽~ 내려오는데 육조스님까지. 그런데 도신대사라는 스님이 계셨어요. 4조죠. 그 그분이 어는 날 길을 지나가다 이렇게 보니까. 그 山中에서 아주 귀이한 放光이 일어나는 거요. 빛이 일어나는 거요. 그래서 시자 보고 물었어요.
저 우두산에 누가 있길래 저래 밤에 아주 귀이한 빛이 나느냐? 하니까 거기에 牛頭 법륭선사 라는 스님이 그 산중에 들어간 지 오래돼서 공부하신 지가 됐는데. 그런데 그분이 工夫를 잘 하시기 때문에. 그 분이 앉아서 參禪을 할 때는 그냥 모든 산중에 있는 날 짐승들이 과일을 물어다가 그 스님 앞에 갖다 놓고. 호랑이도 거기 와서 절을 하고. 밤이 되면 그 스님 몸에서 그렇게 放光이 나고 그런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道信大師가 아 참 대단한 선승이 있구나. 그래서 그 도신대사가 그의 옷을 바지를 하나 챙겨가지고 승복이죠. 그래서 우두 법륭선사에게 승복을 건 내 줬어요. 승복을 건 내 주니까 법륭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나는 어머니가 나에게 준 바지도 今生에 다 떨구지도 못하고, 다 쓰지도 못 하는데. 이 옷 필요 없다는거에요.
이 무슨 말일까? 禪에서는 이런 말들을 참 어렵게 합니다. 왜 어렵게 하느냐 하면은 어렵게하는 理由가 있어요. 그런 소리를 듣고 여러분들이 思惟하고 生覺하고 뭔가 工夫하라고 工夫거리를 던져 주는 거에요. 어머니가 준 옷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思惟하라는 거에요. 그런데 事實은 어머니가 준 옷이라는 것에는 뭐냐 하면은 우리가 本來 갖추어져 있는 우리의 本, 淸淨한 本性자리를 말하는 것이고. 一心 자리를 말하는 것이고. 그건 바로 眞如空性의 자리를 말하는 거에요. 선에서는 표현방법이 조금 달라. 그래서 그 어머니가 준 바지다. 어머니가 준 옷이다. 본래 나에게 있던 옷이다 이 말이오. 그래서 도신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어머니가 본래 준 옷을 저 사람이 理解는 하는데. 그런데 저 사람을 깨닫게끔 만들어 줘야 되기 때문에. 도신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러면은 어머니가 그 바지를 주기 前에는 어떤 옷을 입었는고? 이렇게 물은 거에요. 또 어렵죠?
사실 이게 우리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이야기 입니다. 저는 가급적이면 이 어려운 이야기는 안하고 쉽게 쉽게. 왜? 이 불교 TV라는 거는 무차별로 다 방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하면은 좀 어렵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이 말이 이게 뭐냐 하면은. 어머니가 준 옷이라고 生覺하는 것은. 우두법륭스님이 本來 나에게 本性이 淸淨하고, 本來 不足함이 없고, 本來 一心의 자리를 自己가 아는 거에요. 그걸 하나 믿는 거죠. 그런데 어머니가 바지를 주기 前에는 무슨 옷을 입었느냐 할 때는 그거는 生覺으로서는 미칠 수가 없는 자리고, 말로서는 다가 갈 수가 없는 자리고, 도저히 그릴래야 그릴수도 없고, 본뜰래야 본뜰 수도 없는 그런 자리다 이 말이오. 이미 言語가 道斷하고 마음 가는 길이 끊긴 자리니까
그러니까 그것을 도신스님이 물었을 때는 왜 물었냐 하면은. 그 사람을 깨치게끔 만들어 주기 위해서 그런 거에요. 그러니까 도신스님의 그 말씀을 듣고 법륭스님은 깨쳐버린 거에요. 그럼 그 깨친 자리가 뭐냐 하면은 깨친 자리가 金剛經에서 말하는 이게 제대로 된 莊嚴의 世界다 이 말이오. 衆生이 生覺하는 莊嚴의 世界가 아니에요 이것은. 오히려 空空寂寂하게 텅~빈 空을 金剛經에서는 莊嚴이라고 얘기를 한 거에요.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우두법륭선사는 그로부터 그 牛頭山에서 工夫를 하는데. 그 以後로는 날라오던 그 날짐승이 한번도 날라오질 안하고. 호랑이도 안 찾아오고. 몸에서 나던 放光도 안 나오는 거에요. 그럼 이 工夫가 잘 못 되는 거죠. 예? 工夫를 잘 했을 때는 날짐승이 날라오고 호랑이도 찾아오고 몸에서 빛도 나고 그랬는데. 이게 깨치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그런 게 안 온다 이 말이오.
그래서 우리나라 태고 보우선사라는 참 훌륭한 선사가 계셨는데. 그 스님에게 어떤 學人이 우두법륭선사가 도신스님을 만나기 前에는 많은 날 짐승들이 그렇게 과일을 물어다가 供養을 올리고 호랑이도 오고, 몸에서 放光의 빛도 나고 그랬는데. 도신스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왜? 날짐승도 안 오고 방광도 안하고 그럽니까? 그러니까 태고 보우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비가 富者면 子息이 찾아오고 아비가 가난하면 오던 자식도 안 오느니라 그러거든요. 선에서는 이런 말들이 참 멋스럽게 재미있게 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걸 大乘經典의 뜻을 잘 알면은 이게 어려운 말들이 아니에요. 그냥 구름잡고 안개 먹는 소리로, 혼자만 아는 소리로, 저리 지껄인다고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지만은. 이게 禪을 아는 사람은 전혀 그렇지를 않아요. 정말 맞는 말을 하는 것이고. 정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사실을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건 뭐냐? 아비가 부자면 자식이 찾아오는 것이고 또 아비가 가난하면은 오던 자식도 안 온다 이 말은 뭐냐 하면은 우두 법륭선사가 도신선사를 만나기 前 까지는 禪을 제대로 몰랐던 거에요. 禪이라는 것은 티끌만큼도 그
一心의 자리에는 莊嚴할 것이 없고, 거기에 보탤 것이 없고, 밖에서 들어와야 될 필요성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말이야. 그래서 法을 傳한 것도 없다 그런 것이고. 여기에서 莊嚴을 했다고는 하지만은 莊嚴이 莊嚴이 아니라고
하는 말은 그 자리는 莊嚴할 게 없는 자리에요. 그러니까 내가 뭔가 고요한 寂靜의 世界에 들어가 있으니까 들어가
있다는 自己의 그 相이 空相이 우두법륭 스님에게는 있었기 때문에 그 氣運을 生命世界들이 알았던 거에요. 그래서
찾아오는 거에요.
제가 이 TV무상사. 지금 법문 한지가 벌써 金剛經 1/3이 되었는데. 사실 이 TV, 이 법회를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이 있다면은. 우리가 큰 법회를 한번 하는데. 그 신도님들이 모인다는 게 만명 모이기가 힘이 들어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이 무상사 TV법회에 이 법문이라든지 이 강의가 아주 인기 있는 프로는 45분 동안 하는 이 방영시간에. 50만 명 내지 60만 명이 이걸 청취를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이 TV에서 방영하는 이 포교에 효과라는 것은 대단한 겁니다. 어떤 누가 45분 동안에 50~60만 명을 동원해서 이것을 포교를 하겠습니까? 저는 이건 정말 不可思議 하다고 생각해요. 대단한 포교 일번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 법문하는 동안에는 TV를 보고 계시는 분들이 정말 이 어려운 TV포교에 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게끔 ARS전화 한 통이라도 좀 돌렸으면 좋겠다. 오늘 법문 여기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