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산 속이나 바다 속 어디에도 죽음을 피해서 숨을 곳이 없다 '

장백산-1 2017. 8. 6. 17:15

'산 속이나 바다 속 어디에도 죽음을 피해서 숨을 곳이 없다 ' 

 

사형제의 바라문이 있었다. 그들 모두는 다섯 가지 신통력이 있어 일주일 후에 자신들이 죽을 것을 

미리 알았다. 그들은 서로 의논했다. "우리에게는 다섯 가지 신통력이 있어 하늘과 땅을 뒤집고 해와 

달을 어루만지며 산을 옮기고 강물을 흐르지 못하게 하는 등 못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죽음' 이라는 이 고통만은 피할 수 없단 말인가?" 


한 바라문이 말했다.

"나는 큰 바다 속에 들어가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고 중간에 머물러 있겠다. 

그러면 아무리 죽음의 살귀라 한들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알 것인가." 


또 한 바라문은 말했다.

"나는 수미산(히말라야) 속에 들어가 그 표면을 합쳐 틈이 보이지 않게 하겠다. 

그러면 아무리 죽음의 살귀라도 내가 있는 곳은 모를 것이다."


한 바라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허공으로 높이 올라가 거기에 은신하고 있겠다. 

그러면 아무리 죽음의 살귀라도 나를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바라문은 말했다.

"나는 큰 시장 복판에 숨어야겠다. 죽음의 살귀가 와서 한 사람을 붙들 때 하필 나를 찾을 리는 없겠지."


이와 같이 사형제의 바라문은 각기 숨을 곳을 말하고 나서 王에게 하직을 고했다.

"우리들의 수명을 헤아려보니 앞으로 7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피하려고 각기 길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난 뒤 돌아와 뵙겠으니 王께서는 부디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십시오."

그들은 왕궁을 떠나 저마다 자기가 숨을 곳으로 갔다. 


그러나 7일째 되는 날이 되자 사형제 바라문은 모두 죽고 말았다. 

그들의 죽음은 마치 과일이 무르익어 나무에서 제풀에 떨어지는 것과 같았다.


시장 상인이 왕에게 아뢰었다. "어떤 바라문이 시장 한복판에서 갑자기 죽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스승인 바라문임을 알아보았다. "사형제의 바라문이 '죽음'을 피해 각기 딴 곳으로 떠났는데 

벌써 한 사람이 죽었도다. 그 나머지 세사람인들 어찌 '죽음'을 피할 수 있으랴."


왕은 곧 수레를 차비하여 석가모니부처님께 나아가 예배하고 말씀드렸다.

"바라문 사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다섯 가지 신통력이 있어 자기들의 목숨이 7일 뒤로 임박한 

것을 미리 알고 저마다 '죽음'을 피해 각자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과연 죽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피할 수 없는 네 가지 일이 있소. 

첫째는 중음(中陰)으로 있으면서 生을 받지 않을 수 없고, 

둘째는 한 번 생겨났으면 늙지 않을 수 없으며, 

셋째는 늙어서는 병들지 않을 수 없고, 

넷째는 병이 들었으면 죽지 않을 수 없소."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피할 수 없는 네 가지 일을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허공도 아니고 바다 속도 아니어라. 산 속도 아니고 바위틈도 아니어라.

죽음을 피해서 숨을 수 있는 곳  그  아무 데도 있을 수가 없네. 


죽음은 힘써 피해야 할 일 내가 할 일 나는 죽음을 피하는 이 일을 성취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는 그 일 때문에 초조히 오가면서 늙고 죽는 근심을 밟고 다니네. 


生老病死는 피할 수 없는 줄 알아 스스로 고요하고 生과 死가 이미 끝났음을 알았다면

그런 사람은 분리 분별 망상 번뇌라는 악마의 손에서 벗어난 것 비로소 생사의 강을 건너리라. 


-법구비유경 무상품(法句譬喩經 無常品)- 



무상(無常)이란 말은 단순히 덧없고 허무하다는 뜻의 말이 아니다. 우주삼라만상만물, 이 세상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잠시도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無常이란 말의 본뜻은 變(변)한다는 의미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변하지 않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있게 된다면 오히려 큰 재앙이 벌어질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고 변하기 떄문에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 


이 세상은 변하기 때문에 창조적이고 의지적인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개선될 수가 있는 것이다. 

肉身의 無常한 성질을 알고 침울해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肉身이 無常하기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막살지 말고 때때로 거듭거듭 태어나면서 후회없이 알차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비록 有機體인 肉身은 영원하지 않지만 본래의 나, 청정한 법신(法身), 텅~빈 바탕 성품, 절대성의 자리,

텅~빈 바탕 순수진공의식은 無常하지 않고 상주불멸(常住不滅)하므로 淸淨한 法身의 무한한 가능성의

능력을 이 세상 모든 것을 위해 구현해 내야 한다는 것이 불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다. 


중음(中陰)은 중유(中有)라고도 말하는데, 意識(의식)을 지닌 중생(생물)이 죽음의 순간(死有)로부터 

다음 生을 받을(生有) 때 까지의 中間 시기를 말한다. 이 기간이 49일이라는 설이 있기 때문에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49일 동안 명복을 빌고 재(齋)를 지내는 풍습이 생기게 된 것이다.


-『비유와 인연설화』중에서-


-법정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