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인과(不昧因果) |무념당 글 모음
무념, 2010.07.01. 03:20 http://cafe.daum.net/samatavipassana/Gvmj/297
백장선사가 설법할 때마다 한 노인이 있어서 늘 청중들 뒤에서 열심히 듣고 있다가 대중이 물러나면 그 노인도 물러나곤 하였는데 어느 날은 설법이 끝나고 수좌들이 다 물러났는데도 그 노인만 혼자 남아 있었으므로 백장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아니,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깟사빠 붓다 시대에 이 백장산에서 제자들을 지도했던 스님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학인으로부터 “깨달은 사람(道人)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라고 대답했다가, 그 까닭으로 오백 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았습니다. 제가 여우의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부디 한마디 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백장선사에게 삼배의 예를 올리고 합장하고서 물었다.
"깨달은 사람(道人)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인과에 어둡지 않다(불매인과 不昧因果)."
이 말을 듣는 그 순간에 크게 깨달은 그 노인은 예배하면서 말했다.
"덕분에 여우의 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시체는 뒷산에 있을 것이니, 스님들의 예우에 알맞게 다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백장은 제자들을 이끌고 뒷산에 올라 바위 밑에서 죽은 여우의 시체를 발견해 화장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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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과거생에 스승이었던 노인은 제자가 한 질문에 대답을 잘못한 과보로 여우의 몸을 받았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여우 몸 안 받을 사람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직자나 수행자들이 잘못된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진리를 왜곡하거나 진리를 빙자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습니까? 거기에는 위대한 철학자, 영능력자, 무당, 등과 같은 스승 역할을 하는 수많은 사람도 다 포함됩니다. 이들의 가르침 대부분이 개인적인 에고나 집단적인 에고에서 나온 것이며, 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진리를 왜곡(歪曲)해서 가르침니다.
그럼 이들 모두가 여우의 과보를 받을까요? 성직자나 스승들 외에 빤히 아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정치인들의 과보는 그럼 어떻게 됩니까?
붓다가 말년에 이르렀을 때 등에 심한 통증이 일어났습니다.(대반열반경) 이 업은 과거생에 레슬링 선수였을 때, 경기 중에 상대방의 등뼈를 부러뜨린 과보였습니다. 붓다는 닙바나의 선정에 들어 송곳으로 찌르는 듯 한 통증을 이겨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붓다조차도 인과는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불락인과 不落因果)’라고 하면 맞지 않고, ‘인과에 어둡지 않다(불매인과 不昧因果)’라고 해야 옳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백장야호(百丈野狐) 이야기는 단순히 육체적, 물질적인 업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이 육체적, 물질적인 업에 관한 이야기라면, 과거생에 지은 원인으로 금생에 어떤 과보를 받는지 확연히 알고, 지금 짓고 있는 행위가 내생에 어떤 과보를 초래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만이 ‘인과에 어둡지 않다(不昧因果)’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능력 또는 지혜, 즉 전생과 현생과 내생의 인과관계(因果關係)를 알 수 있는 능력은 오직 붓다만이 갖추고 있을 뿐입니다.
위의 백장야호에 나오는 업(業) 이야기는 순전히 정신적(精神的)인 업(業)을 말하는 것입니다. 노인은 과거생에 백장산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스승이었습니다.그때 한 제자의 물음에 대답을 하긴 했으나 자신도 자신의 대답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대답이 틀렸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이 양심적인 스승은 그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대답을 잘못했다는 죄책감이 늘 가슴 한 켠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잘못 대답했다는 생각과 죄책감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의 틀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그 노인은 오랫동안 죄책감과 부정적인 감정의 틀 속에 갇혀서 그 감옥 바깥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은 웃고 넘어갈 가벼운 이야기이지만, 그 죄책감과 부정적인 감정이 노인에게는 무겁고 뚫을 수 없는 하나의 철벽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벽을 넘어서 바깥 세상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죄책감과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생각의 틀을 깨고 밖으로 나오기까지 그는 오백 생이 걸린 것입니다.
나는 햇볕이 뜨겁다고 짜증을 내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햇빛, 비, 구름, 바람은 자연현상입니다. 자연현상에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자연현상은 거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불행하다는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행은 어쩌면 자연현상 처럼 그냥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불행이 자연현상과 같은 것이라면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에게 불행은 현실, 그 자체입니다. 불행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의 불행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 환상(幻想)이 더 불행한 것입니다. 고통을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면 더 큰 고통이 되듯이 말입니다. 불행하다는 감정이 일어나고, 그 감정이 생각을 지배하려 들 때, 그 생각을 자신과 동일시(同一視)하면, 그때부터 자신과 동일시하는 그 생각은 실제와 같은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한 번 실제상황으로 인식을 하게 되면, 그 인식(認識)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가 됩니다. 그 유기체는 스스로 불행하다는 생각을 복제하여, 슬프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퍼뜨립니다. 이것이 불행에 중독된 것입니다. 불행하다는 감정, 불행하다는 생각(환상)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감정, 생각, 환상에 불행한 이야기를 계속 붙여나가는 것이 더 큰 불행입니다.
모든 업(業)이 이와 똑같습니다. 지나가버린 과거에 겪은 경험이나 그에 관한 정보(기억)은 지금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업(業)이 어떤 상황을 만나면, 그동안 쉬고 있던 휴화산이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 상황이 자신이 과거에 겪은 감정적인 내면의 고통과 공명(共鳴)하는 것입니다. 그 업으로 인해 일어난 감정이 생각을 지배하려 들 때, 그 생각을 나와 동일시하면 그 업은 진짜가, 실제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렵게 자란 사람은 돈에 대한 집착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강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애정결핍증 남성은 모든 여성을 유혹하고 정복하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나 다른 남자에게서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은 여성은 남성기피증으로 남성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외면당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 실연을 당했을 때,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큰 비통감, 지독한 우울증, 뜨거운 분노로 온몸을 태웁니다.
그러나 과거에 겪은 경험은 이미 지나간 버린 것이고 지금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괴로운 감정이 어떤 상황을 만나 활성화 될 때, 그 감정으로부터 일어난 생각을 자신과 동일시(同一視)하게 되면 그 생각은 실제상황으로 돌변합니다. 업(業)이 이렇게 활성화되면, 활성화된 그 업(業)은 살아있는 유기체가 되어 더 많은 감정과, 더 많은 생각을 먹이로 스스로 자신을 복제하고 확장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키워갑니다.
업(業)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자신이 업(業)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현존하는 것입니다. 업의 에너지가 활성화 될 때, 부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생각이라는 환상(幻想)이 밀려올 때, 그것을 즉각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업은 업 자신의 존재가 간파당하면, 더 이상 당신을 가장해서 주인 노릇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과거 경험 정보와의 공명(共鳴)으로 업이 활성화될 때, 생각과 감정에 동일시하지 않아, 업에게 먹이를 제공하지 않으면 업은 저절로 소멸합니다.
순수한 깨어있음으로 업이 일어나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그 업을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업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불매인과(不昧因果)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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