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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을 들을 때 방편을 통해 괴로움을 소멸히되 소멸 후에는 방편을 버려야 합니다

장백산-1 2024. 5. 20. 14:42

설법을 들을 때 방편을 통해 괴로움을 소멸히되 소멸 후에는 방편을 버려야 합니다

 

선(禪)에서는 스승이 중생들을 위해 다양한 방편으로 설하는 수많은 말들을 비유해, 타니대수(拖泥帶水), 입니입수(入泥入水)라는 말을 씁니다. 진흙을 묻히고 물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물에 빠진 자를 건지려면 자기도 물에 들어가야 하고, 진흙 늪에 빠진 자를 구하려면 자기도 진흙 늪에 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말은 중생을 구제하려는 스승의 자비심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중생의 근기에 맞는 설법과 다양한 수행법 등의 언어방편을 사용하는 것은 곧 자기가 얻어 맞을 몽둥이를 스스로 짊어지고 나서는 일과 같음을 표현한 말이기도 합니다.

 

중국 선의 황금기 때의 선사나 조사스님들은 그야말로 발심한 대근기의 엘리트 스님들을 대상으로 법을 폈기 때문에, 가능한한 방편을 버리고 타니대수와 입니입수의 언어방편의 오류를 줄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임제의 할이나 덕산의 방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방망이질을 하고, 뜰 앞의 잣나무 등의 공안으로써, 말의 헤아림 너머에서 철저하게 제자들을 이끌었습니다. 선의 황금기 때처럼 소수의 엘리트 수행자를 위해서는 확실하게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2,5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당시에 소수의 출가 수행자만을 위한 설법이 아닌, 재가불자들을 위한 설법 등 다양한 근기를 가진 일체 중생들에게 대기설법, 응병여약으로 병에 맞는 약을 주는 다양한 방편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럼 지금의 시대는 어떨까요? 지금은 대중들이 미디어와 인터넷 환경을 통해 아주 쉽게 불법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출가를 하지 않으면 부처님 곁에서 설법을 들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 또한 다양한 방편 설법으로 인터넷 속의 많은 이들을 위해 다양한 방편을 설하고 있지만, 이같은 방편 설법은 곧 스스로 방망이 맞을 짓을 하는 입니입수요 타니대수임을 아셔야 합니다.

 

진흙에서 겨우 빠져나온 사람이 설법자가 진흙 속에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진흙 속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즉 설법을 들을 때 방편을 통해 괴로움을 소멸하되 괴로움을 소멸한 후에는 사용한 방편을 버려야 합니다. 설법에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낙처를 곧바로 확인할 뿐, 방편의 말에 끌려가서는 안됩니다. 방편으로 사용한 말은 붙잡을 것이 못됩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