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 41

마음, 본래면목, 자성

마음, 본래면목, 자성 예수님의 말씀이 잘 녹아들어 살아있는 도마복음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주리라. 눈으로는 결코 보지 못하는 것, 귀로는  결코 들어보지 못하는 것, 코로는 결코 냄새 맡아보지 못하는 것, 혀로는 결코 맛을 보지 못하는 것, 손으로는 결코 만져보지 못하는 것, 생각으로는 결코 떠올리지 못하는 것을" 인류 역사상 많은 성인들은 바로 '이것'을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여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가 직지인심으로 가리켜 보이는 이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 없고, 혀로 맛을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을 황벽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은 생겨난 적도 없고 사라진 적도 없으..

병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마음

병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마음  불교에서 깨닫는다 함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도 없는 ‘이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불성, 본래면목이니, 참나, 마음, 진리, 법 등 다양한 방편의 이름으로 부른다. 이것 즉 진리는 감춰져 있지 않다. 지금 여기에 이렇게 온전히 100% 드러나 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현실이 바로 진실이자 진리다. 당신이 아프든, 사업에 망했든, 우울하든, 괴롭든 상관없이,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현실세상이 온전한 삶, 진실, 진리라는 것이다.  이를 승조스님은 촉사이진(觸事而眞)이라 하여 부딪치는 것이 모두 다 진리라고 했고, 도오스님은 촉목보리(觸目菩提)라고 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깨달음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적영지(空寂靈知)  불교에서 말하는 참 나, 본래면목, 주인공, 불성을 의미하는 말로 공적영지(空寂靈知)라는 말을 씁니다. 공적(空寂)이란, 내 몸, 내 생각, 내 느낌, 내 의지, 내 의식이 진정한 내가 아니라, 몸도 왔다가 사라지고, 생각도 왔다가 사라지고, 세상 모든 일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배경이 되는, 마치 영화관의 스크린 같이 텅 비어 공적한 바탕입니다. 영지(靈知란 그러면서도 소소영령하게 그 모든 것이 오고 감을 아는 '알아차림'입니다.  공적영지(空寂靈知)가 진정한 나의 본성이지, 몸, 느낌, 생각, 의도, 의식(마음)이라는 오온(五蘊)이 나의 본성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병이 내게 찾아올 때 '내가 병에 걸렸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공적영지(空寂靈知)인 진정한 나는 병에 걸리고 싶어도 병..

나에게 찾아온 절망감, 외로움, 질병이 정말 '나'일까요?

나에게 찾아온 절망감, 외로움, 질병이 정말 '나'일까요?  사람들에게 고통, 질병, 슬픔, 외로움, 절망, 상처, 좌절감, 질병 이런 것들이 찾아올 때 사람들은 곧장 '나는 외로워', '나의 질병', 나의 고통, '나의 상처', 나의 슬픔, 나의 절망, 나의 좌절감 이라고 그것들을 나와 동일시 해 버립니다. 모든 것을 나와 동일시하는 이런 습관적인 생각의 버릇을 잠시 믿지 말아 보세요.  나를 찾아온 절망감, 외로움, 질병, 슬픔,상처, 좌절감, 고통 그런 것들이 정말 '나'일까요? 그런 것들은 사실 잠시 왔다가 가버리는 것들 아닌가요? 그런 것들이 '나에게' 왔다가 가버린다는 것도 내 생각일 뿐입니다. 그저 지금 여기 어딘가에서 왔음을 경험하고 있을 뿐입니다.  절망과 외로움이 찾아올 때 정말 그 절..

삶 그 자체인 나 자신.

완벽하게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는 없다   냉정하게 말하면 완벽하게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은 듣기에 좀 위험합니다. 이 말을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종교에서 이런 말은 더욱 금기시 됩니다. 종교가 완벽하게 내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당신은 무엇이든 당신 뜻대로 할 수 있다' '신은, 부처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 주신다' '간절히 원하면 무엇이든  룰 수 있다' '열심히 기도만 하면 무엇이든 다 된다' '안 되는 것은 없다. 신이 부처가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이 더 종교적인 말처럼 들립니다.  정말 우리가 우리 삶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까요? 정말로 내 뜻대로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

무아와 무분별의 실천

무아와 무분별의 실천   불교에서 고정된 실체적 나는 없다고 하는 가르침이 제법무아(諸法無我)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싶어 한다. 사실 나라는 존재는 그 어떤 것으로도 규정될 수 없다.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을 바탕으로해서 사람들은 ‘나’를 규정한다.  나는 공부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짓게 되면, 스스로에게 공부 잘하고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아상과 분별심을 스스로 만들어내게 된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나는 능력도 더 있고 공부도 더 잘한다고 비교함으로써 분별심을 내는 것이다. 본래 무아인 나를 이렇게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분별을 해서 공부 잘하는 나라고 아상을 내세우게 되면 이제부터는 자신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그 아상, 공부 잘하는 나에 얽매여 꼼짝달싹 못하..

도(道)는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데 어떻게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도(道)는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데 어떻게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마조는 회양에게 묻습니다."도(道)는 볼 수 있는 모습(色相)이 아닌데 어떻게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마음의 눈, 즉 심지법안(心地法眼)이 도를 볼 수 있으니, 무상삼매도 역시 심지법안으로 본다."  도, 깨달음, 본성, 열반, 마음, 본래면목 등의 방편으로 부르는 이것은 모양, 색깔, 크기, 위치가 없어서 볼 수도, 만질 수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육근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육근(눈  귀 코 혀  몸 뜻)으로는 이것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육식으로 분별을 해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그러나 견성(見性), 즉 성품(도, 깨달음, 본성, 열반, 마음, 본래면목 등)을 본다는 표현을 쓰다보니, ..

우주에 내맡기며 시절인연을 따를 뿐

우주에 내맡기며 시절인연을 따를 뿐  달마의 사행론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지혜로운 사람은 우주만물에 맡기고 자기에게 맡기지 않기 때문에 곧 얻고 잃는 것이 없고, 어김도 없고 따름도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에게 맡기고 만물에 맡기지 않기 때문에 얻고 잃음이 있으며 어기고 따름도 있느니라. 만약 능히 허공처럼 너그러이 크게 놓아버려서 천하 세간사를 잊어버릴 수 있다면 이것이 곧 만물에 내맡긴 채 시절인연에 따르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우주만물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나라는 아상에 내맡기지는 않는다. 무엇이든 내가 하겠다거나, 내가 이루겠다거나, 내가 가지겠다거나, 내가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겠다라는 등의 아상과 자기 생각에 내맡기고 살게 되면 괴로움이 생겨난다. 내가 얻어야겠다고 생각한..

나, 내 몸, 내 마음은 없다

모양, 느낌, 생각, 개념, 이름을 빼고 보세요   불교에서는 '나'라고 하는 것는 없다고 즉, 무아(無我)라고 합니다. 왜 무아일까요? 내 몸, 내 생각, 내 느낌, 내 의지, 내 의식이 이렇게 있는데 왜 나는 없는 없다고 하죠?  생각을 빼고, 실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을 놓고 봅시다. 내가 내 몸을 보고 있고 있다는 것, 내 몸을 감촉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요? 그건 생각 아닌가요? 여기 있는 이 무언가에 대해 내가 '내 몸'이라고 이름 붙인 것일 뿐은 아닐까요?  생각을 빼고, 있는 그대로 보면 무엇이 보이나요? 무언가가 지각됩니다. 감지됩니다. 내가 '손', '발', '몸'이라고 이름 붙인 무언가가, 사실은 손  발몸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더라도, 그냥 이렇게 무언가가 있음이 자각될 뿐..

세상엔 아무 일도 없으나 집착 때문에 괴로워한다.

세상엔 아무 일도 없으나 집착 때문에 괴로워한다.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다. 이런 일 저런 일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 저런 일이 일어나고 사라진다고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괴로운 일이 진짜로 실체적으로 일어나고 그로인해 내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스스로 붙잡아 괴로운 일을 만들어 냈고, 거기에 얽매여 있는 것일 뿐이다. 자업자득이고 자승자박이다.  술, 마약, 담배에 중독이 되어 있는 사람이 이것을 끊으려고 하면 너무나도 힘이 들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처럼 느끼곤 한다. 그런데 거그 것에 전혀 중독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혼자서 좋아하면서 중독되고 그것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이 엄청 우습게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