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85

깨달음. . . .

깨달음. . . . 사람들의 생각에 깨달은 사람은 그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금방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쉽게 해 낼 수 있는 힘과 신통력과 지혜를 갖추어야 비로소 진짜 깨달은 사란, 도인(道人)일 것이라고 여긴다. 전혀 그렇지 않다. 깨달은 사람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랄 것도 없지만, 깨달은 사람은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살아갈 뿐이다. 깨달은 사람, 도인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보다 무언가를 더 바라지도 않고 추구하지도 않는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이길 바라니, 그 바람은 언제나 이루어진 채로, 완료형으로 있다.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진짜 진실을 얻은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생각 속의 일이 아..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 등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있음'이다.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 등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있음'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당신이라는 존재가 본래 이미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이다.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 등의 방편상의 이름들은 당신이 본래 이미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임을 확인하는 것을 일러주는 말일 뿐이다. 당신 말고 어디 저 멀리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본래의 성품(본성, 근원의 성품)이라는 방편의 다른 이름들인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를 확인하게 되면 당신은 그저 그냥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일 뿐이다. 깨달음, 진리, 견성, 도, 부처를 확인한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계..

깨달음을 찾아 나서지 말고 깨달음이 나를 찾아 오게 하라.

깨달음을 찾아 나서지 말고 깨달음이 나를 찾아 오게 하라. 깨달음을 찾아 나설 필요는 없다. 깨달음은 매 순간순간 언제나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온다. 깨달음은 지금 이 순간 매 순간순간 계속적으로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노크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우리 쪽에서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깨달음을 향해 열지 않기 때문에 깨달음은 늘 문 밖에서 배회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내가 평소 좋아하던 것, 익숙한 것 등만 선택적으로 분별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 새로운 것 등으로 가장해서 나를 찾아오는 깨달음을 못 들어오게 마음의 문을 막아 온 것이다. 오늘 하루 동안 내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 내가 겪게 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 나와 인연 되는 모든 사람들, 눈에 보여지는 모양들..

언제쯤에나 나는 깨닫게 될까?

언제쯤에나 나는 깨닫게 될까? 깨달음을 얻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내가 과연 깨달을 수 있을까 없을까의 의문이 아닌 '언제' 깨달을 것인가 하는 시기(時期)의 문제에 있는 것이다. 얼마나 오랜 세월 긴 시간동안 오랜 윤회가 필요할 지는 모를지라도 분명한 사실은 언젠가는 우린 모두 깨닫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조금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을 한다면 우리들은 모두가 본래 이미 깨달아 있는 존재들인데 그같은 사실을 언제쯤 알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 하나는, 바로 그 관건이 되는 언제쯤이라는 '시간(時間)'의 실체가 환상(幻想)이라는 사실이다. 즉 언제 깨닫게 될 것인가 하는 이 절체절명의 문제가 바로 '시간(時間)'의 실체가 ..

'나'라는 것은 없다.

'나'라는 것은 없다. - - 법상스님 '나'는 없습니다. 무아(無我)입니다. '나'는 이 세상, 이 우주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나'가 없는 이유는 '나' 홀로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며, '나' 혼자 독립적으로 스스로 배워 익힌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몸도 내가 아니며, 마음, 생각 또한 내가 아닙니다. 우리의 몸은 부모님을 의지(依持)서 태어났으며, 마음들, 생각들은 가정, 학교, 사회,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며 부딪쳐온 모든 환경들로부터 배워 익힌 경헙들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 어느 하나 '나' 혼자 독립적으로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은 없습니다. 결코 찾을 길이 없습니다. 몸은 부모라는 인연에 의해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또한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수화..

언제나 어디서나 '아무 일 없다'

언제나 어디서나 '아무 일 없다' 모처럼 공주 마곡사에 갔다가 오는 길에 갑사(甲寺)에 들렀다. 시간의 여유를 갖고 떠나는 산사(山寺) 기행은 늘 마음에 맑은 바람을 한 줄기 던져 준다. 갑사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법당 앞 긴 의자에서 깜빡 잠이 든 스님. 내가 법당에 들어갈 때 그 스님은 바람을 바라보시는 건지, 이제 막 올라오는 매화꽃대를 바라보시는 건지, 그냥 그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긴 의자에 평화롭게 앉아 계시던 바로 그 스님. 아무 일 없다는 듯 영락없이 한가(閑暇)한 도인(道人)의 모습이다. 아무렴, 우리들의 삶에는 늘 아무 일이 없으니까... 스님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 글귀가 안에서 피어오른다. '아무 일 없다'. 우리들 삶에 그 어떤 사건이 일어나건, 좋지 않은 사고를 당했건, 심..

자주 듣는 질문 몇가지

자주 듣는 질문 몇가지 부처님꼐 귀의한지 얼마 안되는 초보자입니다만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여러 스님들의 말씀을 들으면 "아 정말 그런거구나....모두가 내 마음이네.. 어쩌면 이럴수가....." 하는 기쁨의 탄성이 나오곤 한답니다. 저는 원래 기독교를 꽤 오래 믿었었는데 인연이 닿았는지 이렇게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는군요.. 예수님도 성인이시고 부처님도 성인이시잖아요. 그런데 그냥 제 마음인가요? 어쩐지 예수님을 생각하면 기대고 싶고 모든 걸 다 알아서 해주실 것 같은 느낌이구요, 부처님을 생각하면 왠지 내가 다 알아서 해야될 것 같은 느낌요..(질문이 넘 유치한가요?^^) 그리고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에 공양을 잘못 드시고 병이 나셔서 열반에 드신 걸로 아는데요 물론 그 공양이 안 좋은 것이란 걸 ..

깨달음

깨달음 깨닫는다 함은 무심(無心)을 깨닫는 것이다. 무심(無心)을 깨닫고 나면 그때 비로소 참마음'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분별심(分別心), 분별을 하는 마음이 사라질 뿐이다. 아주 미세한 먼지조차도 붙을 자리가 없이 텅~비어 공(空)할 뿐, 그 공(空)한 자리 거기에는 부처도 붙을 자리가 없다. 공(空)한 자리 거기에는 아무 일이 없다. -법상스님의 선어록과 마음공부에서-

여보시게 부처(佛)를 찾는가

여보시게 부처(佛)를 찾는가 여보게 친구! 산에 오르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부처(佛)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에 가면 인간이 만든 불상(佛像)이 자네를 내려다 보고 있지 않는가? 부처(佛)는 절에 없다네. 부처(佛)는 세상에 내려가야만 천지에 널려 있다네 내 주위에 있는 가난한 이웃이 부처(佛)요 병들어 누워있는 자가 부처(佛)라네 천지에 널려있는 그 많은 부처(佛)를 보지도 못하고 어찌 사람이 만든 불상(佛像) 에만 허리가 아프도록 절만 하는가. 천당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 하는가? 천당은 숨쉬고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가 천당이고 또한 지옥이라네. 내가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가 천당이고, 살면서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 여기 ..